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이네(1797∼1856)는 『노래의 책』과 『여행화첩』 그리고 『로만체로』를 시인으로서의 그의 "명성의 세 기둥"이라고 부른 바 있다. 『노래의 책』(1827)이 민요조를 빌어서 젊은 시절의 사랑과 그리움을 서정적으로 노래한 시편들의 모음집이라면, 1851년에 출간된 『로만체로』는 이야기 형식을 통해 역사와 히브리 전통에 대해서 서술하면서 현실에 대한 비판적 사고를 담은 담시집이라고 할 수 있다. 하이네는 이 시집의 제목과 관련하여 이렇게 말한다. "나는 이 책에 '로만체로'라는 제목을 붙였다. 그 까닭은 여기에 모은 시들이 대체로 로만체 풍으로 되어 있기 때문이다." '로만체'란 원래 기사의 영웅담과 사랑의 모험을 다룬 민요조의 설화시를 이르는데, 이 시집에서 우리는 여러가지 소재를 앞에 놓고 벌이는 하이네 특유의 재치와 걸쭉한 입담을 접할 수 있다. 1831년 독일의 정치적 핍박을 피해 자유와 민주주의가 숨쉬는 파리로 망명한 하이네는 1848년부터 척추결핵에 걸려 이른바 "이불무덤" 상태에 틀어박히게 된다. 육체적인 고통에 더하여 그의 희망이던 1848∼49년 혁명의 실패는 그를 끝없는 좌절감에 젖게 한다. 이제 정치적 진보에 대한 낙관주의는 더 이상 희망이 없는 것으로 전락한다. 이러한 주변 상황의 열악한 여건 속에서 씌어진 『로만체로』는 하나의 일관된 테마를 변주하여 보여준다. 세계사란 부조리와 폭력과 몰락과 고통의 무의미한 순환일 뿐이라는 것이다.
이 시집은 「역사 이야기」, 「애가」, 「히브리의 노래」의 총 3부로 나뉘어 있으며 소재의 다양성이나 운율 및 양식의 특이성에 있어서 그 유례를 찾아볼 수 없다. 제 1부 「역사 이야기」의 특징은 역사 속으로의 변장과 거리감 조성에 있다. 하이네는 패배자의 입장에서 역사를 새롭게 해석한다. 「람프시니토스 왕」에서는 역사를 우스꽝스럽게 일그러뜨려 보여주고, 「비츨리푸츨리」에서는 중남미 아즈테카 왕국의 신 비츨리푸츨리가 스페인 사람들의 정복에 당하고만 있지 않고 급기야 악마가 되어 유럽 대륙에서 복수를 결심하는 모습을 제시한다. 이에 반해서 제 2부 「애가」는 제목에 걸맞게 시인의 고백을 담고 있다. 특히 하이네의 전체 시작품을 통털어 가장 뛰어난 백미라고 할 수 있는 「나사로」 연작시는 병상에 누워 있는 시인의 처지를 심각하고도 통렬하게 묘사한다. 누가복음에 나오는 가난한 문둥병 환자 나사로의 비유 외에 이것은 하이네 자신의 전기적 측면과 관련된다. 시인이 "이불무덤"에서 겪은 소외와 죽음의 고통이 나사로라는 인물에 투영되어 나타나는 것이다. 그리고 제 3부 「히브리의 노래」에서 시인은 다시 역사적이고 객관적인 서술 방식으로 돌아간다. 제 1부가 독일과 유럽의 전설과 역사를 취급하고 있다면, 제 3부는 하이네 자신의 개인적 혈통을 이야기하는 것이다. 시인은 유대교의 역사적인 소재의 틀에다 개인적 고백을 아주 절묘하게 실어서 보여준다. 그것은 유대민족과 시인의 역할을 동일시하는 데에서 파악된다. 두 존재 모두 고통과 선민이라는 삶의 원칙에 따라 존재하기 때문이다.
진지함과 아이러니, 고통과 미소, 체념과 조롱 또는 유머 등 하이네 문학의 기본적인 동인들은 이 시집에서도 작용한다. 시 「흰 코끼리」에서는 낭만주의적인 그리움과 멜랑콜리의 모티프가 아이러니컬하게도 "찐 국수와 오시안만"을 좋아한다는 주인공 흰 코끼리의 성향에 의해 그 환상이 벗겨진다. 여기서 우스꽝스러움이 발생한다. 이렇게 상이한 성질의 시적 요소들을 한 지평에 위치시킴으로써 하이네는 현대 서정시의 특징을 선취하고 있다.
『뵈르네 회고록』(1840)을 발표한 뒤로 얼핏 하이네는 정치적 이슈로부터 벗어나 그 자신이 젊었을 때 비판의 화살을 던졌던 대상인 괴테와 마찬가지로 모든 목적으로부터 자유로운 자율적 예술관을 지향하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우리는 『로만체로』를 통해서 그의 이런 예술관이 현실 정치적 요소를 한 단계 끌어올린 차원에서 행해지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빵과 장미를 함께 추구하는 하이네는 현실을 저버린 공허한 예술을 지양하면서도 모든 과격한 현실주의적 급진론을 거부한다. 그의 문학이 아직도 전 세계적으로 사랑을 받는 근거도 여기에 있다고 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