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특집
* 한국 판타지와 나

  • 기획특집
  • 2003년 겨울호 (통권 10호)
* 한국 판타지와 나


  사실 저는 제가 이 자리에 ‘판타지 작가’라고 분류되어 앉아 있는 것이 약간 당황스럽습니다. 한국에서 판타지라고 말하면 보통은 장르 판타지를 말하기 때문에, 옆에 와 계신 이영도 씨는 한국에서 최초의 판타지 작가요 한국 장르 판타지의 창시자라고 말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이영도 씨가 한국 판타지 팬덤(fandom)에서 - 그리고 여타의 하위 장르(subgenre) 팬덤에서도 - 전설적인 작품 『드래곤 라자』를 내면서 한국의 장르 판타지는 일반 독서 시장에 진출했습니다. 하지만 저의 정체성은 애매합니다. 저는 지금까지 장르 판타지를 한 편도 써본 일이 없으며, 에픽 판타지를 쓸 능력이 있는지도 의심스럽습니다. 이영도 씨가 5개월에 걸쳐 12권짜리 『사가(Saga)』를 통신망에 연재하는 것을 실시간으로 직접 보면서, 저는 그 길이와 속도만으로도 얼마나 부러움에 불탔는지 모릅니다! 그러면서도 저는 판타지 문학상의 심사위원을 두 차례 맡았으며, 판타지와 SF 두어권을 번역했습니다. 언론에서는 판타지나 하위 장르 소설을 취재할 때 때때로 제게 의견을 묻곤 합니다. 제가 한국 판타지의 주변에 서 있으면서 지금의 한국 판타지의 성장 과정을 지켜 보았고, 판타지 작가는 아니지만 판타지 팬덤을, 넓게는 하위 장르 팬덤을 어느정도 이해하고 있는 드문 주류 작가에 속하기 때문일 것입니다. 이야기를 계속하려면 저에 대해, 그리고 제가 글을 써 온 사회적․문학적 환경에 대해 조금 설명해야 할 것 같습니다.

  저는 대학을 졸업하던 1994년 문학 잡지에 「청소년 가출 협회」라는 단편을 실으면서 직업 작가 생활을 시작했습니다. 「청소년 가출 협회」는 기성 세대와 제도에 대한 청소년들의 반항의 상징이던 ‘가출’이 공인된 학생 자치 단체인 ‘협회’에 의해 제도화되고 순치된다면 그런 사회 속에서는 어떤 반항이 가능할 것인가 하는 아이디어를 이야기로 만든 것이었습니다. 제가 첫 책을 출판한 1994년은 한국에 상업적인 PC통신이 시작된 지 몇 년 지나지 않았을 때고, 아마 저는 주류 작가 그룹에서 최초로 ‘손이 아니라 컴퓨터로 글을 쓴다’고 공언한 작가였을 것입니다. 당시만 해도 한국문학의 전통에 대한 존중과 혁신에 대한 갈망이 서로 공존하며 갈등하던 시대였기 때문에, 저는 손이 아닌 컴퓨터로 글을 쓰고 제 이야기에 직접적으로 현실을 반영하지 않는다는 이유 만으로 기대와 의심에 찬 눈초리를 동시에 받았습니다.

  당시 PC통신에서 글을 연재하고 그것을 오프라인에서 책으로 내어 상업적으로 성공하는 작가들이 몇몇 생겨났습니다. 그런 작가들은 대부분 새로운 시장을 개척하거나 한국 주류 문학의 전통에 편입되지 못하고 베스트셀러 한두권만 낸 채 잊혀졌습니다. 그런 작가들을 주로 ‘통신 작가’라고 불렀는데, 저는 잡지에 글을 싣기 전 통신망에서 문학 동호회 활동을 한 적이 있었기 때문에 그쪽으로 함께 분류되기도 했습니다. 지금은 많은 작가들이 인터넷을 자유자재로 이용하고 있지만, 그때만 해도 ‘통신 작가’라는 호칭에는 정식으로 문학 잡지나 문학 전문 출판사에서 글을 출판할 능력이 없다는 약간의 경멸과 신기함, 상업성보다 문학적 가치가 부족하다는 비난의 뉘앙스가 함께 들어 있었습니다(이건 제게는 이중으로 억울한 일입니다. 저는 상업적으로 성공해 본 적이 한번도 없었으니까요).

