햇수로 8년 전이다. 늦가을에 나는 경주로 강석경 선생을 찾아갔다. 다음 해 봄에 인도로 갈 작정이었기에, 일찍이 인도에 다녀와 『인도 기행』 『인도로 간 또또』를 쓴 선배 작가에게 도움말을 듣고 싶었다. 소문에 그는 은거하여 전화도 잘 받지 않는다고 했다. 『숲 속의 방』의 아린 고독이 되새겨지고 겁이 났다. 막상 찻집에 마주 앉으니 그는 자상했다. 그래도 시든 풀에 덮여 낙타등 같은 능에 둘이 나란히 기대앉아, 고도(古都)의 빈 들판을 바라보던 때가 역시 좋았다. 말없던 그 순간에 나는 타국에 대한 쓸데없는 걱정을 잊었다.
올 가을 나는 선생을 만나러 다시 거기 갔다. 고속버스 의자에서 뒤척이며 내 머리는 뜨거웠다. 아직 잡지(『세계의문학』)에 연재 중이라 내가 기억에 담아갈 수밖에 없는 작가의 장편 『미불(米佛)』 탓이다. 왜소한 노인의 노년기라고도 할 수 있는 이 소설 첫 회부터 나는 앞머리를 그을릴 듯한 열기를 느꼈다. '신이 있다면 색채 속에 머물러 계실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는, 노화가 미불의 신앙에 가까운 진채(眞彩)에 대한 집념 때문이며, 또한 반세기는 나이 차이가 나는 여인에 대한 정염(精炎) 때문이다. 집념으로 그는 칠순에 나이에 인도까지 가서 겨울에 핀 미친 개나리처럼 만개하며, 정염으로 '오직 그 신비스러운 상처이기만 한' 연인과의 열락에서 헤어날 줄을 모른다. '쌀톨 만한 불성'을 가진 미불, '버러지처럼 자기 본성에 순응하며 여자를 사랑하고 그림을 그리는 환쟁이'일 뿐인 그가 화산처럼 장엄하게 느껴진다. 성자의 선행록이라면 차라리 싸늘했을 터이다. 속정을 초월하는 우화(羽化)도 다른 동물이나 식물의 상처에서 버러지로 꿈틀거리는 전 단계가 있을 것이며, 예술은 성(聖)을 위해 속(俗)을 생략하지 않는다. 그것이 예술의 진실이다. 쌀톨 만큼씩 인간사의 진구렁을 기어이 횡단하였으니, 노화가는 당연히 무정한 흑백이 아니라 세상을 태우는 진채의 날개를 달고 비상한다. 나로서는 그렇게 생각된다.
창 밖으로 능들이 게으르게 지나가고 버스는 경주에 도착했다. 알면 알수록 자상한 선생은 그러마는 말도 없이 터미널까지 마중나왔다. 낙엽 날리는 바람이 이마를 식힌다. 경주에서는 여전히 말이 허무해진다. 낱장마다 화가의 화폭과, 여자의 육체와, 난만한 자연에서 빛과 향이 뿜어져 나오는 『미불』이, 이렇게 고즈넉한 곳에서 씌어졌다니 새삼 놀랍다. 그럼 인도인가. 선생보다 늦게 내가 가본 인도는, 온갖 신(神)과 색과 소리가 들끓고 있었다.
경주에 8년이나 머물고 있는 이유를 작가는 간단히 대답했다. 혼재라, 나는 인공의 고분이 천 년의 세월 동안 자연이 되고 만, 읍내 같은 경주 시내를 둘러본다. 인도에 대한 작가의 생각이 그랬다. '삶과 죽음이 하나요, 현세와 내세가 함께 흘러가는 곳.' 그에게는 경주가 인도다. 『미불』은 역사가 휴식하는 경주도 용광로 인도도 아닌, 삶과 죽음의 혼재와 순환이라는 추상에서 폭발하였다. 유채와 무채, 초월과 세속마저 작가에게는 과정일지언정 의미있는 구분이 아닐 것이다. 그걸 구체적으로 해독해 보려고 내가 말을 다는 족족 헛소리일 수밖에 없다. 분출하는 예술혼 옆에서 꽹과리를 두드리는 소음일 뿐이다.
"나를 구원하는 것은 세 가지이다. 자연과 예술과 사회. 자연은 문만 나서면 들판인 경주에서 얻었고, 예술은 혼자서 해왔으며 혼자 할 수밖에 없는 일이다. 그러나 사회는 그렇지 않다. 사람은 혼자 사는 게 아니라서 사회 속에 존재해야만 하는데, 사회의 한계는 개인을 속박한다. 사회 문제는 개인적으로 해결하기가 불가능하기 때문에 사회가 전반적으로 바뀌기 전까지 개인은 끊임없이 갈등한다. 내게 문학이 없었다면 버티기 힘들었을 것이다."
