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촌 시대가 본격화된 90년대 이래, 우리 정부와 대산문화재단은 한국 문학의 세계화를 위해 적지 않은 노력을 기울여 왔다. 그 결과 정전(正典, cannon)에 오를 수 있는 대부분의 우리 작품들은 번역이 되었고, 지금도 번역되고 있다. 이러한 우리의 노력은 OECD에 가입하여 선진국으로 발돋움하려는 국가로서의 한국이 훌륭한 문학작품을 가졌음에도 불구하고, 이웃 일본에 비해 세계 문단에 제대로 알려지지 못해 왔다는 강박관념에서 비롯됐다 해도 크게 잘못이 없겠다.
그러나 우리는 우리 자본으로 번역된 우리 작품들을 단순히 외국의 도서관 서고에 꽂는 정도로 소개하는 것에 만족해서는 결코 안된다. 한국문학을 세계화하는 궁극적인 목적은 그것이 해외 시장에서 뿐만 아니라 세계문학 비평계에서 다른 문화 선진국들의 문학처럼 평가받도록 하는 것이다. 이러한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우리는 두가지 사항을 관철해야만 할 것이다.
그 하나는 우리 문학을 세계적으로 알려진 해외 출판사에서 번역, 출판할 수 있는 길을 모색하는 것이다. 불어, 독어, 스페인어권도 좋지만, 세계 언어나 다름없는 영어권의 영향력 있는 출판사에서 우리 작품을 출판할 수 있다면, 그 파급효과는 그만큼 더 클 것이다. 왜냐하면 실제로 서구의 대표적인 출판사는 세계의 모든 독자들에게 다가갈 수 있는 미디어와 관련된 저명한 평론가들과 깊은 관계를 맺고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작업은 현실적으로 대단히 어렵지만 이는 우리가 한국문학의 세계화를 위해 반드시 넘어야할 벽임에 틀림이 없다.
또 다른 하나는 세계의 대표적인 평론가 혹은 문인들이 한국과 한국문학에 관심을 갖도록 만드는 것이다. 그 동안 문예진흥원과 대산문화재단, 그리고 한국문학번역원이 한국문학을 세계에 알리기 위하여 우리 문인들을 세계 여러 나라로 보내는 프로그램을 펼쳐 왔다. 그러나 그들이 현지에서 접촉하는 범위는 한국학을 전문적으로 연구하는 소수 그룹 정도로 지극히 제한되어 있기 때문에 적잖은 좌절감을 느껴 왔다는 것은 숨김 없는 사실이다.
이렇게 우울한 현실을 감안할 때, 그 동안 우리가 문단 정치의 폐해로 인해 한국문학이 세계문학의 중심 무대와 효과적으로 접촉할 수 있는 유일한 채널을 스스로 봉쇄당해 온 것은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다. 다시 말하면, 한국은 세계문학계의 공동 관심사는 물론 노벨문학상 추천권까지 소유한 지구촌 문인들의 UN이라 할 수 있는 '펜'(P.E.N. 국제작가협회)의 정식 회원국이면서도, "패거리 정치"를 통해 등장한 집행부의 능력 부족 때문에 가까운 일본에 비해서 제대로 된 역할을 하지 못할 뿐만 아니라, 소외마저 당하고 있는 것이다. 일본의 경우, 가와바다 야스나리와 오에 겐자부로 등 일본을 대표하는 작가들이 일본 '펜'의 회장과 부회장직에 추대되었고, 대외적 실무를 담당하는 사무총장직(General Secretary)은 회장이 바뀌는 것과 상관이 없이 전문적인 외교관 출신이 계속 맡고 있다. 그 결과 그들은 '펜' 본부로부터 인정을 받으면서 막강한 국력을 바탕으로 하여 오래 전부터 국제무대에서 세계 열강과 더불어 중심적인 역할을 하고 있다.
그러나 한국 '펜'의 회장은 지금까지 단 한번도 국제 무대에서 알려진 인사가 선출된 적이 없다. 이것뿐이 아니다. 정치판을 방불케 하는 문단 선거의 관행이 과거 독재정권의 인권문제로 얼룩졌던 우리의 국가 이미지와 결부되어(국제 펜 본부는 이러한 정보를 잘 알고 있다), 우리는 지금까지 후진적인 주변국가로 외면을 당하고 있다. 현직 한국 '펜' 회장은 말할 것도 없고, 역대 우리 '펜' 회장들을 보라. 그들이 과연 한국 문단 전체를 대표할 수 있는 인물들이었던가. 엄격히 말해, 그들이 한국 '펜'의 회장이 된 것은 문학적 실력과 존경 때문이 아니라 문학과는 거리가 먼 "정치 게임"에 능했기 때문이다. 그들은 실제로 표를 얻기 위해 문인이 지녀야 할 품위를 팽개치고 허울뿐인 권력 유지를 위한 문단 정치에만 전념해 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 결과, 이미 뜻 있고 양식 있는 많은 문인들은 '펜'을 떠났고, 지금은 회장을 추종하는 일부 사람들만 남아 국제 문학인 단체라는 이름 아래 유명무실한 친목단체로 전락하고 말았다. 만일 앞으로도 계속 일부 문단 세력이 오늘날과 같은 정치판을 지속한다면 지구촌에서 우리 문학은 계속 변두리 주변국의 그것으로 머물게 될 것이다.
이렇게 우리 문단의 능력 부족인 일부 세력들이 그들의 허위적인 욕망 때문에 문단정치라는 "길이 아닌 길"을 가며, 세계 무대로 향한 "창"마저 스스로 차단하는 어리석은 행위를 중단하지 않을 경우, 우리 문학의 세계화의 길은 쉽게 열리지 않을 것이다. "악화가 양화를 구축한다"는 그레샴의 범칙이 우리 문단에서 더 이상 일어나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 간절하다.
- 이태동
- 글 / 이태동_평론가, 서강대 영문과 교수. 1938년생. 평론집 『현실과 문학적 상상력』 『우리문학의 현실과 이상』 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