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상인터뷰
나는 아직도 두 팔을 벌린 채 떠내려 가고 있다

- 프란츠 카프카와의 인터뷰

  • 가상인터뷰
  • 2003년 겨울호 (통권 10호)
나는 아직도 두 팔을 벌린 채 떠내려 가고 있다

- 프란츠 카프카와의 인터뷰

▲  프란츠 카프카   © 운영자
- 필자 : 나는 당신을 생각하면 떠오르는 것이 『변신』이다. 사람이 벌레로 변신하는 말도 안되는 이야기를 '세기의 소설'로 만든 당신의 천재성에 지금도 감탄을 금하지 못한다. 『변신』의 마지막 장면, 즉 벌레로 변해 집안의 우환거리가 되어버린 그레고르 잠자가 마침내 죽자(그의 아버지가 던진 사과가 등에 박힌 것이 죽음의 원인이다) 잠자의 가족이 오랜만에 교외로 나가 따뜻한 햇빛을 즐기는 모습은 깊은 슬픔을 불러일으킨다. 집단(집단의 가장 기초적 형태가 가족이다)에 유용하지 못한 인간은 하잘 것 없는 존재(벌레와도 같은)로 전락시키는 문명 세계의 냉혹한 폭력을 아프게 드러내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자리에서 나는 당신의 소설에 대해 묻지 않을 것이다. 내가 묻고자 하는 것은 당신의 삶이다. 삶에서도 사랑 이야기에 초점을 맞출 것이다. 당신의 가슴 속으로 가장 깊이 들어온 여자는 펠리체 바우어라고 생각한다. 그녀를 어떻게 만났는가?

- 카프카 : 1912년 8월 13일 늦은 저녁 막스 브로트의 집에서 그녀를 처음 만났다. 아시다시피 막스 브로트는 나의 문학 작업에 대해 뜨거운 관심과 애정을 가진 유일한 나의 친구였다. 그 친구가 아니었으면 작가로서의 나의 존재가 당신들에게 알려지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아무튼 내가 펠리체에게 관심을 갖게 된 것은 그녀의 발랄한 성격 때문이었다. 타인에게 스스럼없이 대하는 태도와, 주저하지 않고 자신의 의견을 말하는 그녀의 모습은 참으로 놀라웠다. 내가 정적인 인간인 데에 비해 그녀는 동적인 인간이었다.

- 필자 : 당신은 프라하에서, 펠리체는 베를린에서 살았다. 두 사람의 관계는 편지로서 이루어진 것으로 알고 있는데……

- 카프카 : 그렇다. 아시다시피 나는 타인이 가까이 있으면 혼란과 불안을 느낀다. 내가 친척들을 싫어하는 것은 그들이 나빠서가 아니라, 나와 가까이 있는 존재들이기 때문이다. 만약 펠리체가 프라하에 살았다면 나는 그녀와 관계를 갖지 않았을 것이다. 설혹 관계를 가졌다 하더라도 오래 가지는 못했을 것이다. 우리가 서로에게 다가간 것은 편지라는 매개체를 통해서였다. 편지를 쓰는 동안 나는 나를 괴롭히는 폐색증에서 해방되었다. 그러니까 혀로 하는 말은 나를 불안과 혼란에 빠트리지만 손으로 쓰는 글은 나를 자유롭게 했다. 그 자유가 나로 하여금 그녀를 사랑하게 했다.

- 필자 : 당신에게 글은 무엇인가?

- 카프카 : 내가 할 수 있는 것들 가운데 본질에 가장 가까운 것이 글쓰기였다. 이유는 모르겠으나 본능적으로 그렇게 느껴졌다. 보면 알겠지만 내 몸은 무척 마른 편이다. 너무 말라 내면의 불을 간직하는 지방이 거의 없다. 그러니 내 몸 속의 에너지를 다 긁어모아도 글쓰기가 요구하는 에너지의 반도 못미친다. 내가 성(性)과 음주, 철학적 명상과 음악의 쾌락에 대한 욕망을 끊은 것은 그런 이유 때문이다. 그 모든 것들에 대해 나는 거의 굶다시피했다.

