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우리시대의 화제작
박덕규
-
문학퍼즐
운영자
-
기획특집
문정연
김성곤
차즈 브렌츨리
송경아
이영도
-
SF콩트
김종광
-
재외한국인작가
박은미
-
재단 소식
운영자
-
작가의 고향을 찾아서
정끝별
-
작가를 찾아서
고영직
-
원작 대 영화
윤진
-
시론
이동하
-
소설묘사사전
운영자
-
신간도서
운영자
-
산수유기
이종묵
-
번역후기
박진형
-
문학현장
김용락
김명호
안영국
-
세계의 문학상
조혜영
-
번역서 리뷰
전창배
한대균
-
생각하는 동화
안도현
-
독자노트
정기상
-
대산칼럼
윤상철
-
대산문학상
김수용
서경석
임동확
이정화
-
이 계절의 문학
김영번
-
한국학의 현장
윤해연
-
명작순례
이치수
김재혁
-
문학칼럼
유안진
이태동
-
글밭단상
제이슨 로즈
함정임
장성희
이정록
조정권
김성동
-
대작 에세이
박상륭
-
나의 사진첩
이호철
-
대산초대석
오수연
-
한국문학 해외소개현황
곽효환
-
창작 후기
이옥수
-
숨은 명작을 찾아
신수정
-
우리문학의 순간들
정호웅
-
가상인터뷰
정찬
-
한국문학의 얼굴
박현준
두장만 남은 달력을 앞에 두고 가랑잎이라도 날려버릴 긴 한숨을 쉬어본다. 이제 손사래 쳐볼래야 칠 수도 없는 완벽한 중년인 것이다. 뜨거운 여름날을 보내고 어느덧 가을 입구인가 싶더니 그 가을이 이리도 깊어 첫서리 올 날만을 눈앞에 두고 있는 것이다. 나가자. 이럴 때는 차라리 스스로 저 깊어가는 가을 속으로 뚜벅뚜벅 큰 걸음을 내딛는 게 움츠린 채 닥칠 겨울을 맞이하는 것보다 나으리라. 가을, 대학로 문예회관 극장은 먼길을 떠나지 않고도 세계 공연계의 흐름을 알 수 있다는 점에서 연극을 공부하는 이들에게는 매력적인 학교다. 서울공연예술제 동안 해외초청작 몇편이 연이어 오르고 있는 것이다. 이번 초청공연 중에 러시아로부터 온 상트페테르부르크 리체이넘 극단의 「오이디푸스 렉스」가 단연 눈에 띈다. 소포클레스의 오이디푸스왕은 최소한 여덟명의 배우가 필요하다. 주인공 오이디푸스, 어머니이자 아내인 이오카스테, 처남 크레온, 맹인 예언자 테이레시아스, 양부의 죽음을 알리러 온 코린토스의 전령, 버려진 아기 오이디푸스를 주워 살려낸 늙은 양치기, 극 말미에 이오카스테의 자살과 오이디푸스의 맹목의 자해를 알리는 궁전으로부터 온 사자, 개막부분의 신관 등. 이밖에도 신탁이 지목한 패륜의 범인을 잡아 징치해달라고 모인 코러스들만도 최소한 열두명은 필요한 대작인 것이다. 너무나도 유명해 이제는 낡디낡은 이 고전비극을 리체이넘 극단은 단 세명의 배우만 등장시켜 비극의 충실한 형식이라기보다는 차라리 디오니소스 축제와도 같은 원시적인 에너지 속에서 무대에 올려놓았다. 무엇보다도 이런 야만스러운 오이디푸스는 다시는 없을 것도 같다. 근육질과 역삼각형의 몸매를 가진 미스터 육체미쯤으로 보이는 너무도 혈기방장한 오이디푸스는 고전비극의 고상한 주인공, 지나친 자기 확신 말고는 완전한 도덕성, 정도를 넘어선 고결함 추구보다는 차라리 젊음이 갖는 방일과 미숙함 그 자체가 중대한 결함(hybris)으로 비칠 정도다. 커튼 콜을 하는데 과연, 막 뒤에서 걸어나온 연출가 역시 아주 젊다. 연출을 맡은 프리코첸코는 러시아에서 지금 한창 주목받고 있는 신예라고 한다. 이번 공연에서 흥미로운 점은 단연 고전의 해석이었다. 극장에 들어서면 메주덩어리를 매단 것 같은 돌무지들이 설치미술작품처럼 공중에 매달려 있다. 자세히 보니 그물코 안에 돌들이 가지런히 담겨있어 꼭 골리앗의 미간을 정확히 겨누었던 다윗의 돌팔매를 확대해 놓은 듯도 하다. 허공 중에 매달린 이 돌팔매들은 오이디푸스가 출생의 진실에 다가가면 갈수록 무대 지면을 향해 스윽스윽 내려와 인물의 상황과 내면을 시각적으로 압박한다. 돌팔매들이 거의 지면에 닿을 무렵에서 극은 종막으로 치닫고, '신으로부터 지독한 미움을 받은' 인간 오이디푸스는 돌팔매를 향해 몸을 던져 머리를 부딪고, 저주받은 생을 마감한다. 마치 백정의 촛대에 머리를 맞고 단번에 벌렁 눕는 덩치 큰 황소처럼. 이미 르네 지라르의 유명한 해석이지만 이 공연에서 오이디푸스는 인신공의에 바쳐진, 한 사회의 위기상황을 잠재울 '희생양'이 되는 것이다. 르네 지라르는 말한다. 오이디푸스만큼 완벽한 희생양 후보가 어디 있느냐고. 그는 '이방인'이었고, '불구'였으며 지나치게 우리와 '달랐다'고. 러시아에 온 젊은 연출가는 근육질의 오이디푸스를 내세워, 진실을 캐고자 하는 강한 의지를 지닌 숭고한 오이디푸스가 아니라 그의 넘치는 젊음이, 방만함이, 펄펄뛰는 뜨거운 피와 빛나는 육체성이 그를 비극으로 이끌었다고 웅변하는 것만 같다. 아니 여기에서 그치지 않고 젊음을 최선으로 즐기는 것만이 늙은 신의 시새움조차도 어쩌지 못하는 것 아니냐고 반문하는 것만 같다. 지겨운 반복에도 불구하고 고전은 새로운 해석에 힘입어 거듭 신생의 몸으로 태어난다. 이번 오이디푸스는 제작진의 젊은 피를 수혈받아 다시 살아났다. 수잔 손탁이 저어했던 '더 이상 비평은 해석학이 되어서는 안 된다. 성애학(erotics)이 되어야 한다.'는 전언은 젊은 예술가 앞에서는 당연한 소리로 들린다. 고전에 관한 젊은 날의 야심만만한 해석은 해석학이 아니라 이미 성애학인 것일까? 마음 일찍이 늙어 고전을 정전으로 섬기고 모시기에 급급했던 나는 젊음의 미숙함이 누릴 수 있는 자유로운 시도와 모험 앞에 몸을 사렸으니 원색을 마다하고 무채색만 고집하던 이가 장년이 되어 비로소 주책없이 원색만을 찾는 보상심리처럼 어쩌면 나는 뒤늦게 삶과 연극을 실험하고, 뒤집고, 방만히 깨어버리겠다고 덤빌지도 모를 일이다.
- 장성희
- 글 / 장성희_극작가, 서울예대 겸임교수. 1965년생. 희곡집 『장성희 희곡집』 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