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특집
* 환상을 환상적이게 하는 리얼리티의 힘- ‘한․영 판타지 문학 포럼’ 참관기

  • 기획특집
  • 2003년 겨울호 (통권 10호)
* 환상을 환상적이게 하는 리얼리티의 힘- ‘한․영 판타지 문학 포럼’ 참관기


  로비는 조용히 웅성거렸다. 사람들이 꽤 많았고 여드름이 뒤숭숭한 학생들과 커다랗고 점잖은 외국인들이 생소한 분위기를 만들어내는 가운데 ‘한․영 판타지 문학 포럼 - 판타지, 환상성 혹은 새로운 상상력’이라는 제목의 행사가 시작을 기다리고 있었다. 여유를 두고 행사장에 도착한 나는 로비를 배회하면서 묘한 기대감에 들뜨는 것을 느꼈다. 문학 포럼이니 학자들과 문인들의 진지한 토론장이 될 것이 당연하지만 왠지 오늘만은 그들조차도 한 손엔 마술지팡이를 들고 가느다란 실눈을 뜬 채 어떤 비밀에 대해 얘기할 것만 같은, 그래서 참석자들은 오들오들 떨며 세계의 운명에 대해 걱정해야만 할 것 같은 즐거운 기대에 시달렸던 것이다. 아마도 ‘판타지’, ‘환상성’, ‘상상력’이라는 역동적인 단어로 묶인 포럼의 제목이 나를 그렇게 만들었을 것이다. 포스터를 물끄러미 보면서 세 단어 사이의 어감을 곱씹어보고 있을 때, 동시통역기를 나누어 준다는 안내방송이 들려왔다. 해서 이질적인 언어의 교집합까지 가세한 판타지 문학 포럼이 드디어 시작되었다. 

  첫 번째 발제자인 브라이언 로즈버리는 「영화로 보는 톨킨」이라는 제목의 발제를 통해 J. R. R. 톨킨의 『반지의 제왕』이 피터 잭슨의 영화로 만들어지기까지 어떤 기대와 우려의 과정을 거쳤는지 전해 주었다. 그것은 다만 『반지의 제왕』만의 일화가 아니라 많은 판타지 문학 작품들이 영화라는 거대하고 대중적인 매체로 전환될 때 마음 한 구석으로 끊임없이 걱정하고 의심해야 하는, 문학의 편에 선 사람들의 고백이기도 할 것이다. 그러나, 브라이언 로즈버리는 “상상력을 되살리는 문학의 힘은 어떤 문학 표현수단의 도전에도 살아남을 것을 - 톨킨이 그랬듯이 - 굳게 믿는다”고 하였다.

  김성곤은 「왜 지금 판타지 문학인가」에서 “포스트모던 시대에 리얼리티의 또 다른 측면인 환상 영역을 탐색하는 판타지 문학이 새로운 주요 소설 장르로 부상하게 된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라고 말하면서 “『반지의 제왕』이나 『해리 포터』 시리즈 같은 탁월한 수준의 문학을 산출할 수 있는 한, 판타지 문학의 미래는 밝고 고무적”이라고 확신하였다. 이어진 질의 시간에 이러한 논지는 더 구체적으로 전달되었다. 대부분의 참석자가 “오랫동안 외면당해 왔고 눈에 띄지 않았으며 주변부에 위치해 온” 판타지 소설의 애독자이거나 작가 지망생이었던 이유로 ‘어떻게 하면 우리 판타지 문학이 제대로 된 대접을 받도록 할 수 있을 것인가’라는 요지의 질문을 염원과 우려가 가득 담긴 목소리로 전해 왔기 때문이다. 이에 김성곤은 아주 단호한 태도로 ‘현실을 간접적으로 비판할 수 있는 좋은 주제와 좋은 상징을 통해 훌륭한 작품을 만들어 내는 것만이 그것을 가능하게 한다’는 대답을 주었다. 판타지 문학이라고 해서 좋은 작품을 만들어 내는 데에 환상적인 왕도가 있지 않음을 분명히 한 것이다.

  세 번째 발제자로 나선 존 제롤드는 출판업자라는, 문학 포럼의 발제자로서는 조금 특이한 위치로 처음부터 관심을 끌었다. 그는 1970년대부터 영어권 판타지 문학이 어떤 내용과 형식적 실험, 새로운 작가들을 거치면서 발전해 왔는가를 친절하고 해박하게 설명해 주었는데 마치 판타지 문학사(文學史) 강의실에 앉아 있는 것만 같았다. 한편, 그의 입을 통해 한 작가가 소개되고 평가될 때마다 나의 상상은 그에게 원고를 보낸 후 대답을 기다리는 무명 작가의 어느 밤 속으로 날아가곤 했는데…… 그런 상상이 자학적인 쾌감을 준 것은 어째서일까. 