- 필자 : 그래서 펠리체와 만나는 것을 두려워 했나? (카프카는 하루에 편지를 두 번 내지 세 번씩 쓸 정도로 펠리체에게 몰두했다. 그럼에도 그는 편지 교류가 시작된지 7개월만에 그녀를 처음 만났다. 그 만남도 오랜 망설임 끝에 이루어진 것이었다. 만남의 시간도 무척 짧았다)

- 카프카 : 부정하지는 않겠다. 솔직히 말하면, 나는 그녀에게 편지 이외의 것은 원하지 않았다. 나와 멀리 떨어진 곳에서 나를 위해 존재하는 한 여인을 느끼는 것만으로 충분히 행복했다.

- 필자 : 그런데 약혼은 왜 했나? (그들의 첫 번째 약혼은 1914년 6월 1일 베를린에서 이루어졌다)

- 카프카 : 펠리체는 나의 실체도 모른 채 나와 결혼하고 싶어했다. 그래서 난 편지에서 이런 말까지 했다. 당신이 여자로서 원하는 것은 한 사람의 남자이지 땅위에 기어 다니는 연약한 벌레는 아닐 것이라고.

- 필자 : 연약한 벌레라고 하니 당신의 소설 『변신』이 떠오른다.

- 카프카 : 상상은 독자의 권리다. 작가는 독자의 상상을 방해할 권리가 없다. 아무튼 펠리체는 나의 고백을 귀담아 듣지 않았다.

- 필자 : 펠리체와 결혼하고 싶은 마음이 전혀 없었나?

- 카프카 : 마음 한 구석에는 같이 살게됨으로써 얻게될지도 모를 것들에 대한 희미한 기대가 있었던 것은 사실이다. 그 기대가 약혼을 끝까지 반대하지 못한 이유가 될는지도 모르겠다.

- 필자 : 약혼 후 당신은 약혼을 깨뜨리기 위해 온갖 노력을 다했다. 그 이유가 무엇인가?

- 카프카 : 약혼식을 하는 동안 나는 내가 범죄자처럼 묶여 있는 듯한 느낌을 내내 떨치지 못했다. 약혼식이 끝난 후 펠리체와 가구점에 갔는데, 지금도 그때의 느낌을 잊지 못한다. 한 번 자리에 놓이면 다시는 옮겨질 수 없을 것같은 육중한 가구들을 보니 숨이 막혔다. 나에게 그것들은 생활에 유용한 도구가 아니라 묘비처럼 보였다. 나는 자유롭고 싶었다.

- 필자 : 당신들의 약혼식은 6주일 후 파혼으로 이어졌다. 파혼 이후 바라던 자유를 얻었는가?

- 카프카 : 파혼이 이루어졌던 장소는 법정과 흡사했다. 나는 재판을 받았고, 그 재판에서 상처와 굴욕을 느꼈다. 결과는 내가 바란대로 되었으나 상처와 굴욕은 가슴 속에서 좀처럼 사라지지 않았다.

- 필자 : 당신의 소설 『소송』은 그 재판의 산물인가?

- 카프카 : 당신이 그렇게 생각했다면 그렇겠지.

- 필자 : 파혼에도 불구하고 당신들의 관계는 끊어지지 않았다. 펠리체는 당신에게 슬픈 헌정사를 써넣은 플로베르의 소설 『살람보』를 보냈다. 그리고 당신은 답장에서 이렇게 썼다. 아무것도 변하지 않았다고. 어떠한 어둠도, 어떠한 추위도. 변한 것이라곤 편지가 뜸해진 것 뿐이라고. 그러면서 당신은 다시 시작하자고 했다. 파혼을 당한 여인에게.

- 카프카 : 그녀의 헌정사가 옛날의 향수를 불러일으킨 탓이었다. 내가 갈망한 것은 철저한 고독이었다. 하지만 철저한 고독이 때때로 나를 괴롭히곤 했다. 나의 약함에 절망했지만 어쩔 수가 없었다.

- 필자 : 1917년 7월, 당신과 펠리체는 두 번째 약혼식을 가졌다. 그런데 약혼식 이후 한달도 채 못되어 당신들 관계에 심각한 균열이 생기기 시작했다.

- 카프카 : 펠리체는 나를 지독한 이기주의자라고 비난했다. 그녀의 말이 맞았다. 나는 숙명적으로 타인을 나의 공간 속으로 받아들이지 못하는 이기주의자였다. 그것을 알면서도 두 번씩이나 약혼을 한 것은 숙명에 대한 짧은 저항이었다.

- 필자 : 그 짧은 저항이 펠리체에게는 치명적인 상처가 되리라는 것을 몰랐는가?

