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산문학상 수상작 리뷰
평론 부문 - 언어 너머를 갈구하는 언어

  • 대산문학상 수상작 리뷰
  • 2012년 겨울호 (통권 46호)
평론 부문 - 언어 너머를 갈구하는 언어

황현산 평론집『잘 표현된 불행』

 
황현산 선생의 『잘 표현된 불행』은 『말과 시간의 깊이』(2002년)에 이은 그의 두 번째 평론집이다. 첫 평론집 출간 이후 10년간 써온 글들이다. 시론에 관한 글들, 한국근현대시사에 있어서 작고한 문제적 시인들에 대한 평문들, 현재 시단의 현장비평, 그리고 그 평가에 있어 의견이 갈리는 시들에 대한 필자의 새로운 논의들로 구분하여 4부로 편집하였다. ‘시와 말의 세상’, ‘현대시의 길목’, ‘시 쓰기의 현장’, ‘이 시를 어떻게 읽을까’가 각부의 제목이다. 

저자가 서문에서 언급하고 있듯이 근대 시인들에서부터 현재 활동하는 젊은 시인들에 이르기까지 시나 시인들의 역사적인 조감도를 그린다거나 그 ‘주력선’을 그으려 한 글들이 아니다. 그때그때 요청이나 필요에 따라 쓴 글들이라 겸사처럼 밝히고 있다. 그래서 이 글들의 일관성을 찾자면 “시와 끊임없이 교섭하였던 내 사고에서 찾아야 할 것이다”라고 써 놓고 있다.

허나 이 책을 읽다보면 필자는 원래 조감도나 주력선에는 관심이 없다. ‘역사적’ 조감도나 주력선이란 시가 지니고 있는 깊은 의미를 하나의 의미로 획일화하기도 하고 은폐하기도 한다. 그에게 시란 무엇인가. “나에게 시란 말 저편에 있는 말을 지금 이 시간의 말 속으로 끌어당기는 계기”이다. 말은 사물의 죽음이다. 말은 사물을 명명하면서 삶과 세계, 우주와의 교감과 사물의 생생함을 죽이고 추상화한다. 그러나 시란, 그 말이 추상화한, 그리하여 말 저편으로 은폐된 이 사물을 다시금 살려내는 필사의 노력이다. 언어가 인간의 운명이듯, 가려진 그 무엇, 그 진실과 아름다움에 대한 필사적인 추구는 시인의 운명이다. 그래서 그에게 시는 “포기 하지 않음의 윤리이며 기술”이다. 시간과 육체의 한계를 뛰어넘는 용맹정진의 철학이다.

▲황현산
철학자들이 인간의 힘으로는 닿지 못할 것이라 단념하거나 이미 그 공백이 도달의 증거라고 주장했던 것들을 지금 여기 시간의 언어로 되살려내려는 시의 노력은 사실 절망적인 것이다. 그러나 그는 “말의 이치가 부족하면 말의 박자만을 가지고도 뜻을 전하고, 때로는 이치도 박자도 부족한 말이 그 부족함을 드러내어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것이 시라 규정한다.
시는 절망을 말하면서도 포기하지 않는다. 온갖 수단을 동원하여 말한다. 그리하여 시간이라는 인간의 한계에 맞서면서 인간의 척도로는 도달할 수 없는 것을 지향하는 그 ‘시적 상태’에 대해 저자는 주목한다. 육체와 말, 시간과 사물이 그의 사유에 중요한 키워드가 되는 이유는 위대한 철학자들과 동일하다. 시는 그에게 세상을 사유하는 통로이고 본질을 찾아가는 계기이기 때문이다.

이 평론집은 이러한 시적 사유를 깊이 있게 전개하고 있다. 이론적 틀로 설명하면 자칫 놓치지 쉬운 시의 다층적 의미에 대해 시적 현상과 그 틈 자체에서 사유한 틀과 방법론으로 다가간다. 시의 바닥에서 생성된 시의 현상학이다. 젊은 시인들의 절망적 몸부림에 흔쾌히 다가서고, 문학사에 남겨진 시들에 대해 다시 평가한다. 시 속에 놓인 익명의 말들이 어떻게 의미의 낯선 그림자를 걷어 내며 의미를 생성해 내는지 추궁한다. 이 과정에서 그는 ‘시적 상태’가 일상의 범속함과 맺고 있는 관련성이나, 나아가 문학의 존재 이유에 대해 꼼꼼하고 어렵게, 그리고 시인만큼 선택된 어휘로 긴장을 늦추지 않고 이야기하고 있다. 그의 글은 ‘잘 표현된 시’이다. 그래서 그의 글을 읽는 일은 어렵지만 값지다.

 

서경석
글 | 서경석_한양대학교 국어국문과 교수. 1959년생
저서 『한국근대리얼리즘문학사 연구』 『한국 근대문학사론』 『윤기정전집』 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