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학의 현장
차라리 '멋진 배반'을 꿈꾸며

- 『한국의 명시(韓國名詩對譯鑑賞)』 중국어 번역

  • 한국학의 현장
  • 2003년 겨울호 (통권 10호)
차라리 '멋진 배반'을 꿈꾸며

- 『한국의 명시(韓國名詩對譯鑑賞)』 중국어 번역


4년 남짓한 유학 생활을 마치고 중국에 돌아와 중국 학생들에게 한국문학 강의를 시작하게 되었을 무렵, 필자에게 가장 당혹스러웠던 질문은 한국에도 세계적인 명작이 있느냐 하는 것이었다. 당시에 필자는 그 질문을 아래의 두가지 의미로 받아들였다. 하나는 이렇듯 한국문학이 중국에 제대로 번역·소개되지 않았다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시경』을 비롯하여 유구한 문학 전통을 자랑하는 중국인들의 자부심이 질문 속에 내재되어 있다는 점이다. 사실 현재 중국에는 비록 30여개의 대학들에서 한국어학과를 개설하고 있지만 대부분 회화 교육을 위주로 한 실용주의 경향을 과도하게 노출하고 있는 실정이다. 아울러 중국에서 드라마나 대중가요 등의 선풍적인 인기에 힘입은 한류(韓流)의 뜨거운 열기도 그 실상을 따져보면 오히려 진정한 한국문화를 오도(誤導)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이러한 상황에 대한 하나의 작은 반항으로 필자는 한국의 명시들을 체계적으로 중국에 소개해 볼 생각을 언감생심 가지게 되었다. '번역은 하나의 배반'이라는데 그 가운데서도 원문에 대한 '치명적인 배반'을 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 바로 시 번역인 것 같다. 소설이나 기타 장르라면 원문이 좀 길거나 난해하더라도 풀어서 번역할 수 있는데 시 번역은 제한된 형식을 반드시 고려해야 하기 때문에 언어에 대한 고도의 압축과 정제를 필요로 하고 있는 까닭이다. 따라서 직역(直譯)을 하면 문맥이 잘 통하지 않아 오히려 역효과를 가져오는 경우가 더욱 많다. 그래서 필자는 우선 시 작품에 대한 충분한 이해를 바탕으로, 원래 작품의 정서와 분위기를 최대한 잘 살릴 수 있는 의역(意譯)을 선택했다. 어차피 '배반'을 할 바에야 차라리 원래 작품에 최대한 누를 끼치지 않는 선에서 '멋진 배반'을 하기로 결심한 것이다.

다행히 어려서부터 중국어와 한국어를 동시에 모국어로 사용하면서 성장한 경력과 일찍부터 심취하여 많이 외워두었던 당시(唐詩), 송사(宋詞), 홍루몽시사(紅樓夢詩詞) 등 고전작품 및 서지마(徐志摩)를 비롯한 중국 근·현대 시인들의 작품으로부터 큰 도움을 받을 수 있었다. 김억으로부터 윤동주에 이르기까지 30명 시인의 대표적 작품을 선정하여 초벌 번역은 이미 끝냈는데 더욱 어려운 것이 지금 진행 중인 퇴고(推敲) 과정인 것 같다. 여름방학 내내 매달려 있는데 한 행이나 한 연을 갖고 꼬박 하루를 넘기는 경우가 다반사이다. 가령 김소월의 「가는 길」만 해도 그렇다. 「行路」, 「行程」, 「離行」,「離路」,「離程」등 일고여덟 가지 번역을 두고 고민하다가 역시 우아한 맛이 풍기도록 제목의 번역을「離徑」으로 정하긴 했는데 워낙 짧은 시행에 함축되어 있는 내용을 옮기기가 쉽지 않았다. 원문을 그대로 직역할 경우 오히려 의미가 제대로 전달되지 않음은 물론 중국 독자들에게 웃음을 사거나 혹은 아예 외면당할 것이 분명한 까닭이다. 그래서 일단 소월 시의 정서와 분위기에 충실하면서 음절을 맞추기로 하고 아래와 같이 옮겼다.

"그립다 / 말을 할까 / 하니 그리워 // 그냥 갈까 / 그래도 / 다시 또 한번……(후략)"

"切切思念 / 話到脣邊 / 思念更切切 // 想一走了之 / 却還是 / 頻頻又回首……(후략)"

여기에서 "말을 할까"는 화자가 그리움을 입으로 토로할지 말지 하는 상태를 나타내고 있으므로 중국어의 습관대로 "話到脣邊" 즉 "말이 입가에까지 이르렀다"로 옮겨 표현하였다.

그리고 윤동주의 「별헤는 밤」에 나오는 아래의 시행도 마찬가지이다.

"별하나에 추억과 / 별하나에 사랑과 / 별하나에 쓸쓸함과 / 별하나에 동경과 / 별하나에 시와 / 별하나에 어머니, 어머니……(후략)"  

이 부분도 역시 원문 그대로 직역하지 않고 서로 대응되는 양사를 하나씩 추가함으로써 의미전달이 제대로 잘 이루어질 수 있었다. 아울러 운율 면에서도 더욱 자연스러운 리듬을 확보하게 되었다.

"一顆星星一幕回憶 / 一顆星星一腔愛意 / 一顆星星一絲凄凉 / 一顆星星一片憧憬 / 一顆星星一首詩歌 / 一顆星星一빈思念아 母親……(후략)"   

이런 번역은 어쩌면 지나치게 용감한 시도로 보일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서로 다른 언어의 골을 뛰어넘을 수 있는 공분모가 바로 동일한 문화권에 속해 있는 정서나 분위기가 아닌가 싶다. 서로 비슷한 정서나 분위기를 서로 다른 언어습관에 알맞게 표현해야만 시 원문과 번역시 사이의 의사소통이 원활하게 이루어지고 아울러 독자들도 거부감 없이 받아들일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물론 필자가 꿈꾸는 '멋진 배반'을 위해서는 텍스트 자체에 대한 꼼꼼한 읽기와 기존의 연구들을 폭넓게 참조하는 충분한 이해가 선행되어야 함은 당연한 일이다. 아무튼 기왕에 손을 댄 바에야 단어 하나, 쉼표 하나에도 고심을 거듭함으로써 중국 내에서 가장 인정받는 번역을 완성하고 싶다는 욕심을 감히 부려본다.

윤해연
글 / 윤해연_번역가, 길림대 한국언어문학과 부교수. 1972년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