  그러나 1990년대는 한국 대중 문화의 급속한 성장기였습니다. 냉전이나 독재 같은 정치적 상황이나 검열, 자본과 기술적 문제 등의 환경이 동유럽 사회주의 붕괴와 민주화, 청년들의 다양한 문화에 대한 욕구, 그리고 컴퓨터의 보급과 맞물리면서 빠르게 달라졌습니다. PC통신에서 인터넷으로 이어지는 IT의 발달이 무한한 잠재력을 품고 있으며, 1980년대에 비해 독자들과 만날 기회가 위축된 주류 문학에도 새로운 활력을 불어넣어줄 수 있다는 것을 깨달은 문학 잡지 편집자들은 컴퓨터와 문학의 만남에 대한 기획 특집을 많이 마련했습니다. 그리고 그 주제에 대해 이론적으로 고찰하는 비평가들과는 달리 통신망 안에서 통신망의 분위기를 호흡하며 자란 작가는 드물었기에 그 주제에 대해 글을 쓰라는 부탁을 많이 받았습니다.

  여러가지 대중 문화가 분화하고 발달해오던 1990년대 후반, 이영도 씨의 『드래곤 라자』가 PC통신의 장편소설 연재란에 올라오기 시작했습니다. 당시 평균 조회수 1백을 넘는 작품이 드물던 장편소설 연재란에서, 올라오자마자 조회수 천을 가볍게 넘겨버리는 『드래곤 라자』는 독보적인 존재였습니다. 『드래곤 라자』를 보고 싶다는 이유만으로 잠을 자지 않고 통신망 속을 서성거리는 독자들은 스스로를 ‘일상 생활을 제대로 하지 못하고 이영도 씨의 다음 연재글만 기다리는 사람’이라는 뜻에서 좀비라 칭하고 이영도 씨를 좀비들을 불러 일으키는 네크로맨서라고 불렀습니다. 통신망을 넘어서서 종이 위에 인쇄되자 『드래곤 라자』는 폭발적인 반응을 불러일으키면서, ‘통신 소설’이 아니라 ‘판타지’라는 독자적인 하위 장르 소설이 있다는 것을 한국 독자들에게 알려주었습니다. 그 후 판타지는 몇 년 동안 한국 출판 시장에서 큰 비율을 점유했고, 다른 하위 장르 소설의 성장도 고무했습니다. 특히 판타지는 10대 청소년들에게 큰 인기를 끌었고, 이것은 양날의 칼이 되었습니다. 10대들은 새로운 세계를 원하지만, 단순한 소망 충족을 원하기도 합니다. 미남 혹은 미녀들을 애인으로 두고, 점점 강해지면서 적을 무찌르는 RPG 식의 글들이 진지한 글보다 더 널리 읽혔습니다. 삶의 성찰을 담은 글보다 틀에 박힌 모험담에 엉뚱한 착상들을 접목시킨 글이 온라인에서 인기를 끌면서 조회수 외의 기준 없이 앞다투어 출판되었고, 그 결과 상투적인 이야기에 식상한 많은 독자들이 판타지를 떠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아직도 판타지를 떠나지 않고 꾸준히 습작을 계속하는 청소년들이 상당수 존재하고 이들이 인터넷 상에서 웹진 등의 형태로 활동하고 있다는 것은, 앞으로 5년 내지 10년 안에 새로운 판타지 작가 세대들이 탄생할 것을 약속하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저는 좀 묘한 위치에 들어가 버렸습니다. 아까도 말씀드렸지만 저는 장르 판타지 작가라기보다는 주류 문학 작가에 가깝습니다. 그런데 『드래곤 라자』의 해설을 쓰면서 판타지 장르의 성립 초기에 판타지에 대한 담론을 생산하는 입장에 서게 되었습니다. ‘통신 소설’이나 ‘컴퓨터와 문학의 만남’ 같은 주제로 글을 썼던 것과 마찬가지로 ‘판타지 소설이란 무엇인가’ 같은 주제도 다루게 되었습니다. 아마 그래서 제가 여기에 ‘판타지 소설가’로 불려온 것 같습니다. 그러나 제가 그런 글에서 이야기한 것은 대체로 1980년대까지 리얼리즘 소설에 주력했던 한국 소설에서 갑자기 새로운 서사 영역으로 등장한 환상(혹은 비-실재?)의 의미에 대한 것이었습니다.

