찬바람이 솔솔 불 즈음 장기 열풍이 안골을 강타했다. 알고 봤더니 장기를 둘 줄 아는 아이들이 한둘이 아니었다.
몇살 때, 누구에게 배웠는지 정확한 것은 기억하지 못했지만, 남이 두는 걸 한두어판 넘겨다 보고서는, 자기도 장기를 둘 줄 안다는 걸 문득 깨닫고 곧바로 훈수꾼으로 돌변해 버리는 거였다.
장기는 구구단보다도 쉬운 것인가 보았다. 2단에서 9단까지 외우는데 반년도 넘게 걸린 석태도, 하루만에 장기를 익혔다.
첫눈이 내렸을 때는 안골 아이들 치고 장기 못두는 애가 없었고, 하루에 장기 서너판 두지 않는 애가 없었다. 장기 인구에 비해 장기판은 터무니없이 적어서 장기판 소유자의 집이 사랑방이 됐는데, 남쪽에서는 광네 집, 북쪽에서는 호중네 집, 동쪽에는 준승네 집에 아이들이 많이 모였다. 장기판을 소유하고 있기 때문인지는 몰라도 남쪽에서는 광이, 북쪽에서는 호중이, 동쪽에서는 준승이 가장 잘 두는 걸로 소문이 났다. 그 따위 소문에 콧방귀를 뀌는 아이가 여럿 되었다.
그들은 여럿이 장기판 하나 놓고 아등바등하는 것도 모자라, 두는 놈은 하난데 훈수하는 놈은 열인 지경이라, 자기의 실력을 제대로 보여주지 못했을 뿐, 자기야말로 진정한 실력자임을 의심하지 않았다.
겨울방학이 절반쯤 지나갔을 때, 제 1회 안골 어린이 장기 대회가 개최되었다. 대회의 주최자는 광이었다. 광은 자기가 안골에서 장기를 가장 잘 두는 아이임을 굳이 증명해보고 싶었던 것이다. 아이들은 시큰둥한 반응을 보였다. 광의 텃밭이라 할 수 있는 남쪽에서조차 호응을 얻지 못했다. 운성이 한심하다는 듯이 말했다.
“당숙은 가만 보면 참 쓸데없는 일에 열성적이야. 전에는 이 세상에 있어본 적이 없는 카드 게임을 만들어 보겠다고 노트 하나를 완전 작살 내더만.”
큰아버지와 아버지는 스무살도 넘게 차이가 났다. 큰아버지는 아홉명의 자식을 낳았는데, 그 중에는 아버지보다 나이가 많은 딸도 있었다. 그리고 아들 중에 하나는 아버지와 동갑이었다. 아버지와 동갑인 그 큰아버지의 아들을, 광은 서울 사촌형님이라고 불렀다. 그 서울 사촌형님에게는 광과 동갑내기인 아들이 하나 있었다. 그게 바로 운성이었다. 그러니까 당질이 되는 아이였다. 서울아이 운성은 겨울방학을 할아버지(광에게는 큰아버지) 댁에서 보내고 있었다.
“좀더 건설적으로 놀아보자는 거지.”
“그렇게 해서 되겠어? 참새도 벌레가 있어야 모이는데, 사람이 아무 것도 없는 데 모여? 정 대회를 열고 싶다면 뭔가를 걸어야지.”
“뭘 걸어?”
“돈. 돈을 걸면 삼동네 아이들이 죄다 몰려올 걸.”
“이 나라 어린이가 돈이 어딨어?”
“돈이 없다면 상품이라도 걸어야지.”
“돈이 없는데 상품을 어떻게 마련해.”
“도시에서는 스폰서 같은 게 있는데.”
“스폰지?”
“말하자면 이런 건데, 하꼬방 가수 아줌마가 아이들 장기대회를 위해서 사탕 한 봉지를 내놓는 거야. 과수원 인상파 아저씨는 사과 열 알을 내놓고, 멀대 아저씨는 고구마를 이왕이면 쪄서 내놓는 거지.”
“왜?”
“대회를 축하하는 거지. 가게를, 과수원을, 고구마밭을 선전하는 거야. 대회 참가자에게 생색도 내고 선전도 하고 일거양득이라 할 수 있지.”
