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칼럼
* 관습의 굴레를 벗자면

  • 문학칼럼
  • 2003년 가을호 (통권 9호)
* 관습의 굴레를 벗자면

대학에서 창작 강의를 하다 보면 그 끝내기 과정이 여느 과목과는 다른 경우가 있다. 그것은 말하자면, 괜찮은 작품을 건졌을 때 어디 당선이라도 시켜주고 싶은 교사로서의 욕심 때문에 생긴 현상이겠는데, 그래서 내 경우는 그 동안 잘 쓴 작품들을 모아 작품집을 엮어내 주기도 하고, 또 그 학생들을 따로 불러 모아놓고 격려의 말을 하는 것도 잊지 않는다.
  "이쯤에서 등단을 하는 것도 좋지 않겠니?"

  내가 하는 격려의 말이란 당연히 등단을 위한 권유의 한 마디이다. 그러면 당장 네, 하고 용기백배 할 줄 알지만 요즘 학생들은 반드시 그렇지도 않다.

  "데뷔하면 무슨 찡(證) 같은 걸 주나요?"

  언젠가는 이런 질문까지 받은 적이 있다. 이런 대화의 상대는 물론 문과대학생들은 아니다. 경영대학이나 공과대학 같은 비문과대학 반 학생들이었다.

  우리 대학에서만 나는 각각 다른 두 개의 소설 창작 교실을 담당하고 있다. 하나는 예로부터 전통적으로 지켜오던 국문학과 반이고, 다른 하나는 학교 전체를 대상으로 하는 교양선택으로서의 창작 교실인데, 여기서 비문과대학 반이란 바로 법과대학이나 의과대학 같은 데서 온 사람들을 일컫는 것이다.

  이런 비문과대학 반 학생들을 나는 특히 주목하고 자랑스럽게 여기는 쪽이다. 원래 문과대학 반은 작가 지망생들도 많고 또 그만큼 글쓰기에도 익숙할 테니까 으레 그러려니 하지만, 상대적으로 비문과대학 반에를 들어가도 거기는 또 거기대로 아주 생경한 호기심과 열정이 살아있기 때문이다. 창작의 수준도 그 어디 못지 않게 높다. 수강하는 학생들도 두 배는 많다.

  그런데 그 뜨거운 열정과 호기심과 높은 수준의 문학성을 지닌 학생들이 어쩌면 이다지도 작가가 되는 일에는 무관심할까, 거꾸로 작가가 되는 일에는 그토록 무관심한 학생들이 어쩌면 이다지도 창작 수업에는 적극적일까, 그 점이 너무 신기해서 나는 지금 이 글을 쓰는지도 모른다.

  "너, 소설 잘 쓰던데 계속 써 보지 그래?"

  서반아어과인 어떤 학생에게 한 번은 이렇게 물은 적이 있다. 그때도 저쪽에서 나온 반응은 뜻밖이었다.  

  "소설요? 저는 음악을 하는 걸요. 그 동안 작사, 작곡, 편곡을 사백 편이나 해 놨는데 그만 아직도 스폰서를 못 구해서……"

  요즘 창작 교실의 세태가 이런 정도라면 짐작이 갈 것이다. 소설을 잘 쓰고 못 쓴다는 것과, 장차 소설가가 되고 안 되고 하는 문제가 이만큼이나 별개의 것이 되고만 것이다.

  그래도 나는 이런 학생들을 끝까지 인정하고 좋아하려고 한다. 누구나 작가 지망생이라면 자칫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물들어 있을지도 모를 문학의 관습에 그들은 젖어 있지도 않았고, 그래서 그들의 글쓰기에 대한 호기심이 더욱 생경해 뵈는가 하면, 그 생경함이 오히려 새로운 문학을 여는 활력소가 된다는 것을 나는 믿기 때문이다. 그들은 지금 스스로 작가가 되기를 포기한 것이 아니라, 다만 관습의 길을 걷지 않을 뿐이다.

  창작 교실에서 소설이 소설의 관습을 답습하는 것처럼 위험한 일은 없다. 이 점에서 작가를 지망하지 않는다면서도 어느덧 창작활동에 깊숙이 함몰되어 있는 그들은 훨씬 자유로운 편이다. 호기심 반 망설임 반, 때묻지 않은 그들의 순수한 열정을 그래서 나는 기대하고 또 믿고 싶은 것이다. 

 

송하춘
글 / 송하춘_소설가, 고려대 국문과 교수. 1944년생. 소설 『은장도와 트럼펫』 『하백의 딸들』 『꿈꾸는 공룡』 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