  돌이켜 보면 제가 낸 소설에서 판타지는 의미가 고정되지 않은 것이었습니다. 급속도의 경제 발전을 이룬 근대 한국에서 저는 자유로이 ‘동화’를 읽고 자란 첫 번째 세대입니다. 그 ‘동화’ 중에서는 SF나 판타지, 추리소설의 명작들도 섞여 있었지만 제가 그것을 장르로 구분할 수 있게 된 것은 20대에 들어서서였습니다. 그리고 제가 글을 쓰고자 할 즈음이 되어서는 그 장르 구분도 저에게 별 의미가 없었고 장르 판타지는 아직 태동하기 전이었기 때문에, 저는 리얼리즘과 판타지에 대한 당시의 고정관념에서 상대적으로 자유로웠습니다. 첫 번째 소설집 『성교가 두 인간의 관계에 미치는 영향에 대한 문학적 고찰 중 사례연구 부분인용』을 보면, 장르 판타지 단편에 그나마 가깝다고 할 수 있는 것은 단 하나 「소환」밖에 없습니다. 현실적인 이야기를 다룬 것이 절반, 환상적인 이야기를 다룬 것이 절반 정도 되고, 환상적인 이야기는 대부분, 소망 충족이 이루어지면 어떤 엉뚱한 일이 생겨날까 하는 것이었습니다. 표제작에서는 혼전성교가 범죄시되던 그 당시 한국 상황에서 애인과 첫 섹스를 앞둔 여성의 조마조마한 심정과 애인과 섹스를 하고 난 남성의 허탈한 심정을 번갈아 보여준 후, 그 둘이 만나는 장소 벽 뒤에서 숨을 죽이고 귀를 기울이고 있던 작가 ‘나’를 갑자기 나체로 끌어내 불쾌감과 웃음의 대상으로 만들었습니다. 글을 쓰면서 의미와 서사를 장악하고 있지 못하다, 독자에게 이야기를 잘 하고 있는 것 같지 않다는 초보 작가의 답답함이 역설적으로 ‘차라리 인물과 같은 상황 속에 들어가고 싶다’는 소망으로 변했고, 만약 그렇게 되면 어떤 일이 일어날까 하는 상상이 그 단편을 끝맺음한 셈입니다.

  그 후 제 소설은 계속해서 순수한 백일몽의 즐거움과 그 실현의 두려움, 알레고리 사이를 오가고 있습니다. 단편 「책」은 제가 늘 느끼는 두려움, 만약 내가 죽은 후에 누가 내 일기장을 들여다보면 얼마나 부끄러울까, 더구나 그 일기장에 내가 저지른 실수나 잘못이 여과 없이 적혀 있다면, 너무나 부끄러워서 죽었다가도 살아오고 싶겠다는 생각을 이야기로 만들어본 것입니다. 이 이야기에서 죽은 엄마는 ‘책’으로 변합니다. 그 ‘책’에는 죽은 엄마가 한 일과 그 때의 심정을 속속들이 드러나 있습니다. 딸은 그것을 보고 자신이 혼외 관계에서 태어난 아이라는 것을 알게 됩니다. 하지만 딸에게는 생부가 자기를 인정하느냐 하지 못하느냐 하는 문제보다, 자신이 죽은 후에 엄마같이 책으로 되살아나 살면서 만들어온 치부를 보이지는 않아야 한다는 생각이 더 중요합니다. 그래서 딸은 작가가 되어, 자기 삶에 대한 수많은 위조본, 파본, 복사본 등을 만들기로 결심합니다. 건초 속에 바늘을 숨기는 것이지요.

