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산문화재단은 광화문 1번지에 있다. 행정주소명은 종로1가 1번지다. 광화문 1번지는 멀리 학창시절의 나에게는 책을 사고 친구를 만나던 근사한 현대적 아지트였다. 교보문고의 천장을 가득 메운 휘황찬란한 조명보다 더 빛나던 수많은 책들, 다리 아픈 줄 모르고 서서 그 책들을 읽으며 꾸었던 꿈들이 여태 아련하면서도 생생하다(이 추억이 어찌 나만의 것이랴). 만약 ‘나의 현대 modern’에 관한 목록을 작성한다면 교보문고에서 처음 본 질서정연한 책들의 번쩍이는 회랑을 빼놓을 수는 없으리라. 그 후 문학평론가로 데뷔한 내게 광화문 1번지는 대산창작기금의 응모자(두어 번 지원했는데 떨어졌다. 정말이지 유감은 없다), 《대산문화》 편집위원 등의 공식적인 일로 종종 드나드는 한국문단의 별장 같은 곳이 되었다. 꿈의 공간이었던 곳이 현실의 장소가 된 것이다.
별장은 집은 아니지만 집처럼 편안하고, 때로 집보다 여유로울 수 있는 공간이다. 집에서는 볼 수 없는 다른 삶의 풍경과 길들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그 별장이 나의 것이 아니라 사람 좋은 절친한 친구의 것이라면 말 그대로 가장 행복한 경우가 된다. 그러니까 광화문 1번지, 한국의 수도 서울의 가장 중심부에는 한국문학이 소유하지 않은, 그러나 예술과 문화의 가치와 비전을 즐겁게 공유할 수 있는 전망 좋은 별장이 있는 것이다. 한국문학의 입장에서는 최적의 아이러니한 위치에 있는, 소중하고 기꺼운 제2의 자산이 아닐 수 없다. 별장의 안에는 한국문학의 활력을 돕기 위한 다양한 제도적 장치들이 가동 중에 있고, 그 장치들을 잘 운용하기 위해 진지하게 고심하는 사람들이 있다. 거리를 향한 외벽에는 계절이 바뀔 때마다 좋은 글이 걸려 지나가는 사람들의 마음을 따뜻하고 환하게 만들기도 한다.
그러한 대산문화재단이 창립 20주년을 맞았다고 한다. 광화문 1번지에서 내가 누린, 더불어 많은 사람들이 누린 꿈에서 현실까지의 은성한 시간이 어느새 20년이 되었다는 뜻이겠다. 그 세월의 두터움과 유정함을 헤아리며, 마음 깊이 축하를 드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