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목기술자 페리는 돈 강과 오카 강 사이의 수로를 만드는 작업을 하기 위해 시베리아에 도착하지만 결국 공사는 실패하고 그 벌로 모스크바로 끌려가 참수형을 당한다. 안드레이 플라토노프의 『예피판의 갑문』이라는 작품의 줄거리다. 자연에 묻혀 사는 농민들, 이성과 기술을 이용하여 그 자연을 지배하려는 황제와 기술자, 그리고 자연이라는 세 가지 요소를 통해 이야기가 전개된다. 결국 이성의 기획을 밀어붙인 황제와 기술자가 패배하고 마는데, 무한권력을 지닌 황제가 책임을 질 리 없으므로 젊은 기술자가 참수형을 당하고 마는 것이다.
작가가 이 작품을 쓴 것은 1920년대 중반, 사회주의 혁명이 성공한 지 채 10년이 지나지 않은 시기였다. 그때 이미 작가는 이성적 기획의 독재로 세계를 지배한다는 것이 얼마나 무모한 노릇인지를 이야기하고 있었다. 목이 잘린 기술자 페리는 어찌 보면 1991년 쓰러지는 스탈린 동상에 대한 예언이라고도 할 수 있을 것이다.
내가 이 귀중한 작가를 만날 수 있었던 것은 대산문화재단이 기획하여 출간하는 대산세계문학총서를 통해서다. 이 작품이 실린 안드레이 플라토노프의 『예피판의 갑문』은, 벌써 110권 째다.
이 총서가 아니었다면 나는 이 작품을 읽을 기회가 없었을 것이다. 이 작품만이 아니다. 미하일 불가코프의 아름답고 환상적인 작품 『거장과 마르가리따』 역시 이 총서를 통해 만났다. 소비에트의 관료주의가 얼마나 가혹하고 무능했는지를 맘껏 조롱한 작품이다.
나는 계산에 서툴러 이런 책들을 벌써 백여 권 째 출간하는 것으로 대산문화재단이 무엇을 얻는 것인지 알지 못하겠다. 하지만 이런 무모한 일을 계속하는 문화재단이 있다는 것이 고맙고, 앞으로도 이런 무모한 일을 계속해주기를 바랄 따름이다.
그밖에도 대산문화재단이 벌여놓은 무모한 일이 상당히 많다는 것을 잘 알지만, 더 욕심을 내자면, 외국의 몇몇 유수한 문화재단처럼 더 과감하고 더 무모해져서, 젊고 가난한 작가들에게 이삼 년 동안의 생활비를 조달해주는 펠로우십 같은 것들도 기획해주기 바란다. 주변에 젊은 작가들이 가난 때문에 여기저기 몸을 파는 꼴을 너무 많이 보아온 나머지 안타까워서 내는 욕심이다. 그런 무모함이야말로 문화재단의 더욱 현명한 발전의 길이리라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