  「판타지와 비인간」이라는 흥미로운 제목으로 발표한 이영도의 글은 약간의 논란을 일으켰다. 한국 최초의 판타지 작가라는 유명세가 그 논란을 도운 것이 분명하지만, 한편으로 “비인간을 안타고니스트로 삼는 플롯으로는 인간의 문제를 반영할 수 없기 때문에 게임을 예술이라고 할 수 없다”는 다소 비약적인 작가의 주장은 분명 참석자들로 하여금 용기를 내어 반박질문을 던져 보도록 유도했을 것이다. 주구장창한 질문들에 대한 ‘그럴 수도 있지요’라는 짧은 답변은 장내를 술렁한 웃음으로 몰아가기도 했는데, 나는 이 짧은 답변이 질문자의 비논리를 공격하는 동시에 발표자의 비논리를 덮는 좋은 방어술이라는 생각을 하였다. 이영도는 “판타지에서의 비인간은 제거나 통제의 대상이 아니라 인간 밖에서 인간과 세계의 대화를 매개하거나 촉구하는 자들이어야 한다”는 제안으로 말을 맺었다.

  “환상은 본래 자연스러운 문학적 요소”라는 점을 다시금 새기면서 시작한 한창엽의 발표문은 ‘한국적 환상성’을 찾는 일에 흥미를 느끼고 있는 학자의 글답게 벽초 홍명희의 『林巨正』을 주요소재로 삼았다. 판타지 소설이라고 규정할 수는 없지만 『林巨正』은 “현실 재현의 사회성과 환상성을 동시에 보여준” 명작으로 “동양적 환상 문학의 흐름을 잇고 있다”고 평가되었다. 『반지의 제왕』 역시 “인간에 대한 신뢰감을 바탕으로 한 보편적인 삶의 가치를 지향”하고 있는 점, “서양의 전통적인 서사 속에 이미 존재했던 문학적 전통을 계승”하고 있는 점에서 『林巨正』과 같은 맥락의 평가가 이루어졌다. 그러나, 마지막에는 “서구의 환상성 이론으로 우리 문학 작품을 재단하는 문학 연구는 지양되어야 한다”는 지적을 잊지 않았다. 또한 ‘서양의 환상과 동양의 환상은 다르다’는 언급을 이어진 질의 시간에 내놓았으나 오늘의 주제와 꼭 맞는 문제 제기가 아니어서인지 더 깊은 논의로 이어지지는 못 했다.

  차즈 브렌츨리는 약 5분간 톨킨을 만난 일을 두고 신(神)을 만난 것과 같았다고 고백한 한 소년의 얘기로 참석자들을 즐겁게 하였다. 톨킨처럼 되고 싶은 소망과 열광적인 독서 경험으로 어린 시절을 보낸 그 소년은 이제 멋진 수염을 기르고 껑충한 어깨에 가방을 달랑 맨 채 외국의 문학 포럼에도 초청되는 성공한 작가가 되었다. 그의 자유분방한 외모는 로비를 왔다갔다할 때부터 인상적이었지만 그의 발제는 매우 진지하여 인상적이었다. 판타지 쓰기에 관한 여러가지 경험을 들려 주면서 그는 “판타지의 세계는 믿을 만 해야”하며 “명확하고 분명한 논리를 가져야 한다”고 말하였다. 

  클리프 맥니시는 「작가로서의 나의 삶」이라는 재미난 에세이를 들려 주었다. 그것은 삼십대 중반의 평범한 아빠였던 그가 “정말로 정말로 싫은 마녀에 관한 이야기를 원하는” 딸의 소원을 이뤄 주려고 생전 처음 소설을 써 본 것에 관한 얘기이다. 아빠는 그 일이 꽤 즐거웠고 내쳐 긁적거린 두꺼운 소설로 세계적인 성공을 거두게 된다. 이후로 그는 이 경험을 통해 얻은 것들을 판타지 작가가 되고자 하는 모든 사람들과 나누고 있다. 특히 유쾌하게 과장시킨 제목임이 분명한 ‘위대한 판타지 소설 쓰는 법’에서 열거한 충고들은 행사장에 앉아 있던 작가 지망생들의 막연하고 두근거리는 궁금증을 크게 해소시켜 주었을 것이다.

  송경아는 우리나라에 판타지 문학이 어떻게 등장했고 지금은 어떤 판도로 진행되고 있는지 비교적 풍부한 사례를 들어 설명하였다. 주류 문학 작가이지만 누구보다도 정확하고 주의 깊게 우리의 판타지 문학 전반을 읽어 내고 있다는 사실이 인상적이었다. 그녀는 “한국의 장르 판타지는 5년밖에 안 된 어린 장르”임을 반복하면서 지금은 “동호인 층의 크기에 비해 담론을 형성할 수 있는 능력도 부족”하고 “소비 구조도 왜곡”되어 있지만 “아직도 판타지를 떠나지 않고 꾸준히 습작을 계속하는 청소년들이 상당수 존재하고 있다는 것은 앞으로 5년 내지 10년 안에 새로운 판타지 작가 세대들이 탄생할 것을 약속”하는 것이라면서 우리 판타지 문학에 대해 신중하면서도 긍정적인 입장을 보여주었다.