작가는 『내 안의 깊은 계단』, 『세상의 별은 다, 라사에 뜬다』 등이 사회에 대한 탐구였다고 말하는데, 내가 굳이 집어내자면 여성을 억압하는 제도에 대한 비판이다. 가부장적인 우리 사회가 여성에게 더 가혹하기 때문이다. 작가도 여성으로 살아오며 '계속 가시에 찔렸다'고 표현한다. 그러나 사회 비판이 목표는 아니다.
'소멸과 재생이 되풀이되는 윤회하는 삶의 기나긴 길을 이승과 저승을 넘나들 듯 고고학을 통해 보여 주고자 했고 작게는 제도를 비판하면서 윤회하는 업을 그리고자 했다 …… 우리의 가슴 속엔 남 모르는 깊은 계단이 있고, 삶의 껍질을 벗고 그 계단으로 내려간다면 본질을 만날 수 있을 것이다.' (『내 안의 깊은 계단』 작가 후기 중)
작가에게 중요한 것은 본질의 추구이며, 사회 비판은 삶의 껍질 차원에 대응하는 불가피한 업무 수행이다.
"제도는 비본질적이다. 국경만 넘어가면 달라지는데 그것이 어떻게 본질인가. 그것과 씨름하느라 인생을 보내는 건 어찌 보면 낭비다. 상대적으로 더 구원된 사회, 말하자면 개인을 덜 속박하는 사회에 태어났다면 나는 그런 글을 덜 쓰지 않았을까."
작가에게 보다 즐거운 작업은 집필이 거의 마무리되어가는 『미불』이나 『가까운 골짜기』 같은 이른바 '예술가 소설'인 듯하다. 그러나 그것도 그에게 즐겁기만 하지는 않다.
"나는 예술가를 그리면서 나 자신을 탐구한다. 예술은 그 과정이다. 작가가 되기 위해 태어났다고 생각해 본 적은 한 번도 없다. 예술로 치면 차라리 연극이나 무용 같은 즉흥적인 작업이 내 적성에 더 맞을 것 같다. 책상 앞에 앉아 혼신을 쥐어짜 글을 쓰는 일은 나한테 늘 지나친 노역이자 스트레스였다. 그래서 과작이고, 그나마 업이라는 생각이 든다. 이 업을 다하면 자연인으로 돌아가 나 자신으로 살고 싶다."
그는 인도에서 돌아와서도 한동안 직업을 바꿀까 고민했다는데, 그 무렵 가슴 두근거리며 선배 작가를 찾았던 나는 그런 줄 꿈에도 몰랐었다. 내가 기억하기로 글쓰기도 업이라는 진술은 에세이집 『능으로 가는 길』에 진지하게 나오는데, 그래도 선생의 이생의 업은 어디까지나 글쓰기이지 바뀔 수 있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자연인으로 돌아가도 혼자라도 쓰긴 쓸 것이다. 이야기를 해야 하니까. 이야기를 안 해도 좋은 세상이면 좋겠는데, 그런 완벽한 세상은 오지 않을 테니까. 플로베르는 삶을 소유하기 위해 태어난 게 아니라 이야기하기 위해 태어났다고 말했다. 작가가 좋은 점은, 개인적 체험으로 끝나지 않고 삶을 이야기할 수 있다는 것이다."
불완전한 사회가 글을 쓰게 만든다면, 그 정도가 심한 사회에 태어났다는 것은 작가로서 복이다. 남자였다면 작가가 되지 않고 소림사에서 무술을 했을 거라고도 선생은 말했는데, 그것도 좋지만 아무래도 그는 『미불』을 쓰는 편이 낫다. 좋은 작가를 놓치지 않으려는 독자의 이기심으로, 나는 고집하고 싶다. 여자라는 불리한 조건이, 선진국 못 된 나라의 독가시가 그에게는 고통이자 창조적 자극이다. 문학은 그에게 업이자 자기를 지탱하는 방식이며, 예술은 속박이면서 자유를 향한 계단이다. 작가가 작품을 디디지 않는다면 자기 속의 궁극적 본질에 어떻게 도달하겠는가. 예술가는 예술로 자기를 부정하여 더 큰 자기를 얻고, 그 예술을 부정하여 더 깊은 예술을 얻으며 계속해서 죽는다. 그래야 비로소 산다.
'화면 맨 위에 깔린 붉은 강물과 까마귀 세 마리, 일몰의 강에 잠긴 붓다의 발자국과 물결 속에 바퀴처럼 흘러가는 법륜, 법륜 속에 묘사된 갖가지 자세의 역동적인 성희들, 에너지의 불꽃 같은 고구려 고분벽화의 용도 물위로 솟구치는데 화면 왼편 아래엔 보라색 가사를 걸치고 삿갓을 쓴 승려가 흰 말에서 내리고 있다. 손에 꽃가지 하나 들고. 구도자의 길고 긴 여정을 먹을 떨어트려 발묵시킨 순지에 황색의 선으로 윤곽을 그리고, 전체적으로 무거운 색을 써서 장엄한 기운이 서리게 했다.'