“당최 이해가 안 되는 걸. 순전히 공짜로 내놓는단 말이지? 그런 어처구니없는 일이 세상에 일어나고 있단 말이지?”
“당숙이 알아듣지도 못하는 얘기는 그만하기로 하고, 참 생각난 김에 물어보는데 하꼬방 가수 아줌마 말이야, 노래 잘 불러서 가수 맞어?”
“아니!”
“아니지? 어째 아닌 것 같아서. 무슨 재미난 사연이 있는 것 같았어.”
“재미난지는 모르겠지만 들어볼 텨? 그려, 그럼 들어봐. 하꼬방 아줌마와 아저씨가 낮거리를 하고 있었댜. 나는 이 얘기가 잘 이해가 안가는 게 바로 이 낮거리가 때문이야. 낮거리가 대관절 뭔 뜻인지 모르겠어. 아무튼 그 낮거리라는 걸 하고 있는데 손님이 왔댜. 다른 손님은 가게 문 닫힌 거 보고 돌아갔는디, 그 손님은 꼭 사가야만 하는 게 있었나벼. 한참을 기다렸다. 더는 못 기다리겄는지 손님이 문에다 대고 이렇게 말했디야. 노래 끝나려면 멀었대유. 그러자 하꼬방 아저씨가 가게 안에서 대답했디야. 우리 마누라가 보통 가수가 아녀서 좀 걸리네유. 그때부텀 하꼬방 아줌마 별명이 가수가 되었댜.”
“별 얘기 아니었군. 당숙, 아까 하던 상품 얘기로 돌아와서 말인데, 저번에 자랑하고 다니던 기념우표 그거 걸어.”
“씨, 그걸 얼마주고 산 건데. 그거 내가 얼마나 아끼는 건데.”
“당숙이 1등 할 거잖아? 1등 하고 싶어서 대회 열겠다는 거 아냐?”
“하지만 1등 못할 수도 있잖아?”
“그 우표가 목숨보다 아까워?”
“목숨보다야 아깝다고 말할 수는 없겠지만, 그래도 많이 아깝지.”
“목숨보다 아깝다고 생각해. 그러면 무조건 1등 할 수 있어.”
광은 몇날을 고심한 끝에 운성의 의견에 따르기로 하였다. 참가자 전원에게 구슬 한 개씩(가지고 있는 구슬이 서른 개라 충분했다), 4등에게는 지우개 하나(교실 청소하다가 주워서 꼭꼭 숨겨놓은 새 지우개 하나가 있었다), 3등에게는 연필 한 자루, 2등에게는 도루코 칼, 그리고 1등에는 전두환 대머리 대통령 아세안 순방 기념우표 세트를 걸었다.
아이들은 속속 모여들었다. 호중과 준승은 약속대로 장기판을 가지고 나타났다. 가진 것 다 턴 것도 모자라, 눈물을 머금고 연필과 도루코 칼까지 사서 준비한 대회인데, 아이들이 코빼기도 보이지 않으면 어쩌나 걱정을 많이 했었다. 열여섯 명이나 왔다. 개최자 광을 더하면 참가자가 무려 열일곱 명이니, 대회는 일단 대성공이라 할 수 있었다.
이제 기념우표만 찾아오면 되겠는데. 4등, 3등, 2등까지 동시에 하는 방법 없나? 생각할수록 상품으로 건 것들이 아까웠다.
광은 주최측으로서 농간을 부릴 생각이 없었다. 1에서부터 17까지 각기 다른 숫자가 씌어진 열일곱 장의 종이를 바가지에 넣었다. 82년 11월 달력 뒷면에다 1에서부터 17까지의 번호가 들어간 대진표를 그렸다.
아이들에게 일찍 온 순서대로 바가지의 종이를 한 장씩 뽑게 하였다. 그 아이가 뽑은 번호가 13이라면, 달력 뒷면의 13이란 번호 옆에다 그 아이의 이름을 적었다.
대진표가 완성되자, 아이들은 갖가지 반응을 보였는데, 특히 15와 16을 뽑은 규길과 원기가 가장 못마땅해 했다. 자기들은 남들보다 한번 더 두어야한다는 거였다.
광은 냉정하게 말했다.
“너희들은 재수가 없는 거야. 정 못 마땅하면 돌아가.”
규길과 원기는 가지 않았다.
