재외한국인작가
객관화의 시선, 그 깊이와 섬세함- 『그늘의 집』의 현월(玄月)

  • 재외한국인작가
  • 2003년 겨울호 (통권 10호)
객관화의 시선, 그 깊이와 섬세함- 『그늘의 집』의 현월(玄月)


  민족주의적 정서가 유난히 뿌리 깊은 나라인 탓일까. 한국인들은 때로 재외 동포 작가들의 작품을 한국문학의 범주에 포섭하고자 하는 욕심을 드러낸다. 혹은 최소한 재외 동포 작가들의 작품에 각별한 관심을 기울이며, 그들의 수상 소식을 듣고는 그것이 마치 한국인들 전체의 쾌거인 양 반가워한다. 그러나 재일 교포 2세인 소설가 현월(玄月)은 자신에게 한국이라는 조국은 “그리움의 대상이지만, 동시에 극복해야 할 대상”(작가 인터뷰 「인간의 보편성을 그리고 싶다」, 『그늘의 집』, 문학동네, 2000, 230쪽)이라고 단호하게 말한다. 또한 자신이 한국어라는 “모국어 대신 모어(母語)로서의 일본어를 가”지고 있으며 이는 “아무리 한국말을 학습한다 해도 변하지 않을”(같은 곳) 것이라는 너무도 자연스러운 사실을 분명하게 직시하고 있다.

  모든 창의적인 작가들이 어떤 범주화된 유형 속에 포섭되기를 거부하듯, 현월 역시 ‘재일 한국인 작가’라는 레테르에 대해 거부감을 드러낸다. 그는 교포 2세인 만큼 1세대가 경험했던 이국 땅에서의 한(恨) 따위로부터 해방돼 있으며, 재일 한국인 작가로서의 특수한 역사적 사명의식 같은 것도 가지고 있지 않다고 호기롭게 말한다. 아닌 게 아니라 그의 작품에 등장하는 재일 한국인들은 신산한 삶을 사느라 가슴에 멍이 든 사람들이라기보단, 어딘지 모르게 폭력적이고 어딘지 모르게 기묘한 인물들이다. 

  아무리 현월이 작가로서 재일 한국인이라는 것에 큰 의미를 두지 않는다 할지라도 작품이 작가 개인의 체험을 토대로 창작되는 경우가 많다는 점을 생각하면, 그의 작품에 재일 한국인이 주인공으로든 주변인으로든 자주 등장한다는 점이 이상하지는 않을 터이다. 현월의 작품세계를 아주 거칠고 단순하게 정리하자면, 소재적인 측면에서는 재일 한국인의 삶을 중점적으로 다루며 주제적인 측면에서는 집단적 폭력에 대해 각별한 관심을 보이고 있다고 말할 수 있을 듯하다. 아쿠타가와 상 수상작인 「그늘의 집」(『그늘의 집』)에는, 일본 땅에서 한인촌을 이뤄 살아가는 한국인들이 중국인 노동자에게 집단적으로 린치를 가하는 장면이 끔찍할 정도로 생생하게 묘사돼 있다. 일본사회 내에서 타자인 한국인들이 주류로부터 격리된 채 집단을 만들어 살며 그 집단 내에서 중국인을 타자화하고 폭력을 행사하는 이 아이러니는 독자에게 무척 강렬한 인상을 남긴다. 집단의 폭력성에 대한 작가의 관심은 「무대배우의 고독」(같은 책) 같은 작품에선, 살인 사건을 소문내며 야릇한 쾌감을 맛보는 동네 사람들을 통해 드러나기도 한다. 또한 「나쁜 소문」(『나쁜 소문』, 문학동네, 2002)에선, 재일 한국인인 주인공을 철저하게 사물화하며 그에 대한 무성한 소문을 만들어 내거나 또는 그 주인공의 여동생을 아무런 양심의 가책 없이 공동의 성적 노리개로 만드는 동네 사람들을 통해 집단적 폭력의 일면을 드러낸다. 그러면서도 그 주인공 역시 자신의 여동생을 성적 노리개로 전락시키는 데 적극적으로 나설 정도의 무지한 폭력성을 지니고 있는 인물로 묘사함으로써, 이야기 전체를 관통하는 폭력성에 매우 중층적이면서도 아이러니컬한 성격을 부여한다. 「땅거미」(같은 책)에선 덴진마츠리(天神祭)라는 일본의 여름 축제에 대해, 축제 특유의 그 뜨거운 집단적 열기에 대해 생생하게 묘사하면서, 그 속에서 벌어지는 성폭행 사건을 이야기한다.

  현월이 여러 작품을 통해 집단적 폭력에 대한 각별한 관심을 드러내고 있긴 하지만, 그렇다고 그의 모든 작품이 이런 주제에만 집중돼 있는 건 아니다. 가령 「젖가슴」(『그늘의 집』) 같은 작품에선 평범한 일본 남자의 가정생활에 대한 일상적인 터치가 빛난다. 문체로 보나 인물의 형상화로 보나 주제로 보나 국내에 소개된 현월의 작품 중 가장 뛰어나다고 할 수 있을 듯한 「그늘의 집」은 집단의 폭력성뿐 아니라 인간 삶의 여러 측면에 대해 생각하도록 만든다. 우스꽝스러우면서도 강한 연민을 자아내는 재일 한국인 노인을 주인공으로 한 이 소설에선 무엇보다도 세월의 더께 같은 것이 느껴진다. 작가가 비교적 젊은 나이임을 생각할 때 차분하고 나지막한 톤의 문체 속에 드러난 세월의 더께는 더욱 인상적이다.

  현월의 소설에 등장하는 재일 한국인들은 이국 땅에서의 설움에 눈물짓지도, 차별대우에 대해 투사적(鬪士的)으로 규탄하지도 않는다. 이들은 오히려 비행(卑行)과 폭력을 일삼거나 무위도식하는 인물인 경우가 많다. 재일 한국인들을 감상적인 태도로 그리지 않고 철저하게 객관화된 시선으로 바라보며 픽션에 맞게 재창조하는 현월은 스스로가 얘기하는 대로 작품에 삶의 보편적인 문제들을 담고자 노력하는 작가이다. 그 노력이 성공할 때 과장 없는 담담한 필치로 한 노인의 삶을 섬세하게 그려낸, 그리하여 인간과 삶 일반에 대한 근원적인 연민의 정서를 불러일으키는, 「그늘의 집」과 같은 수작이 탄생하게 되는 것이리라.





박은미
글 / 박은미_2002년 대산대학문학상 평론 부문 당선. 1980년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