  피터 헌트는 웃음을 자아내는 시각 자료와 함께 “판타지에 대한 헌트의 다섯 가지 법칙”이라는 것을 하나하나 소개하면서 노련한 발제 속으로 참석자들을 이끌어 갔다. 그는 이를 통해 판타지에 대해 가지고 있는 몇 가지 오해들을 교정하고자 했는데, 그 골자는 판타지가 전혀 단순하지 않으며 현실 도피적이지도 않다는 것이다. 또한 “소설을 이해하는 방식에 변화가 일어나고 있고 판타지가 그 선두 역할을 하고 있다”고도 전망했다. 그리고 “우리는 인간으로서 은유적인 정신 상태가 필요하며 그것을 갖기 위해 판타지는 필수적”이라는 말로 이 포럼의 모든 발제에 끝을 맺었다. 

  세션이 진행될수록 행사장은 ‘화기애애’한 분위기가 감돌았다. 성의껏 준비한 발제자들의 순서가 마치 연극배우를 보는 것처럼 극적인 재미를 주어서인지 다양하고 재기 넘치는 질문이 주저 없이 이어졌고, 때론 엉뚱한 의견서까지 발표되어 악의 없는 실소를 자아냈다. 어떤 연배, 어떤 위치이든 참석자들이 공통적으로 내놓은 것은 그 동안 판타지 문학을 옹호하고 사랑하면서 가질 수밖에 없었던 부당하고 안타까운 감정에 대한 시원한 고자질이었다. 그것이 앉은 자리와 국적의 구분 없이 동조를 얻는 가운데 참석자들은 판타지 문학이 주류 문학계에서 받고 있는 대접에 다같이 안타까워하였으며, 어떻게 하면 판타지 문학이 독자의 저변을 넓히고 문학성도 인정받을 수 있을 것인지 합심하여 고민했다. 그리하여 논의는 ‘훌륭한 판타지 소설을 어떻게 쓸 것인가’라는 실질적인 화제로 옮아가게 되었고, 여기서 작가 지망생들의 목마른 질문이 쏟아졌다.

  그러나, 그들은 이런 대답을 예상했을까? “판타지 소설을 좋아하라, 글을 많이 읽으라, 실제로 많이 써 보라, 현실을 반영할 수 있는 좋은 주제를 잡아라, 인물의 중요함을 잊지 말라!” 참석자들은 만족하지 못 했다. 이런 것 말고, 뭔가 판타지 소설에 더욱 걸맞은, 특별한 상상력을 자극하는 어떤 비결이 있지 않겠느냐고 다시 묻는 것이다. 그리하여 영국에서 온 작가가 가느다란 실눈을 뜬 채 비밀스런 표정으로 발설한 마지막 ‘tip’은, 바로 ‘인내’였다. 케케묵은 문학서에 나오는 충고가 21세기의 ‘한․영 판타지 문학 포럼’에서도 되풀이되는 것은 분명한 한 가지를 생각하게 만든다. 그것은 판타지이든 무엇이든 훌륭한 문학 작품이 가지는 최소한의 미덕은 리얼리티, 혹은 인간으로부터 얼굴을 돌리지 않아야 한다는 사실이다. 오히려 현실과 인간을 더 잘 노려보는 것만이 다름 아닌 ‘새로운 상상력’임을 ‘판타지’ 문학 포럼은 강력하게 되짚고 있었다. 

 ‘한․영 판타지문학 포럼’은 세계적으로 사랑 받는 판타지 문학의 본산지인 영국의 신사들과 우리가 판타지 문학에 대한 고민과 애정을 허심탄회하게 주고받을 수 있었다는 점에서 기분 좋은 자리였다. 판타지 문학이라는 흥미로운 공동 소재는 동시통역기가 익숙해지는 것만큼이나 재빨리 이런저런 경계를 휘저어 놓았다. 즐겁고 희망적인 분위기 속에서 우리 작품의 수준을 점검할 수 있었고 기획, 출판 등에서의 현실도 살짝이나마 짚어볼 수 있었다. 우리의 판타지 문학은 한 번의 유행 물결이 가신 후 이제야 제대로 된 모색 단계에 들어섰다고 봐야 할 것이다. 오늘의 행사는 이러한 우리의 현실 속에서도 판타지 소설을 너무나 좋아하는 사람들과 우리 판타지 문학의 미래를 걱정하는 모든 사람들이 새로운 다짐과 기대로 서로에게 힘을 주는 시간이었다. 그러니, 집에 돌아오는 떠들썩한 지하철 속에서, ‘한국적 토양 위에 만들어’진 훌륭한 판타지 소설은 그 전모가 어떨지 흥분에 들떠 상상해 본 이가 나 혼자만은 아니었을 것이다.




문정연
글 / 문정연_극작가. 2002년 대산대학문학상 희곡 부문 당선. 1974년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