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특집
나를 있게한 계성원 청소년문예캠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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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2년 겨울호 (통권 46호)
나를 있게한 계성원 청소년문예캠프

 

나는 고3 때 제4회 대산청소년문학상 시 부분 예심을 거친 뒤 교보생명 연수원이기도 한 천안 계성원에서 열린 문예캠프에 참가했다. 당시 나는 여러 임무를 수행하는 조장으로 뽑혔으나 캠프 기간 동안 단 한 번도 여러 임무를 수행한 적이 없었다. 오히려 밥 먹듯 규칙을 어기고 조원들과 엉뚱한 짓만 했다. 그럼에도 각자 집으로 돌아가는 날, 헤어지는 마당에 조장하느라고 너 참 수고했단 감격어린 말을 들었을 때 나는 탄식했다. 세상에 태어나 그토록 뼈저린 반어법은 처음이었다.
 
역시나 문학상을 주최할 만 하다고 여겼다. 인간과 인간 사이에서 벌어지는 수많은 요식행위 가운데 한 가지를 체득한 것이었다. 캠프에서 받은 상장으로 대학에 특별전형하던 친구들과 달리 나는 재단이 준 장학금 일백만 원을 받아들고 대학에 갈 필요 없다고 선언한다. 원자력발전소 건축기사, 서점 점원, 포장마차, 두부 장사, 커피숍 알바 등등을 거치는 동안 군대에서 들어오라고 해 말 없이 들어갔다 무사하게 나왔다. 입대 전엔 거울을 봐도 내가 딱하지 않고 어리석지 않았는데, 제대한 뒤 거울을 보니 내가 어리석고 딱하게 변해 있었다. 어리석고 딱한 나를 구할 수 없을까 하고 찾아간 곳이 광화문에 있는 교보빌딩 9층 대산문화재단이다. 재단은 나에게 대입 특별전형 응시를 위한 입상 증명서를 써 주었다. 이후 대학에 들어가 시를 써 신춘문예에 당선 되었다. 그런데 나는 나의 시가 말장난에 불과하다고 여겼다. 언어 위에 현미경을 들이대고 유전자 조작 같은 문장이나 만들어대던 시기였다. 그러다 한 번은 재단 측에서 문단의 거두들이 참석하는 자리에 애써 만들어준 내 자리를 펑크 낸 일도 있다. 재단의 담당자가 갖은 곤욕을 치렀다. 가끔 그 일을 책잡힐 것이다. 관람 후기를 써오라는 숙제로 본 연극이 정말 마음에 안 들어서 생전 처음 쓴 희곡으로 제4회 대산대학문학상에 응모하여 덜컥 당선이 되었다. 이 상을 계기로 나는 비로소 글쟁이의 몸으로 숨을 쉴 수 있게 되었다. 지독스레 ‘글말’만 알던 사람이 ‘입말’을 듣고 쓸 줄 알게 된 것이다. 살면서 누구 눈치보고 덕 본 일 없이 살아왔다. 어떤가. 이만하면 덕분이라고 할 만큼 기막히게 신세진 경우 아닌가. 재단이 있었기에 나처럼 불편한 작가가 살아남을 수 있었다. 대산문화재단이 어엿한 20주년이다. 늦었지만 계성원 청소년 문예캠프를 반성한다.
김지훈
김지훈

극작가. 1978년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