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시대의 화제작
불행한 시대의 뒤틀린 안도감

- 1991년의 문제작 이은성의 『소설 동의보감』

  • 우리시대의 화제작
  • 2003년 가을호 (통권 9호)
불행한 시대의 뒤틀린 안도감

- 1991년의 문제작 이은성의 『소설 동의보감』


90년대 초입부터 우리의 의식을 장악한 낱말이 있다면, 그것은 ‘변화’와 ‘위기’가 아닐까 싶다. 현실의 변화에 능동적으로 대처하지 못하면 새로운 시대로 나아가지 못하리라는 강박관념은 문학판의 경우에도 예외가 아니어서 문학의 위기에 대한 자성이나 기존 문학 패러다임의 변화를 요구하는 목소리도 높았다.

문학의 침체와 부진을 논하는 과정에서 위기는 문학의 위기라기보다 소설의 죽음으로 해석되거나, 소설의 죽음이 아니라 리얼리즘소설의 시효만료로 간주되었다. 리얼리즘에 미련을 지닌 90년대 작가들은 이상과 현실의 환멸적 거리에 직면하여 후일담문학으로 이행하거나 서술의 본질을 성찰하는 쪽으로 넘어갔다. 소설보다 더 소설적인 현실을 리얼리즘 기법으로 재현할 수 없다는 입장에서, 소설가들은 자신의 작가적 재능을 능가하는 구체적 현실에 공포를 느끼거나 다양한 기법을 시험함으로써 현실과 경쟁하고자 했다. 그래서 기이하고 황당한 소설들이 ‘이야기’라는 이름으로 등장하기도 했다. 때때로 그들의 소설은 역사 경험을 대신하여 문화소비 경험을 질료로 삼았고, 문화변동 혹은 문화권력의 이동에 민감하게 반응하며 다양한 매체의 소설적 가능성을 시험하였다. 세기말에 접어들면서 삶은 서사가 아니라 시각영상으로 여겨졌고, 퍼스널컴퓨터가 보편화되자 소설의 위기는 곧 텍스트의 위기로 이해되고 하이퍼텍스트에 그 타개책이 있다고 강조되었다.

물론 소설의 위기는 오해된 위기였다. 90년대에도 우리는 기억할 만한 대하장편소설과 뛰어난 작가를 여럿 만났다. 다른 한편 소설의 위기설에도 불구하고, 장편소설은 문학시장에서 큰 성공을 거두었다. 분배의 규모 면에서 좀 투박하게 말하면, 장편소설은 작가와 출판사의 돈 되는 상품 목록에 오른 것이다. 출판기획자나 편집자가 작품의 환금가능성을 면밀하게 계산하고 마케팅 개념을 본격적으로 도입한 것도 90년대가 아니었던가 싶다. 출판사는 시장조사․출판․유통에 깊숙이 개입했고, 노골적인 광고는 자본의 논리를 문학시장에 관철하는 수단이 되었다.

소설의 환금성을 가장 명백하게 보여준 사례를 꼽자면 이은성의 『소설 동의보감』을 뺄 수 없을 것이다. 문학작품에도 사주팔자라는 게 있어 그 생년월일시에 따라 길흉화복의 운명이 결정된다면, 이 작품을 두고 뭐라고 판정할 것인지 궁금하다. 전언에 따르면, 『소설 동의보감』은 1976년 TV의 일일연속극으로 방영되다가 서둘러 종영된 『집념』을 소설화한 것이다. 소설화된 원고는 84년에서 88년까지 주간지에 연재되었으나 작가의 급작스런 죽음으로 완결을 보지 못했다. 그후 중단된 원고는 여기저기를 떠돌다 90년에 창작과비평사에서 상중하 3권으로 출판되어 밀리언셀러의 반열에 올랐다. 그러니까 『소설 동의보감』은 미완의 소설이다. 권위있는 출판사와 만난 것도 그렇지만 미완의 소설이 그토록 놀라운 판매부수를 기록한 것은 명리학의 힘을 빌려야 설명될 것 같다.

