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를 찢고 넋을 뺏는 광화문에서도, 한 구절의 글귀와 마주쳐 위로와 희망으로 정신 들게 하는 교보빌딩! 신호를 기다리노라면 생각나는 ‘사람은 책을 만들고 책은 사람을 만든다’라는 한 구절로 행복해지곤 한다. 바로 세계 최초로 교육보험을 만든 선대(先代) 신용호 회장님의 철학적 선언이다.
나는 작고하신 선대 회장님을 잊을 수 없다. 해마다 각종 심사나 저자 사인회 등에 초대받아 과분한 대접을 받으며 문화사업에 대한 큰 포부를 직접 들은 바 있어, ‘대산문화재단!’하면, 작고하신 신 회장님의 훤칠하신 모습이 떠오르고 따스하고 울림 깊은 음성이 들리는 듯하다.
대산문화재단, 특히 교보는, 무학(無學)인 선대 회장님의 입지전적 공로이다. 가난한 시절을 보냈던 당신 세대의 한을 후대의 어느 누구도 겪지 않게 하려고, 세계에서 전무후무한 교육보험을 최초로 창안하였는데, 전 국민적 환호와 지지로 무수한 학생들이 혜택을 받아 공부하게 되었으니까.
언젠가는 심사 후에 손수 차를 따라주시면서, 서울대학교 의과대학의 신창재 교수도 소개해주셨다. 그 후 신문보도에서 대산문화재단을 물려받은 신창재 회장이 무슨 상속세라든가, 법대로 어마어마한 세금을 현금으로 납부하여 세상을 놀라게 하고, 사회의 귀감이 되었음에 감동 먹었던 기억도 새로워졌다. 이미 신창재 회장은 문화지원의 공로를 국제적으로 인정받아 영예로운 “몽블랑 문화예술후원자상”을 수상한 바도 있다. 그래서 대산문화재단이라는 이름만 들어도 특별한 존경과 애정을 느끼는 이는 나만이 아닐 것이다. 또한 시내 나갔다가 시간이 어정쩡하면 재단의 곽효환 시인을 찾아가 차를 얻어 마시며 담소하는 ‘문학사랑방(?)’ 교보빌딩, 그 ‘대산문화재단’이 20주년이 되었단다.
20세 청년이 된 대산문화재단! 그간의 공로와 앞으로의 창대한 발전을 기대하며 뜨거운 큰 박수를 보낸다. 특히 두 회장님은 대를 이어 문학을 사랑했다. 해마다 대산문학상, 한국문학 번역지원, 대산창작기금을 비롯한 등단 기회 제공 등등과 계간 《대산문화》 등 여러 가지로 지원했다. 뿐만 아니라, 우리 문학작품을 세계에 알리는 국제 세미나도, 국내 문인들의 해외 활동과 각국 문인들의 한국문학 알기 등도 지원, 주관해 왔고, 국내 문인들의 탄생 100주년 기념 문학제로 작고·생존 문인들의 사라질 뻔한 작품과 업적을 발굴 조명하는 문학사업도 주도해왔다.
이외에도 내가 알지 못하는 문학, 문화 사업이 무수하리라. 우리 문학이 세계문학이 될 수 있다고 믿고 지원해온 재단의 문학 사업은 앞으로도 더욱 확대 확장될 것이다. 시인보다 더 시인다운 양 대의 두 신 회장님을 비롯하여, 아름다운 청년 곽효환 시인 등 임직원들의 문학 사랑과 높은 안목에 존경과 감사를 표하며, 남이(南怡)장군의 “남아이십 미평국(男兒二十 未平國)이면 후세수칭 대장부(後世誰稱 大丈夫)리요”라는 시구로써 20세 청년이 된 대산문화재단의 업적을 치하하고 앞으로의 창대한 발전을 기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