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자가 한국어학과에 1985년도에 입학했을 때만 해도 한국에 대한 이미지는 왜곡되어 있었다. 대부분의 서양인들에게 힘이 없는 고요한 아침의 나라, 6․25 사변의 나라, 이승만 대통령의 나라, 저가품의 나라, 대규모 대학생 데모의 나라였다. 20년 후인 21세기에 들어서는 대한민국은 국제 언론엔 유일한 냉전국으로 보일 것이며 다른 한편으로는 자동차 산업 대국의 이미지, 휴대폰 산업 최강대국의 이미지, 인터넷 사용률 세계 1위의 이미로 비춰질 것이다. 88 올림픽 때 잠실운동장을 가로질러 뛰었던 어린이가 성숙한 어른이 되었으며, 한반도는 일본과 맞설 만한 상대로 온 세계의 관심을 모으고 있다.
그러나, 이 긍정적인 이미지 너머로 시선을 돌리면, 북핵의 그늘이 한반도를 덮으려고 한다. 살아 남기 위한 북쪽 체제의 마지막 남은 외교 정책은 협박밖에 없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통일은 언젠가 이뤄질 것이고, DMZ 여기저기에는 연방의 교두보 역할을 할 남북 철도망의 재결합이 이루어지기 시작했다.
그러면 경제와 정치의 강 건너편 한반도의 문학적인 이미지는 또 어떨까? 여태껏 중국, 일본, 러시아의 교차점에 위치한 불행 속에서 한국문학의 남다른 독창적 이미지를 생성치 못하고 이차문화에 머물러 있다는 사실 앞에 무릎을 꿇을 수밖에 없다. 한강의 기적 끝에 한국의 존재가 음악, 미술, 건축, 오트 쿠튀르 등의 많은 면에서 외국인에게 인정을 받기 시작했는데도 말이다.
일본문학은 가와바타 야스나리 덕에 세계문단에서 오래전부터 인정받고 있다. 훌륭한 작가와 작품이 부족치 않은데 왜 한국문학은 노벨상 수상은 고사하고 정립된 인상마저 주지 못했을까라는 질문을 던져 본다. 부끄럽게도 우리 번역가들의 부족함 때문일 것이다. 한국문학 작품은 주로 한국인 번역가에게 맡겨지게 되는데 모국어가 아닌 언어로 능숙하게 옮겼다 해도 원어의 풍부함과 문학성을 살리기에는 너무나도 어려운 일이다. 입장을 바꿔 서양인이 대학에 입학하면서 한국어를 전공으로 삼아 열심히 공부한다 해도 자기나라 말로 쓰여진 문학작품을 문학성을 살려 한국어로 옮기기에는 역부족일 것이다. 의역을 완성하고 난 뒤에 한국인에게 교정을 의뢰하면 매끈한 문체로 작업을 마칠 수는 있겠으나, 원작의 성격이 훼손되고 줄거리만 잘 전달될 위험성이 있다는 사실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실력있는 일부 한국 번역가가 그 어려움을 극복하고 성공을 거두었다고 하지만 태어나면서 바이링규얼(bilingual)이 되거나 언어에 대한 천부적인 재능을 가지고 있지 않는 이상 그럴 가능성은 아주 희박하다고 해야 할 것이다. 재능은 흔한 것이 아니고 후천적 교육에 의한 바이링규얼의 탄생은 국제결혼을 해서 아이를 키우고 있는 필자의 눈에는 하늘에 별 따기 만큼이나 어려워 보인다.
이런 어려움을 극복하기 전에는 한국 문학을 외국에 알리는 것이 쉽지 않은 과제로 남아 있을 것이다. 한국학을 전공으로 하는 외국인들은 적고 박사학위 취득을 한 사람은 더 적다. 여행을 하다가 한국에 정착하게 되고 한국어를 어학당에서 공부하게 되는 사람이나 외국에서 석사학위를 마치고 미래가 불투명한 관계로 한국어학과에 들어가서 전공을 바꿔 한국학 박사학위를 준비하게 되는 사람들이 대부분이다. 의지가 강해도 한국학 전문가가 되기에는 과정이 좀 짧아 보인다. 이래서, 해외에서도 한국어학과를 학부 때부터 시작하는 노력이 필요해 보인다.
