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산문화재단이 태어난 지 겨우 스무 해밖에 되지 않았다니! 이러한 느낌을 갖는 사람은 아마 나 혼자뿐이 아닐 것이다. 민족문화창달과 한국문화의 세계화를 표방하며 출발한 이 재단이 그동안 이룩한 업적이 너무나 커서, 그 모든 것이 불과 20년 사이의 성과라고 도저히 믿을 수 없기 때문이다.
손가락으로 나무에 구멍을 뚫었다는 대산 신용호 회장의 위업은 수도 서울의 기점이 되는 종로 1가 1번지에 독특한 건축미를 자랑하는 교보빌딩을 우뚝 세운 데 그치지 않았다. 어느 대기업도 꿈꾸지 못했던 시점에, 우리 문학의 선양을 위하여 기업 이익을 환원하는 큰 결단을 내렸고, 후계자 또한 이 사업을 이어 받아 눈부시게 발전시켜 오늘에 이른 것이다.
시, 소설, 희곡, 평론, 번역 등 5개 문학 부문의 대표작에 해마다 수여되는 대산문학상은 21세기에 접어들어 한국 현대 문학의 이정표가 되었고, 우수 작품의 외국어 번역 출판 및 해외 소개 행사는 이른바 한류의 세계화에 바탕돌이 되었음을 누구나 알고 있다.
서울의 서촌에서 태어나 평생 광화문과 서대문 근처에서 살아온 나로서는 도심을 지날 때마다, 교보빌딩을 수도의 상징적 건물로 바라보곤 한다. 지난 2003년에는 나의 여덟 번째 시집 『처음 만나던 때』가 제11회 대산문학상을 수상했다. 나의 회갑 전후에 발표된 작품 72편이 수록된 이 시집은 대산문화재단의 지원으로 2010년에 독일어로 번역 출판되어, 독일어권의 우수 해외 번역서로 선정되기도 했다.
대산문화재단과의 인연은 그 후에도 이어져서, 연례 문학 행사 또는 해외 문학 교류 행사에 심사위원이나 집행위원으로 위촉된 적도 있다. 행사의 공정성을 보장하기 위하여 동일인에게 한 두 번 밖에는 참여의 기회를 주지 않는 것이 관례였다. 이런 점에서 볼 때, 민간 재단이지만, 청렴 무사한 공공성을 엄수하는 경영 자세는 여러 면에서 귀감이 된다고 믿는다. 지난번에 신창재 이사장이 몽블랑 문화예술후원자상을 수상한 것도 이러한 업적의 국제적 인정으로 생각된다.
대산문화재단은 이제 20세의 성년이 되었다. 재단 임직원들의 헌신적 노고와 교보생명의 지원을 바탕으로 더욱 건장한 젊음을 키워나가며, 세계적 차원의 문화재단으로 성장하리라 믿는다.
충심으로 격려와 축하의 박수를 보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