아이들은 참가자 전원에게 주기로 약속한 구슬부터 달라고 했다. 광은 고개를 저었다.
“구슬만 받고 도망가 버리면 대회가 엉망이 뎌. 주최자 체면이 말이 아니게 되겠지. 영예의 1등이 탄생하는 순간까지 대회장을 사수하는 자에게만 구슬을 줄 텨.”
광의 첫 상대는 하필이면 호중이었다. 자천타천 우승후보인 두 사람이 초장에 정면 충돌해 버린 거였다. 광은 최고의 장애물을 첫 걸음에 치워버릴 수 있게 되었다고 기뻐해야 할지, 대회를 빛내기 위해서 꼭 필요한 막판의 명승부가 물 건너갔다고 안타까워해야 할지, 헛갈렸다.
광은 2대 빵으로 졌다. 호중이 만세 삼창을 했다. 이제 우승은 따 놓은 당상이라는 투였다.
호중의 첫째 형은 마을 최초의 대학생이었다. 호중이의 둘째 형은 마을 최초로 육군사관학교에 갔다. 호중의 셋째 형은 마을에서 최초로 서울에 있는 4년제 대학에 갔다. 그것도 그 유명한 서울대를 갔다. 호중도 형들을 닮아 머리가 좋은 모양이었다. 광이 국수 소리를 듣는 김씨 할아버지한테 배운 장기가, 호중이 제 대학생 형들한테 배운 장기에 묵사발이 난 것이었다.
광은 표정을 관리하기가 몹시 힘들었다. 아무렇지도 않은 양, 이런 대회를 열게 돼서 너무 기쁘고, 주최자 본인은 비록 초장에 나가 떨어졌지만, 참가자 여러분이 이토록 즐거우니 주최자 본인도 하염없이 기쁘오이다, 이런 얼굴로 아이들 장기 두는 꼬락서니를 보고 있으려니, 머릿속에서 불덩이가 천개쯤 타오르는 것 같았다.
“이까짓 거지 깽깽이 같은 대회 그만 한다, 다 가버려!” 라고, 고개고래 소리 지르고 싶었다. 그러나 어떻게 그럴 수 있단 말인가.
예상을 깨고 생각하지도 않았던 운성이 동쪽에서 제일 잘 둔다던 준승을 물리치고 결승전에까지 올랐다. 그러나 호중의 적수가 되지는 못했다.
광은 오줌에다 똥을 섞고 거기에다가 잔뜩 약 올라서 맵디매운 고추까지 버무린 것을 먹고 난 듯한 표정으로, 시상을 했다. 구슬을 나눠줄 때에도, 지우개와 연필과 도루코 칼을 내줄 때에도, 아깝고 서럽고 화나고 더럽고 치사하고 미칠 것 같았지만, 전두환 대머리 대통령 아세안 순방 기념우표를 호중에게 내줄 때에는, 죽어버리고 싶었다.
아무리 주최자가 표정을 관리했다지만, 다른 아이들이 주최자 표정 속에 숨은 참담함을 못 알아챌 리 없는 일이어서 분위기는 좀 침울했다.
운성이 호중에게 문득 말했다.
“우표 나한테 줘라.”
호중은 강도라도 만난 듯 화들짝 놀랐다.
“내가 어떻게 딴 건데. 이거 따려고 밤새워 장기 공부도 했는데.”
“대신 내가 더 좋은 걸 줄께.”
운성은 품속에서 종이 한장을 꺼내 호중의 손바닥에 올려 놓았다. 놀랍게도 벌거벗은 여자와 벌거벗은 남자가 거시기와 거시기를 결합하고 있는, 흑백도 아닌 칼라사진이 박힌 종이였다. 호중은 우표를 내던지더니 음화를 움켜쥐고 달아났다. 아이들이 환호성을 지르며 호중의 뒤를 우르르 쫓아갔다.
운성이 우표를 광에게 주었다.
“당숙, 앞으론 사소한 일에 목숨 걸지 않는 게 좋겠어.”
물론 제 2회 안골 어린이 장기대회는 개최되지 않았다. 아무도 주최자가 되지 않으려고 했기 때문이다.
- 김종광
- 글 / 김종광_소설가. 1971년생. 소설 『경찰서여, 안녕』 『모내기블루스』 『짬뽕과 소주의 힘』 『71년생 다인이』 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