필자는 한국 경제와 문화가 자연발생적으로 더 많은 학생을 유인할 때가 오리라는 확신을 가지고 있지만, 당분간은 문화 교류에 의존하는 것이 유일한 방법이라고 생각된다. 수준 높은 공연과 영화, 외국어로 번역된 문학 작품이 더 활발하게 소개되면 한국에 대한 관심을 유도할 수 있겠는데, 이때 한국 문학이 외국에서 좋은 평가를 받도록 일이 바로 번역가의 몫이다. 그러나 번역은 외국어에 대한 재능 못지 않게 글 솜씨 또한 필수 조건인데다 타인의 비판과 낮은 보수에 쉽게 노출되는 고독하고 힘든 작업이다. 이런 상황에서 번역의 미래가 그리 밝은 것만은 아닌 듯싶다. 필자 개인적인 의견으로는 이런 상황을 개선하기 위해 한국문학 작품의 외국어 번역을 추진하는 기관에서 다음과 같은 사항을 고려하는 것이 효과적이라고 생각한다.
첫째, 해마다 영어 불어 독어 등 언어권 별로 번역할 작품 수를 미리 정하는 대신 번역의 질과 문체의 수준을 고려, 지원할 만한 가치가 있는 작품만을 선정하여 지원비를 인상하고 질적 향상을 도모하는 편이 도움이 될 것 같다.
둘째, 한국에서 인기가 있거나 지명도 있는 작가의 작품만을 선정하지 말고 상대 언어권에서 인정받을 가능성이 있는 작품에 우선권을 주는 것이 어떨까 하는 생각을 한다. 한국에서 자리를 못잡고 해외에서 유명해진 뒤, 비로소 모국에서 늦게나마 인정받게 된 인재가 너무 많은 것을 안타까워하며 위와 같은 생각을 해보게 된다.
셋째, 외국인 공역자의 한국어 능력과 한국학에 대한 지식을 평가한 후 번역을 의뢰하는 것이 필수적이라고 본다. 상대 작품의 언어를 거의 파악하지 못하거나 아예 모르는데 번역가로 나설 수 있는 나라가 한국 말고 또 있겠느냐는 아쉬운 생각도 든다. 한국어를 배울 노력도 하지 않으면서 번역가라는 이름 하에 각종 기관의 지원비를 받는 것은 도덕적으로 문제가 있다고 본다. 한국 문화가 세계적인만큼 번역가도 이에 맞는 역량을 갖추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제는 능력이 부족해도 쉽게 돈을 벌 수 있는 나라라는 부정적 이미지에서 벗어날 때가 되었다. 남이 번역한 작품을 단 며칠 만에 자신의 모국어로 교정해서 수백만 원을 버는 것은 상식에서 벗어나는 일이다.
다시 말하지만 지원 작품 수를 줄이고 번역가의 한국어 수준을 검증한 뒤 번역 작업에 성실히 임하면 좋은 결과를 기대할 수 있다는 확신을 가진다. 양보다 질, 그리고 인재의 영입 그것이 바로 성공의 길이다. 지구촌에 있는 모든 한국어 학과에 번역 작품을 통하여 미래에 대한 가능성을 보여주고 번역된 작품을 기증하는 것이 한국 문학에 대한 관심을 높일 수 있는 방법이다. 한국 문학을 해외에 알리는 일은 무엇 보다 이미지와 교육에 달려 있다.
- 파스칼 그로트
- 글 / 파스칼 그로트_번역가. 이화여대 불문과 교수. 1965년생. 역서 『최인훈 희곡집』 『오태석 희곡집』 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