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특집
‘바보 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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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2년 겨울호 (통권 46호)
‘바보 재단’

 
2000년 가을이었다. 대산문화재단에서 세계적인 문인 20명을 서울에 모은다는 소식이 들렸다. 노벨문학상 수상작가들은 물론이고 국제적으로 이름이 널리 알려진 문인들이 대부분이었다. 나라 형편이 크게 펴진 90년대까지도 아무도 생각 못한 매머드급 서울국제문학포럼이었다.

한 사람만 와도 신문지면을 크게 펼쳐야 하는 초특급 문인들이 20명이나 한꺼번에 온다는 소식에 언론사 문학담당 기자들은 흥분했다. 재단에서 초청 문인 명단을 미리 공개했다. 기자들에게 그들을 연구할 시간을 주고 인터뷰에 대비할 수 있도록 도와주려는 배려였다. 여러 언론사가 함께 공동 인터뷰를 하고 싶은 문인, 혹은 단독 인터뷰를 하고 싶은 문인을 미리 조사했다.

나는 당시에 문학담당을 맡은 지 얼마 안 되는 초짜 기자였다. 남들 하는 것처럼 해서는 내가 만드는 지면이 도저히 차별화될 것 같지 않았다. 다른 신문사에는 10년 이상 문학을 담당하고 있는 평론가 수준의 기자들이 수두룩했고, 실제로 등단한 시인이나 소설가가 문학담당 기자로 일하고 있는 신문사도 여럿 있었다. 나는 대산문화재단에서 초청하는 문인들이 서울에 오기 전에 내가 그들을 현지로 직접 찾아가기로 했다. 그렇게 성사된 현지 단독 인터뷰가 10건이었다. 월레 소잉카, 이스마엘 카다레, 피에르 부르디외 같은 사람이 특히 기억에 남는다.

그들을 만났을 때 한결같이 하는 말들이 있었다. 한국에 있는 대산문화재단은 어떤 사람들이 만들었기에 오로지 문학만을 위한 재단 운영을 이처럼 인상적으로 할 수 있느냐는 것이었다. 세계에는 수천수만 개의 문화재단이 있다. 대기업 오너가 재산 도피수단이나 탈법적 상속수단으로 문화재단을 악용하는 사례도 간혹 있었다. 건실하게 운영되는 문화재단들도 대개 겉모습을 화려하게 드러내 보일 수 있는 무대예술이나 전시예술 지원에 치우쳐 있을 때가 많다. 클래식 음악이나 파인 아트를 후원하면 정기적으로 구름 관객을 모을 수 있고 생색을 내는 효과도 그만큼 높을 것이다.

사정이 그런데도 문학만 지원하는 재단은 좀 바보스럽다. 그 바보스러운 대산문화재단을 만들어 세운 지 20년이 됐다. 후회를 해도 여러 번 했을 것 같은데 너무나 한결같다. 오로지 문학만을 북돋우려고 한 해에 수십억 원을 내놓고 힘을 쏟는 문화재단은 어지간한 예술 철학과 뚝심이 아니면 힘든 일이다.  
 
김광일
김광일ㅣ 조선일보 논설위원 1958년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