  「바리 - 길 위에서」는 한국의 전통 무가 바리데기 공주 이야기에 원형을 두고 있습니다. 바리데기 공주는 아들이 없는 불라국의 왕 오구대왕과 왕비 길대부인의 일곱 번째 딸로 태어나 부모를 실망시키고 버림받습니다. 그러나 왕이 병을 앓게 되자 점쟁이는 바리 공주가 아버지를 구할 수 있다고 예언합니다. 왕비는 산신령이 키워주고 있던 바리 공주를 다시 찾아냅니다. 바리 공주는 자신의 부모가 누구인지, 어떤 곤란에 처해 있는지 알게 되자, 아버지의 병을 고치기 위해 길을 떠납니다. 온갖 고난을 겪은 끝에 바리 공주는 불로초와 불사약을 구해 아버지의 병을 고칩니다. 그 공덕으로 바리 공주는 저승으로 가는 영혼을 무사히 안내하는 신이 되고, 바리 공주의 부모는 저승을 다스리는 대왕신이 됩니다. 저는 처음 이 옛 무가를 읽고 삶과 죽음을 주제로 한 탐색(quest)에 깊은 인상을 받았습니다. 그래서 이 이야기의 배경을 바꾸어 현대적인 이야기로 다시 써 보려고 했습니다. 「바리 이야기」는 이런 의도를 가지고 쓴 4편의 연작이고, 「바리 - 길 위에서」는 그 첫 번째 이야기입니다. 제 이야기에서 바리와 바리의 언니이자 양성 인간(androgyne)인 석금, 그리고 불라국의 국민들은 인간이 아니라 작은 프로그램, 즉 루틴(routine)이고, 이들이 사는 나라 불라국은 “전 우주를 수행하는 거대한 프로그램”입니다. 또한 이곳은 “잉여도 없고 부족도 없”는 세계, “모든 사람들은 세계 안에서 나름대로 역할을 수행하고 있는” 곳입니다. 하지만 불라국의 왕이자 바리의 아버지인 오구대왕이 병에 걸리자 이곳 또한 병에 걸립니다. “삶은 끊임없이 조금씩 분실되고 파손되고, 사람들은 자기 목적지를 향해 가다가 목적지가 어디인지 잊어버리고, 그 중 어떤 것들은 복구 불능인” 경우마저 생깁니다. 「바리 - 길 위에서」는 이런 세계를 구하기 위해 바리와 석금이 길을 떠나는 부분에서 끝납니다. 새로운 세계에 대한 호기심과 세계를 구할 수 있다는 희망에 차서 길을 떠나는 바리 공주의 모습은 그 당시 문학 속에서 자아와 세계에 접근하는 새로운 길을 찾을 수 있을까 모색하던 저 자신의 모습과 겹쳐 있습니다.

  제 경우를 볼 때, 판타지라는 소재는 리얼리즘에서 즐겨 쓰는 소재와 마찬가지로, 저 자신의 불안과 성장, 제가 바라보는 세계를 이야기하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저는 어떤 소재가 우월하다거나 열등하다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제가 하고 싶은 이야기를 잘 할 수 있다면 현실적인 소재여도 상관없고, 환상적인 소재여도 상관없습니다. 그러나 한국에서 리얼리즘을 옹호하는 많은 비평가들이 판타지를 현실과 맞설 용기가 없는 자의 도피라고 비난하거나 아예 무시했습니다. 신문이나 잡지에서 공식적으로 논쟁이 붙은 적은 없지만, 판타지 동호인들은 온라인 상에서 그에 대해 분개합니다. 판타지는 현실에 접근하는 ‘다른’ 방법이라고, 한국 소설의 주류였던 리얼리즘 소설은 자신들에게 판타지 소설만한 충격과 감동을 준 적이 없노라고 항변합니다. 많은 동호인들은 판타지에 대해 비판적인 비평가들이 판타지의 걸작들을 제대로 읽은 적이 없다고 믿고 있기 때문에, 문학의 가치를 자기 마음대로 독점하고 조작하려는 것 아니냐는 의혹의 눈길을 보내기도 합니다. 그러면서 비평가들을 아무 소리 못하게 만들 만한 문학적 가치와 대중성을 둘 다 가진 작품이 출현할 것을 애타게 고대하고 있습니다.

  글쎄요, 이쪽에도 저쪽에도 낄 마음이 들지 않는 저는 이런 흐름의 충돌을 만나게 되면 두 가지 생각을 합니다. 첫 번째는, 도피면 좀 어떤가 하는 것입니다. 현실에서 완벽히 도피한다는 것은 현실에 완벽히 응전하는 것만큼이나 어렵습니다. 그리고 예술에서 완벽한 응전이 사기인 것만큼이나 완벽한 도피도 사기입니다. 억압적인 현실에 완벽하게 응전한다는 작품일수록 세부 형식에서 현실의 억압을 재생산해 내고 있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그것은 때로 독자를 우민으로 여기는 계몽의 형식일 수도 있고, 때로 현실의 압제자에 대항할 필요성을 외치면서 내부의 타자를 한 목소리로 억지로 통일시켜 버리는 단결의 형식일 수도 있습니다. 그와 마찬가지로, 완벽한 도피라고 해도 어차피 사회와 작가의 상상력이 허용하는 것만큼의 도피입니다. 그리고 사회 속의 개인이 갖는 도피 환상이라는 형식은 역으로 그 사회가 개인에게 어떤 억압을 가하고 있는지 드러내 보여주는 열쇠가 됩니다. 문제는 판타지가 도피라는 미명 하에 현실을 왜곡하거나 억압적인 이데올로기를 재생산하는 도구가 되는 경우입니다. 유감스럽게도, 한국의 장르 판타지 중에서 이런 길에 들어선 작품들이 없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더 큰 문제는 이런 작품 경향에 대해 경고의 목소리를 내거나 서로 의견을 교환할 수 있는 통로가 없다는 것입니다. 한국의 장르 판타지는 - 다른 장르 소설들도 마찬가지지만 - 동호인 층의 크기에 비해 담론을 형성할 수 있는 능력이 허약합니다.