- 카프카 : 왜 몰랐겠는가? 그래서 다시 파혼을 생각한 것이다.

- 필자 : 정말 파혼을 원했는가?

- 카프카 : 간절히 원했다. 문제는 내가 그녀에게 그 말을 차마 할 수 없었다는 사실에 있었다. 그때의 절망은 형언할 수 없는 것이었다. 생각을 해보라. 결혼이 두 사람을 불행 속으로 빠뜨리라는 것을 알고 있으면서, 그것을 거부할 수 없는 자의 심정을. 그런 상황 속에서 터져나온 것이 각혈이었다. 솔직히 고백하자면 각혈 후 나는 안도감을 느꼈다. 파혼의 명분이 생겼기 때문이었다.

- 필자 : 기록에 따르면 의사로부터 폐결핵이라는 공식적인 진단을 받은 후 당신은 구원의 느낌을 받았다고 했다. 첫째는 펠리체와의 약혼으로부터의 구원이며, 두 번째는 지긋지긋한 직장 생활로부터의 구원이라고 했다. 정말 그랬나?

- 카프카 : 내가 부인한다고 해서 당신이 믿겠는가?

 

▲ 정찬
 © 운영자


- 필자 : 당신이 의사의 권고로 시골에서 농장을 하는 여동생 오틀라의 집으로 요양하러 간 후 브로트에게 쓴 편지를 보면 그것을 느낄 수 있다. 들어보겠는가?


- 카프카 : 듣겠다.

- 필자 : 오틀라가 정말 나를 그녀의 날개에 실어 이 힘든 세상으로부터 떠나게 해주고 있네. 내가 기거하는 방은 통풍이 잘되고 따뜻하네. 그리고 집 전체가 거의 완벽할 정도로 조용하다네. 내가 먹어야 할 것은 무엇이나 주위에 풍성히 있네. 무엇보다도 자유가 있다네.

- 카프카 : 음, 그래. 내가 그렇게 썼지.

- 필자 : 펠리체가 당신을 만나기 위해 서른시간이나 차를 타고 왔음에도 당신은 그녀의 방문이 당신의 편안함을 방해한다는 느낌에서 헤어나오지 못했다. 그녀가 돌아간 이후 편지가 두 번씩이나 왔음에도 당신은 뜯어보지도 않았다.  

- 카프카 : 내 생활의 균형을 유지하기 위한 유일한 방법이었다.

- 필자 : 당시 당신의 건강은 그렇게 나쁘지 않았다. 의사도 심각한 증상은 아니라고 했다. 그럼에도 당신은 펠리체에게 앞으로 더 이상 건강해질 수가 없을 것이라고 썼다.

- 카프카 : 우리에게는 영원한 이별이 필요했다. 나와 그녀를 위해.

- 필자 : 그런데 묘하게도 당신은 편지에 적은 것처럼 병에서 헤어나오지 못한 채 눈을 감았다. 물론 그 사이에는 7년의 시간이 가로놓여 있다. 그동안 당신은 율리 보리첵과 약혼했다가 1년 후 파혼했고, 기혼녀 밀레나 예전스카와 편지 교환을 했으며, 도라 디아만트와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짧은 공동생활을 했다. 당신이 숨을 거둔 것은 마흔한 번째 생일을 꼭 한달 앞둔 1924년 6월 3일이었다. 당신이 남긴 일기에서 내 가슴을 가장 아프게 하는 것은 다음의 문장이다. "나는 아직까지 결정적인 것을 쓰지 않았다. 나는 아직도 두 팔을 벌린 채 떠내려가고 있다. 앞으로 내가 해야할 일은 엄청나다." 하지만 당신은 두 팔을 벌린 채 소리도 없이 저쪽 세계로 넘어가버렸다. 해야할 일이 엄청나게 많았던 당신이.

- 카프카 : 그것은 내가 만든 운명이 아니다. 운명이란 거역할 수 없는 어떤 것이다. 돌이켜보면 그때 난 운명의 강물에 떠내려가고 있었다. 두 팔을 벌린 채.

정찬
글 / 정찬_소설가. 1953년생. 『기억의 강』 『아늑한 길』 『세상의 저녁』 『베니스에서 죽다』 등

프란츠 카프카(Franz Kafka)_소설가. 1883년생. 소설 『심판』 『변신』 『아메리카』 『유형지에서』 『시골 의사』 등. 1924년에 폐결핵으로 사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