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녀석은 팔월의 뜨거운 햇살 속에 신기루처럼 나에게 왔다. 그리고 가을이 시작될 무렵 내 품을 떠났다. 생후 두 달을 겨우 넘긴 페르시안 터키시 앙고라 새끼 고양이. 그 녀석이 내 집에 올 그 즈음 나는 하루하루 숨가쁜 나날을 보내고 있었다. 두 권의 유럽 기행기 출간 막바지 작업에 있었고, 마감이 닥친 단편 소설과 장편 연재 소설 원고까지 한 달 안에 모두 써내야 했다. 서너 시간 온전히 다리 뻗고 잠자리에 든 적이 없을 정도로 시간에 쫓기고 있었지만 그렇다고 고양이를 얻기 위해 일 년을 기다려온 어린 아들의 꿈을 무참히 짓밟을 수도 없었다.
푸른 눈의 새끼 고양이를 안고 온 사람은 대학 때부터 줄곧 유일했던 친구였다. 그녀는 일 년 전 어린 고양이를 분양받아 정성을 다해 키워서는 좋은 짝을 찾아주는가 싶었는데 어느덧 새끼 고양이를 네 마리나 탄생시켰다. 한 마리는 고양이 아버지에게 보내고, 또 한 마리는 늘 정이 그리운 내 아이에게 안겨 주고, 그리고 두 마리는 어미와 함께 자기 집에서 키운다고 했다. 내 아이를 생각하는 그녀의 후의가 고마웠지만, 아무에게도 방해받지 않고 글을 쓸 독립된 시공간이 늘 아쉬운 나로서는 크게 부담스러운 것도 사실이었다. 아이는 새끼 고양이를 들인다는 기쁨에 들떠 내 손을 이끌고 동물 용품 가게로 갔다. 이동장과 화장실을 비롯해서 사료, 빗, 샴푸, 귀청소 소독약까지 사고 보니 한 살림이었다. 일 년을 기다려 왔건만 아이는 하룻밤이 그 일 년보다 더 길게 느껴졌는지 좀처럼 잠을 못 이뤘다. 나는 고양이 꿈에 부풀어 잠든 아이와 아직 오지 않은 새끼 고양이의 한 살림과 아직 씌어지지 않은 원고의 공백을 번갈아보며 깊은 한숨을 쉬었다. 그리고 대천에 홀로 계신 노모가 눈에 밟혔다. 내 어머니도 제대로 봉양하지 못하는 처지에 웬 애완 동물 사육인가. 한심스럽고 사치스러운 생각마저 들었다.
그러나 날이 밝자 고양이는 예정대로 왔고, 그 모습은 세상에서 본 그 어떤 고양이보다 앙증맞고 신비롭고 아름다웠다. 어미 젖을 떼왔으니 일주일은 울음 소리를 각오해야 할 거라고 했으나 이상하게도 그 녀석은 오는 날부터 마치 내 집에 오래 살아온 가족으로 착각할 만큼 순하게 다가왔다. 평생 개와 고양이를 자식처럼 건사하셨던 어머니는 새 식구를 몹시 부담스러워하는 딸을 격려해 주셨고, 나는 곧 그 녀석을 데리고 인사차 어머니한테 내려갔다. 그리고 그 길에 대천 해수욕장 나들이도 나갔다. 해수욕장 둔덕의 시원한 해송 그늘에 돗자리를 펴고 노모와 나, 아이와 새끼 고양이는 불어오는 해풍을 맞으며 한 여름 낮의 달콤한 오수에 빠져들었다.
지난 여름 행복했던 바닷가 삽화 속 새끼 고양이는 더 이상 나에게 없다. 대천에서 돌아와 얼마 지나지 않아 그 녀석을 어여삐 여기던 선배 소설가에게 완전히 맡겨 버린 것이다. 그후 한 계절이 지나가도록 그 녀석을 만나지 못했다. 당장이라도 마음만 먹으면 나는 그 녀석에게 달려갈 수 있었다. 그러나 나는 그 쉬운 전화 안부조차 묻지 않았다. 오랜만에 전화를 해온 선배의 말로는 나와 헤어진 지 한 달도 안 되었는데, 몸이 두 배로 자라났다고, 남편과 단 둘이 사는 선배의 집에서 그 녀석이 얼마나 사랑스런 존재인지, 차분차분 들려두었다. 전화를 끊은 뒤 나는 어느새 곁에 다가와 있는 아들과 함께 그 녀석을 눈 앞에 보듯 한동안 말이 없었다.
그 녀석을 맞아 행복했지만 곧 그 기억을 놓아 버려야 했다. 그동안 나는 한 친구의 우정과 한 생명에 대한 책임감 사이에서 갈등했다. 그 녀석은 늘 서가에 꽂힌 책들을 뽑아 들고 그 속의 맹렬한 정신들과 싸우고 흡입하고 전율할 때와 동일한 에너지를 나에게 요구했다. 나는 그 녀석을 놓든지, 아니면 그 녀석에 전념하든지 해야 했다. 그 녀석은 아이가 없는 동안, 그러니까 내가 작업에 몰두할 수 있는 몇 시간 동안, 마치 그러려고 작정한 것처럼 내 작업을 방해했다. 그러니까 그 녀석의 생체 리듬과 내 작업과는 극과 극에서 잘못 만난 셈이었다. 입주한 지 얼마 안 된 새 집에 날리는 흰 털들은 얼마든지 감수할 수 있었다. 그러나 아이방을 초토화시키고도 모자라 내 서재의 책들을 호시탐탐 노리는 그 녀석의 번득이는 눈을 용납할 수 없었다. 설상가상 모두가 잠든 심야 시간에 작업해야 하는 나를 비웃기라도 하듯 그때야말로 놀이 - 벽타기, 교성지르기, 숨바꼭질하기 - 를 벌일 절호의 찬스라도 되는 것처럼 걷잡을 수 없이 격렬해지는 그 녀석의 야행성, 야수성을 참아낼 수가 없었다. 나는 '소설을 쓰게 해줘, 제발' 이라는 애원과 함께 그 녀석에게 항복하고 말았고, 아이의 수긍과 입회 아래 선배에게 그 녀석과 그 녀석의 살림 일체를 양도했다. 그 녀석을 태운 선배의 자동차가 도로 저편으로 사라지자 나는 그동안 쉬어본 적 없는 새로운 안도와 자유의 숨을 쉬었다. 그리고 자! 이젠 소설 좀 제대로 써보자! 두 손을 꽉 맞잡았다.
또 한 계절이 시작되고 있다. 이 겨울 나는 그 여름 한낮의 꿈같은 삽화에 값할 소설을 써야 한다. 깊은 밤, 그 녀석의 맑고 푸른 눈을 허공에 떠올리며 다짐보다 깊은 미소를 지어본다.
- 함정임
- 글 / 함정임_소설가. 1964년생. 소설 『이야기, 떨어지는 가면』 『아주 사소한 중독』 『버스, 지나가다』 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