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작순례
프랑스 르네상스의 찬가

- 프랑수아 라블레의 『가르강튀아』와 『팡타그뤼엘』

  • 명작순례
  • 2003년 가을호 (통권 9호)
프랑스 르네상스의 찬가

- 프랑수아 라블레의 『가르강튀아』와 『팡타그뤼엘』

프랑수아 라블레(François Rabelais, 1483?∼1553)는 프랑스 16세기 문학을 대표하는 거장이다. 5부로 구성된 그의 작품은 동일한 인물들의 등장과 사건의 연계성으로 보면 연작임에 틀림없지만 30년 가까운 기간에 걸쳐 씌어진 탓에 초기와 후기의 작품들 사이에 상당한 차이가 나타난다. 전설적인 거인 팡타그뤼엘과 그의 아버지 가르강튀아의 행적을 다룬 환상적인 연대기인 『팡타그뤼엘 Pantagruel』(1532)과 『가르강튀아 Gargantua』(1534)에 비해서, 12년의 공백 뒤에 발표된 『제 3서 Le Tiers Livre』(1546) 이후의 작품들에서는 사건보다는 인물들의 대화 위주로 이야기가 전개되므로 사변적(思辨的) 성격이 강하다. 이 때문에 프랑스에서도 스토리 중심의 소설에 익숙한 일반 독자들은 라블레 소설 하면 의례 초기의 두 작품을 연상하기 마련이다.
  라블레는 『팡타그뤼엘』의 서문에서 당시에 "두 달만에 성경이 구 년 동안 팔린 양보다 많이 팔린" 『가르강튀아 대연대기』라는 대중소설의 유행에 착안해 좀더 공정하고 믿을 만하기는 하지만 같은 부류에 속하는 이 작품을 쓰게 되었다고 밝히고 있다. 그러나 라블레의 주장과는 달리 이 두 작품은 전혀 다른 발상을 보여준다. 원래 가르강튀아는 프랑스 민간 전설에 나오는 거인의 이름이라고 하는데, 라블레는 그를 유토피아의 왕으로 신분을 바꾸고 그의 아들로 팡타그뤼엘이라는 새로운 인물을 창조해 별개의 연대기를 만들어낸 것이다. 또한 팡타그뤼엘 연작에 등장하는 거인왕들은 육체 못지 않게 정신적으로도 거인의 면모를 갖추고 있다. 팡타그뤼엘이라는 이름은 술에 취해서 잠든 술꾼들의 입안에 소금을 뿌리고 다닌다고 알려진 중세 전설에 나오는 장난꾸러기 악마의 이름에서 유래한 것인데, 라블레는 이 인물에게 목마른 자들의 지배자라는 상징적 의미를 부여한 것이다. 이 갈증은 보다 나은 삶을 누리고자 하는 욕망, 인간의 무한한 가능성에 대한 기대를 의미하는 것이기도 하다. 이러한 의미에서 거인왕들은 르네상스 시대가 염원하던 이상적 인간형, 즉 모든 면에서 뛰어난 능력을 발휘할 수 있는 전인(全人)을 형상화한 것이라 할 수 있다.

  『팡타그뤼엘』에는 이미 거인왕의 행적에 관한 서술보다 화자의 사설 위주로 이야기를 풀어나가는 라블레 특유의 글쓰기 방식이 나타나고 있다. 주인공의 출생, 성장, 교육, 전쟁에서의 무훈 등의 순서대로 기사도 소설의 패턴에 맞게 사건이 전개되지만, 이야기는 기본 줄거리와는 상관없이 독자를 상대로 화자가 엮어나가는 대화와 여담을 통해서 계속 새로운 방향으로 확장되어 나간다. 라블레 소설에 자주 등장하는 장터의 장사치 같은 이야기꾼의 거친 입담이나 욕설, 철학적 주제에 대한 현학적 문답, 시나 편지, 웅변 등의 다양한 문체와 횡설수설 같은 말의 유희, 여러 인물들이 들려주는 별개의 일화들, 빈번한 고전의 인용과 이에 대한 우스꽝스러운 해석 등은 글쓰기에 대한 작가의 남다른 문제의식과 실험정신을 보여주는 것이다.

  『팡타그뤼엘』보다 2년 뒤에 출판된 『가르강튀아』는 문제의 원작 『가르강튀아 대연대기』를 대체하기 위한 전면적 개작이다. 라블레는 『팡타그뤼엘』의 성공에 힘입어 아들의 연대기에 이어 다시 아버지의 연대기로 거슬러 올라간 셈이다. 이 작품은 집필 순서로는 두 번째이지만 주인공의 아버지의 일대기를 다룬 것이므로 사건의 순서에 따라 팡타그뤼엘 연작의 제 1권으로 자리잡게 된다.   

  라블레 작품은 흔히 프랑스 르네상스의 찬가라고 일컬어진다. 가르강튀아가 파리에서 공부하고 있는 아들에게 학업에 전념할 것을 독려하는 유명한 편지(『팡타그뤼엘』 8장)는 문예부흥과 인쇄술의 보급으로 학문의 비약적 발전을 가져온 새로운 시대가 도래했음을 알리는 대표적 선언문이다. 그리고 기존의 수도원과는 달리 "원하는 바를 행하라"는 원칙에 의해서 수도사들의 자유의지가 보장되는 '텔렘 수도원'의 에피소드들(『가르강튀아』 52∼57장)은 중세의 종교적 속박에서 벗어나 인간적 가치가 존중되는 새로운 세상을 꿈꾸던 라블레가 제시하는 유토피아의 모습이다.

  

※ 『가르강튀아』와 『팡타그뤼엘』은 재단의 외국문학 번역지원 대상작으로 선정되어 문학과지성사에서 '대산 세계문학총서'로 발간될 예정이다.
유석호
글 / 유석호_번역가, 연세대 불문과 교수. 1953년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