  두 번째는 한국 판타지 소설의 소비 구조가 상당히 왜곡되어 있다는 사실을 생각하게 됩니다. 아까도 말씀드렸다시피 한국의 장르 판타지 소설이 자리잡은 것은 이영도씨의 『드래곤 라자』가 나온 1998년입니다. 그 이전에도 장르 판타지로 분류될 수 있는 소설이 있었습니다만, 그 이전의 소설들은 장르 판타지가 아니라 ‘통신 소설’로 분류되었습니다. 그리고 『드래곤 라자』가 폭발적인 인기를 끈 독자층은 10대에서 20대 초반 정도였습니다. 5년 정도의 시간밖에 흐르지 않았지만 그 동안 한국 장르 판타지는 수많은 분화를 이루었습니다. 10대 청소년들이 즐겨 보는, 개그가 섞인 소원 성취 이야기에서부터 진지한 철학적 문제를 고민하고 화려한 이미지를 구사하는 판타지, 동양적 소재와 서양적 소재의 접목을 시도하는 판타지, 한국적인 정신을 담으려는 판타지까지 수많은 판타지들이 나왔습니다. 그러나 문제는 이 모든 판타지들이 너무 짧은 시간에 너무 집약적으로 나왔다는 점입니다. 판타지의 물량은 쏟아지고, 판타지라는 장르 자체에 재미를 느끼는 독자가 아닌 ‘재미있는 이야기’를 찾아 장르와 장르 사이를 떠도는 ‘거품 독자들’은 장르 바깥으로 새로운 유행을 찾아 사라져 버렸습니다. 남아 있는 독자층이 판타지 작가들의 여러 갈래와 그 창작열을 모두 쫓아가기란 어렵습니다. 독자층이 위축되면서 어떤 풍의 판타지도 충분한 독자를 얻지 못하게 되었습니다. 시장성이 떨어지자 판타지 장르를 포기하거나 박리다매형의 펄프 픽션으로 취급하는 출판사들이 늘어났습니다. 그런 펄프 픽션으로는 롤 플레잉 게임의 리플레이 소설 풍 판타지가 가장 인기를 끌었습니다. 게다가 판타지 독자층은 아직 물리적인 연령으로도 피라미드 층을 이루고 있습니다. 판타지 독자의 전체 비율로 볼 때도 성숙한 사색과 성찰을 담은 판타지를 좋아하는 독자들의 수는 그리 많지 않습니다.