미불이 그리는 「인도에서 돌아오다」라는 작품의 묘사이다. 보라색 가사를 걸친 승려는 법을 구하러 인도로 간 혜초이자 화가 미불 자신이다. '끊임없이 자기를 부수기 위해 출가한다'는 면에서 예술가는 구도자이다. 미불은 젊은 화가들에게 '기존의 것을 흉내내고 남들과 맞추려고 하지 말고 자기만의 그림을, 남이 싫어하는 개성적인 그림을 그려야 한다고' 충고한다. 자신을 죽여 다시 살아나는 생사 순환의 이미지가 이 소설을 관통한다. '암흑이 빛의 원천이며 죽음이 삶의 잠재적 형태'인 이집트의 신화가 그렇고, 시간의 상징인 여신 칼리가 '모든 생명을 낳고 양육하지만 또 모든 생물을 혀를 날름거리며 삼켜버리는' 인도 신화도 그렇다. '여자의 시린지(syringes)를 통과하면서 욕망의 아메바를 쏟아내고 죽어 부활하는' 섹스도 마찬가지다. '창조적인 원리와 파괴적인 원리가 하나다.'
그러나 세계의 관점에서 봐서 그렇지, 죽음은 당사자인 개체로서는 엄연히 소멸이다. 그렇기 때문에 미불은 집요하게 여성의 육체를 통해 자신의 육체를 확인하려 든다. 예술가가 죽으면 자기 작품을 더 이상 극복할 수도 없지 않은가.
'죽음을 거느리는 강가의 신에게 이렇게 기도하고프다. 하늘이 내 수명보다 십년만 더 목숨을 준다면 진정한 화공이 되겠다고. 일본의 상징같은 목판화 후지산을 그린 화가 호쿠사이를 생각했다. 호쿠사이는 90세까지 수명을 누렸지만 죽을 때 이렇게 말했다. 《하늘이 나에게 십년 더 목숨을 주었다면 진정한 화공이 되었을텐데.》 호쿠사이는 팔십세까지 그린 것은 습작이라고 선언하고, 30여개가 넘는 아호 중 <그림에 미친 노인>이란 호도 지었다. 나도 지금까지 그린 것은 다 습작이라 선언하고 그림에 미친 노인이 되리라.'
기어이 생명체의 숙명, 죽음이 미불에게 암이라는 형태로 다가온다. 이제 미불에게는 삶의 실현이 예술이 아니라, 예술을 위해 삶이 절실하게 필요하다.
'여래여, 병을 거두어 주신다면 가문 숲에 비 뿌리듯 아름다운 그림들을 세상에 바치겠습니다. 내 가슴은 온통 그림으로 차있으니 추수를 끝내면 빈 들판처럼 이 육신을 비우리라. 마지막 생명을 화폭에 불태우도록 하늘이여, 도우소서.'
사랑하는 연인도 떠난 병든 노화가에게 결국 남는 것은 일이다. 육신을 비워 아름다운 그림을 그리는 것. '그림을 그리다 죽는다면 화가로서 더 이상 바랄 게 없다.' 미불은 생명을 태워 미를 얻고, 개체를 버리고 예술이 된다. 여정을 끝낸 구도자가 말에서 내리듯 거룩하다. 예술은 방식만이 아니라 본질이 구도이다. 적성에 맞지 않았다지만 오로지 글 때문에 고민하고 글만 쓰며 산 작가는 구도자다.
"일반적으로 예술가는 광기를 주체하지 못해 스캔들이나 일으키는 사람들로 잘못 인식되고 있다. 진정한 예술가의 운명은 일의 운명이라는 걸 보여주고 싶었다."
선생과 만나고 헤어질 때마다, 나는 허리 굽힌 인사보다 덥석 껴안고 싶다. 선배지만 그를 나는 연장자라기보다 참으로 소중한 예술가로 느낀다. 나이가 무슨 상관이랴. 고집 센 장난꾸러기 '또또'도, 암에 걸려 머리카락이 옥수수 수염만큼 남은 몸으로도 여체에 육박해 들어가는 로맨티스트 미불도 그의 맑은 얼굴 이면에 살아있는 것을. 작가야 나를 얼마나 알든 나만은 작가와 전적으로 소통한 듯한 독자의 실수를 나는 저지른다. 몸이 못 따라 그의 팔을 잡았다 놓았다. 멀어지는 그가 이제는 고독하지도 안 그렇지도 않게, 자존(自存)하고 있음을 실감한다. 내가 말문이 잘 열리지 않는 것은 경주가 한적해서만이 아니었다. 말이 아니라 살아야 한다. 푸념만 하지 말고 떠나야 하고, 토론보다는 써야 한다. 재작년엔가 문학상을 받은 선생의 단편 제목이 「나는 너무 멀리 왔을까」인데, 그는 이제껏 멀리 왔고 계속 멀리 가며 자꾸만 정화되는 것 같다. 그는 일의 운명을 짊어졌다.
오수연
글 / 오수연_소설가. 1964년생. 소설 『난쟁이 나라의 국경일』 『빈 집』 『부엌』 등
강석경_소설가. 1951년생. 소설 『숲 속의 방』 『세상의 별은 다, 라사에 뜬다』 『내 안의 깊은 계단』 『가까운 골짜기』 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