사주학에 일면식도 없는 처지이므로, 다음 몇가지로 읽은 뒤의 느낌을 적어볼 뿐이다. 첫째, 유의태, 허준과 양예수, 유도지 등이 이루는 선명한 대결구조, 허준의 의술과 관련된 삽화의 ‘문제-해결’이라는 로망스적 경향, 의리와 배신을 교묘한 반전 속에 엮어낸 전개의 경쾌한 속도감, 의녀 미사의 변함 없는 사랑 등은 독자를 견인하는 중요한 요소임이 분명하다. 달리 말해, 『소설 동의보감』은 독자의 몰입을 이끌어 낼 이야기성을 지녔다 하겠다. 이런 점에서, 『소설 동의보감』은 무한경쟁이라는 UR 시대의 문화논리를 앞세워 이야기성을 회복해야 한다는 논법의 은밀한 증거가 되었음직하다.

둘째, 천한 신분의 허준이 마침내 어의가 되는, 신분상승의 드라마가 『소설 동의보감』의 주가를 올린 중요한 요인일 것이다. 이는 90년대에 들면서 공동체를 대체하여 개인이 가치개념으로 부각된 사정과 무관하지 않을 듯하다. 말하자면 문제는 개인이 지닌 재능이나 집념에 있다는 것, 성공하기 위해 사랑 앞에서도 흔들림 없이 비정해야 한다는 것, 이 세상에서 믿을 것은 자신의 능력뿐이라는 것이다. 문제를 개인의 능력이나 집념에 두기 때문에, 입지전적 인물 허준에게 치중하면서 그의 어두운 이면은 부각되지 않는다. 그래서 왜곡 시비도 있었거니와, 『소설 동의보감』 이후에 경쟁적으로 출판된 여러 전기류소설에서도 이 한계는 극복되지 않았다.

셋째, 허준은 물지게꾼부터 시작하여 스승 유의태에게 의술을 배운다. 그 과정에서 스승의 눈 밖에 나 내침을 당하지만 가난한 환자들을 돌본 덕분에 다시 스승의 문하에 들게 된다. 고향으로 돌아가려던 제자가 침술 몇가지를 청했을 때, 유의태는 비인부전(非人不傳)이라 하여 냉혹하게 거절한다. 이같은 사제간의 냉엄한 도리는 침술 이전에 먼저 원숙한 인간이 되라는 것, 의술은 출세나 부귀를 바라는 장사치의 재주일 수 없다는 뜻으로 이해된다. 동시에 이런 도리는 사부에 대해 기술적 인격적으로 도제관계를 강조하며, 통속적인 무협소설의 수직적 인간관계를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거기엔 현존 질서의 수긍이 있을 뿐이다. 왜냐하면 제자의 인간됨을 판별하는 스승은 의심의 대상일 수 없기 때문이다.

넷째, 지위의 고하, 신분의 귀천에 구애되지 않고 병자를 돌보는 허준은 진정한 의료인이라 할 수 있다. 가난한 백성을 치료하기 위해 과거시험을 포기할 뿐 아니라 심지어 자신의 무명지를 깨물어 환자에게 피를 먹이기도 한다. 가지고 배운 자에게 억눌린 현대 독자들에게 허준은 희생적인 의인이요 이상적인 영웅처럼 보일 법하다. 허준이 그런 영웅이요 의인이었다는 데 『소설 동의보감』의 성공 비결이 있겠지만, 90년대의 상황에서 이는 매우 착잡한 증거이기도 하다. 왜냐하면 영웅을 갈망한다는 것은 자기 시대가 가장 불행하고 타락한 시대라는 뜻이기도 한데, 이런 식의 현실인식은 앞선 시대에 대한 천박한 망각일 뿐 아니라 현재 자신의 비루함을 정당화하려는 비틀린 안도감의 증거인 까닭이다.

다섯째, 『동의보감』의 작중인물들은 자신의 고통을 조금도 참지 못하는 철부지처럼 보인다. 발가락의 티눈 하나도 견디지 못하는 그들은 상처로부터 지혜를 얻지 못하며, 고통을 통해 삶을 성찰하지도 않는다. 이는 병든 민초는 있으나 그들의 현실적인 삶에 대한 생생한 묘사가 부족함과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소설의 육체를 형성할 구체적 삶을 대신하여 『동의보감』은 다양한 한의학 상식, 시술과정, 여러 가지 민간요법을 늘어놓았다. 경험이나 관찰이 아니라 데이터베이스에 저장된 자료나 정보가 소설의 자원이 될 수 있음을 암시한 대목이라 할 것이다.
황국명
글 / 황국명_평론가, 인제대 국문과 교수. 1955년생. 평론집 『떠도는 시대의 길찾기』 『존재의 아름다움』 『삶의 진실과 소설의 방법』 『채만식소설연구』 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