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특집
맨 손가락으로 생나무를 뚫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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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2년 겨울호 (통권 46호)
맨 손가락으로 생나무를 뚫고

981년 초여름이었다. 종로구 종로1가 1번지에 지하 3층, 지상 22층짜리 교보빌딩이 서울의 새 랜드마크로 떠억 들어섰다. ‘귀거래’ ‘보레로’ 다방하며, ‘열차집’ 등등의 빈대떡집이 한길가와 골목에 촘촘히 붙어 있던 곳이다.

커피와 외상술로 낮밤을 보내던 광화문 주변이 이제는 책 읽는 거리로 면모를 일신하는구나 생각했다. 하지만 덩실하게 멋진 다갈색 빌딩 속에서 차차 문학이 튀어 나올 줄은 몰랐다.

1992년 연말에 생긴 대산문화재단을 두고 하는 말이다. 출범 당시는 기대 반 걱정 반이었으리라. 무엇보다도 재정이 튼튼한 세계 최초로 교육보험을 창안한 보험회사가 뒤를 받쳐 든든했다. 대외적으로 한국문학의 위상을 높이는 일에 진력하겠다는 설립 취지가 차라리 놀라웠다. 그러나 말만 많고 들인 품만큼 생색이 나지 않는 것이 ‘문학사업’ 아니더라고. 마땅한 선례가 없어서도 한층 힘이 들었을 터이다. 초기의 자문위원으로 더러더러 발걸음을 하면서 느꼈다.
그렇게 견디고 경험을 쌓으며 길을 터 나가기 20년, 이제는 누가 뭐래도 끄떡없다. 특정 장르에 국한하지 않는 문학상 제정에서 보듯이, 안으로 우리 문학의 발전을 돕고 밖으로 국제화를 선도하는 파일럿 노릇이 기울인 공력과 더불어 대단하다.

얼싸절싸 축하하려니와 개중에 잘 된 예가 한국작가회의와 해마다 함께 여는 <탄생 100주년 문학인 기념문학제>일 게다. 여담이지만 나는 그런데 가끔 걱정스럽다. 문학 인구가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한 상황에서, 앞으로는 어떻게 대상작가를 지금껏 유지해온 5~6명 수준으로 유지할 수 있을까 하는 점이다. 속세의 포폄과는 구만리쯤의 거리를 두고 지낼 저 세상 선배들이야 잔치에 가나 마나 건성이겠지만, 한정된 인물을 객관적으로 잘 골라야 할 문학계의 산 자는 갈수록 감당이 불감당일 것이기 때문이다.

그나저나 알고 보면 대산문화재단의 이런저런 문학 사업도 원래의 바탕은 신용호 회장의 아이디어와 인생철학에서 나온 것이다. 아호인 대산(大山)에 걸맞도록 문화에 대한 품이 그토록 넓고 높았으니까.

이규태가 쓴 『대산 신용호 평전』을 보면, 교보생명빌딩에 내건 글판 또한 시를 애송하기 좋아하던 선생의 발상이었다. 사무엘 울만의 「청춘」을 전 직원에게 나누어 줄 만큼.
그리고 교보문고를 발족시키면서 광화문 빌딩 벽에 ‘사람은 책을 만들고 책은 사람을 만든다’는 자신의 지론을 주련삼아 걸었다. 그걸 계기로 해마다 대산 선생 특유의 잠언이 광화문의 한쪽을 장식했다.   

“떠나라 낯선 곳으로 그대 하루하루의 낡은 반복으로부터”(1998년), “길이 없으면 길을 만들며 간다”(2000년)는 글귀가.

월출산을 바라보는 전남 영암군 솔안마을에서 태어나, ‘맨손가락으로 생나무를 뚫는다’는 기백으로 평생을 사신 분이다. 평전의 서브타이틀로 그 말을 앞세운 내력을 짐작할 수 있다.
 
최일남
최일남ㅣ소설가, 대한민국예술원 회원 1932년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