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특집
문화국가의 이상

  • 기획특집
  • 2012년 겨울호 (통권 46호)
문화국가의 이상

 
대산문화재단 창립 20주년 축하메시지를 부탁한다는 청탁을 받고 내심 ‘이제 20년밖에 안됐나’ 했다. 법률적으로는 갓 성년을 넘긴 상태인데, 교보문고 광화문점과 함께 한국문학의 오랜 벗처럼 여겨졌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교보빌딩 바로 앞에 자리한 ‘고종 어극 40년 칭경 비각(高宗御極四十年稱慶碑閣)’보다도 익숙하니, 그만큼 교보문고를 모태로 한 대산문화재단의 적공(積功)이 크다는 뜻일 테다.

재단은 한국문학의 귀인이다. 무엇보다 한국문학이 즐거이 놀 유익한 마당을 깔았기 때문이다. 허균(許筠)은 일찍이 갈파했다. “문장이 비록 작은 재주라고는 하지만, 학력(學力)이 없고 식견이 없고 공력(功力)이 없으면 지극한 경지에 이를 수 없습니다. (…) 우리나라 사람들은 옛 글을 널리 배우지 않기에 학력이 없고, 스승에 나아가 배우지 않기에 식견이 없으며, 배운 것을 익히지 않기에 공력이 없습니다”(정길수 편역, 『허균 선집』, 돌베개, 2012). 이중 학력과 식견은 타력(他力)이고 공력은 자력(自力)인데 후자는 혼자 힘이니까 그런대로 갖출 수 있되 전자는 사실 후원 없이 어려운 일이다. 그런데 재단이 바로 전자를 튼튼히 하는 인프라를 제공한 것이다. 예컨대 대산대학문학상은 젊은 문학을 구출함으로써 우리 문학의 미래를 현재화했고, 더욱이 수상과 함께 외국답사를 시행하여 타력을 함양할 기회를 부여한 게 꽃이다. 탄생 100주년 기념문학제는 살아있는 당대 문학의 학력을 증진하고, 서울국제문학포럼과 동아시아문학포럼은 안팎의 스승들을 한자리에 어울리게 함으로써 우리 문학의 식견을 넓히는 데 기여한 바, 바야흐로 공력만 닦으면 누구나 일가를 이룰 토대가 놓인 것이다.

대산문화재단의 출생은 때를 맞췄다. 안으로는 민족문화를 진흥하고 밖으로는 국제문화 교류를 증진함으로써 우리 문학의 창조력을 창달한다는 모토를 내건 재단은 말하자면 백범(白凡) 문화국가론의 뒤늦은 실현이다. 산업화와 민주화 이후 한국사회의 어떤 결여를 치유할 묘방이 일국적 부국강병책을 제어할 전인류적 문화국가라는 점에서 재단의 국제화 방점은 마침맞은 것이다. 지금까지도 그러했지만 앞으로도 부디 문화의 힘에 대한 믿음을 나라 안팎 곳곳에 퍼뜨려 주기 바라면서, 대산문화재단 창립 20주년을 감축하는 동시에 새로운 20년을 미리 축하한다.
 
최원식
최원식ㅣ평론가, 인하대학교 인문학부 교수 1949년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