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작 후기
죽서루 벚나무 아래서 업어 주던 아버지

- 동화 『아빠, 업어 줘』

  • 창작 후기
  • 2003년 겨울호 (통권 10호)
죽서루 벚나무 아래서 업어 주던 아버지

- 동화 『아빠, 업어 줘』

▲     © 운영자
 
초등학교 5학년 아이들과 글쓰기를 하면서 '아버지가 좋은 이유 열가지'를 써보라고 했다.


  첫째, 돈을 벌어 오기 때문에

  둘째, 사 달라는 것을 사 주어서

  셋째, ……

  아이들은 더이상 써나가지 못하고 서로 멀뚱거리며 쳐다본다.

  "얘들아, 아빠가 너희들을 낳아주셨잖아."

  "에이, 선생님은 엄마가 낳아주셨지 뭐, 아빠가 낳아주셨나요?"

  이쯤되면 생물학적 이야기가 나와야 된다.

  "얘들은, 아빠가 없으면 엄마 혼자 어떻게 아기를 낳니?"

  "헤헤헤…… 정자와 난자가 만나는 거요?"

  알것 다 아는 녀석들이다. 그런데 아버지가 좋은 이유를 생각해내지 못해서 끙끙거린다.

  오늘을 살아내야 할 아버지들에게 '아버지의 부재'와 '돈버는 기계'로의 전락을 말한다면 서로가 마음 아픈 일이다. 그러나 아버지들은 실망하지 않아도 된다. 지금 당장은 아이들에게 두가지 좋은 점만 생각나게 한 아버지들이지만 훗날 자식들은 오늘을 '열심히 살아낸 아버지'들을 존경하며 사랑과 감사의 고백을 하게 될 것이다.

  내 아버지는 '탈(脫)가장'이었다. 어머니의 말을 빌리면 '바람처럼 떠돌다가 손님처럼 찾아오는 웬수같은 양반'이었다. 그래서 어머니와 내 형제들은 배고픈 설움을 겪었다. 아마 그때 나에게 아버지가 좋은 이유를 쓰라고 했다면 난 한가지도 안 적었을 것이다. 그러나 세월이 흐르면서 아버지가 지식인으로서 시대적 울분을 삼키며 방황했던 아픔을 이해하게 되었고, 배고팠던 설움도 다 잊어버렸다. 오히려 틈틈히 곁에 있어 주던 자상하던 그 모습이 따뜻하게 남아있을 뿐이다.

  나는 아버지의 이야기를 쓰고 싶었다. 그러나 내가 기억하는 아버지에 대한 추억은 그리 많지 않았다. 우리 형제들을 옆구리에 눕히고 아버지의 방랑기나 옛날 이야기를 들려주던 일과, 삼척 죽서루 벚나무 밑에서 업어주던 그런 단편적인 것으로 아버지의 인물을 설정하기에는 부족했다. 그리고 내가 쓰는 작품은 어린이들에게 읽힐 동화이기에 내 아버지가 찾으러 다녔던 시대적 유토피아를 이해시킬 방법이 마땅치 않았다. 그래서 "어떻게 하면 아이들이 친근하게 다가가서 따뜻함을 느낄 수 있는 아버지를 그릴 수 있을까"를 고민했다. 또, 내게 가장 즐거운 추억으로 남아 있는 아버지가 업어주던 이야기를 꼭 넣고 싶었다. 그렇게 업히는 이야기를 쓰려면 주인공이 업히고 싶어할 만한 나이의 꼬맹이어야 했다. 그래서 처음에는 주인공의 눈높이에 맞는 저학년 단편동화로 써 나갔다.

  그런데 중간 쯤 써 내려갔을 때 우연히 대산창작기금을 알게 되었다.

  "그래, 장편으로 밀고 나가자. 소도 언덕이 있어야 비빈다는데 나도 내 문학에 튼실한 언덕을 만들어보자" 하는 욕심이 생기면서 쓰던 글의 방향을 틀게 되었다. 날짜가 촉박했다. 열심히 썼지만 마감시간에 전동차 안에서 뛰었다.

  그리고 나는 배낭을 둘러메고 인도로 떠났다. 뭄바이에서 까마귀 떼들의 지독한 우지짐을 들으며 새벽 잠을 깼을 때 대산문화재단 책상위에 쌓여있던 원고들이 생각났고, 괜한 욕심을 낸 것이 부끄러웠다. 아잔타에서 부처님 장딴지를 만져보며 발표날이 며칠 지난 것이 기억났지만. 뜨거운 열기를 헤치고 카주라호에 이르렀을 때는 이미 작품에 대한 생각은 까마득히 잊고 있었다. 그런데 집에 안부전화를 했더니 수혜 대상자로 선정되었다고 알려 주었다. 나는 게스트하우스 옥상에 올라가 하늘을 쳐다보며 외쳤다.

  "나는 글쟁이다. 나는 평생 글쟁이로 살것이다."

  이십여년 동안 문학의 변방을 헤매다가 비로소 인정받게 되었다는 기쁨에 눈물이 났다.

  이제 내가 쓴 글이 예쁜 책으로 탄생된 것을 보면서 글쟁이에게는 아픔을 보듬어 안고 옹이가 맺힐 때까지 견뎌온 세월이 소중하다는 것을 새삼 깨닫는다. 그리고 그 세월에 대한 보상이 대산문화재단을 통해 나에게 온것은 큰 행운이며 평생 잊지 못할 감사거리다.

  다시 말하고 싶은 것은 아이들 생각에 좋은 이유가 두가지 뿐인 아버지는 실망할 필요가 없다. 내가 바람같은 내 아버지를 존경하고 사랑하며 글을 썼듯이 아이들도 아버지가 좋은 이유를 한없이 쓸 날이 반드시 올테니까.  

※ 장편동화 『아빠, 업어 줘』는 2002년 대산창작기금을 받아 비룡소에서 출간되었다.
이옥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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