  그 결과, 출판되는 판타지가 단조로워집니다. 웬만한 시장성 가지고는 살아남을 수 없기 때문에 전업 작가를 찾기 힘들어지고, 새로운 판타지를 쓰고 싶은 사람들은 시장에 진입하기 어려워집니다. 단순한 소망 충족 이상의 재미를 찾는 독자들은 계속해서 판타지 장르를 떠나갑니다. 그러므로 판타지에 대한 논의는 점점 희박해지고, 판타지를 읽어보지 않은 성인들은 판타지 소설을 펄프 픽션으로 여기고 ‘자식들에게 보여주지 말아야 할 소설’로 생각합니다. 동호인 중 문학을 전공한 사람들은 거의 없고, 장르 판타지가 정착한 후 문학을 전공한 사람들은 이제 간신히 학부를 졸업했을 나이입니다. 잡지라는 외형적 틀이 존재한다 쳐도, 주류 문학에 대응하거나 혹은 비슷한 질의 담론을 생산해낼 능력이 없습니다. 가장 나이든 동호인들이라 해도 기껏해야 30대 중반 정도입니다. 이들은 잡지를 운영한다거나 문학상을 제정할 재정적 기반을 갖지 못했습니다. 몇몇 판타지 문학상들이라고 있는 것들은 대부분 출판사의 지원을 받아 운영하고, 그나마 판타지 동호인들이 주축이 되어 심사하기보다 저 같이 양쪽에 약간 인지도가 있는 작가, 그리고 문학 평론가들이 심사를 하게 됩니다. 또 출판사가 재정적 뒷받침을 하므로 출판되었을 때 팔릴 가능성을 무시할 수 없습니다. 단편 소설은 잘 팔리지 않으므로 당연히 판타지 단편 소설을 발표할 곳이 없고, 판타지 문학상에도 단편 부문이 없습니다. 장편 시장은 시장성이 없는 작가는 진입을 못합니다. 그러니 자기가 재능을 가졌다고 생각하는 판타지 작가들, 그리고 훌륭한 판타지 습작들을 읽었다고 생각하는 독자들은 상대적으로 과대평가받고 있는 것 같은 주류 문학 쪽에 씁쓸한 적대감을 가질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면 판타지 작가들이 갈 수 있는 길은 무엇일까요? 첫째로는, 저 같은 길을 갈 수 있습니다. 장르 판타지는 아니지만 환상적인 소재를 갖고 주류 문학에 합류해 글을 쓰고, 양 진영 간의 화해를 위해 꾸준히 노력하는 것입니다. 한국에서 가장 어린 하위 장르 소설인 판타지는 앞선 하위 장르 소설들의 성공과 실패에서 교훈을 얻어야 합니다. 그 중에서는 판타지 소설보다 더 잘 팔렸던 것들도 있고, 판타지 소설보다 이론적으로 더 높은 수준에 올랐던 것들도 있습니다. 그러나 대중성과 이론의 균형을 맞추고, 주류문학과 협력하고 경쟁하며 서로 전통과 혁신을 주고받을 수 있었던 장르는 없었습니다. 그리고 한국의 장르 판타지도 그런 모습을 하고 있지는 않습니다. 다만 아직 그럴 수 있는 가능성이 있고, 그러려고 의식적으로 노력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 한 가지 길이 주류 문학에서도, 장르 판타지에서도 일정하게 인정받는 작가가 되는 것입니다. 전례가 없는 것은 아닙니다. 작가 복거일씨의 『비명을 찾아서』(1987)는 리얼리즘이 가장 중요한 창작 이론으로 생각되던 때 씌어졌지만, 주류 문학에서도 SF 팬들에게도 좋은 평가를 받았습니다. 그런 작가들이 늘어난다면 판타지가 펄프 픽션이라는 평가를 벗어나는 것은 자연스럽게 이루어지리라 생각합니다.

  두 번째는 판타지 소설의 다원화입니다. 고전이나 주류 문학과 맥을 교류하는 고급 판타지도, 모험담과 대중적인 판타지도 있어야 합니다. 대중에게 외면 받을지라도 단편 판타지나 실험적인 판타지를 꾸준히 생산해 내는 작가들도 있어야 합니다. 문제는 생산만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이런 작품들이 대중과 연결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다행히 이런 시도를 하는 아마추어 작가들이 있고, 한국의 인터넷 환경은 상당히 뛰어난 편입니다. 그들은 자기가 좋아하는 글을 쓰고 그것을 자신들의 웹진이나 홈페이지에 무료로 올립니다. 재정적인 대가는 없지만 어차피 지금 판타지 작가로 입신해도 먹고 살기는 힘듭니다. 자기가 좋아하는 글을 쓰고 독자와 교류하는 것, 그것이야말로 모든 작가의 기쁨일 것입니다.

 다시 한 번 말씀드리지만, 한국의 장르 판타지는 5년밖에 안 된 어린 하위 장르입니다. 이 어린아이가 어떻게 커나갈지, 어떤 가능성을 발현시킬지 아직은 알 수 없습니다. 그러나 재능 있고 판타지 창작에 애착을 가진 젊은 층이 있고, 『드래곤 라자』와 다른 판타지들을 보며 자란 세대가 있습니다. 그 예비 작가군이 충분한 수련을 거쳐 자신이 쓰고 싶은 작품을 시장에 내놓을 때, 그리고 성숙한 독자들이 판타지에서 삶의 향기를 맡을 수 있을 때, 그 때 우리는 한국 판타지의 모습을 다른 각도에서 다시 이야기할 수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송경아
글 / 송경아_소설가. 1971년생. 소설 『책』 『아기 찾기』 『엘리베이터』 『테러리스트』 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