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산칼럼
코로나 시대의 희망

  • 대산칼럼
  • 2021년 봄호 (통권 79호)
코로나 시대의 희망

너무 일찍 도착한 미래 같기만 했던 2020년이 지나갔다.
2020년은 코로나 바이러스, 팬데믹, 셧다운과 락다운, 언택트, 자가격리, 항체와 백신 같은 단어들로 대변되는 한 해였다. 2020년이 오기 전까지는 하나같이 거의 사용해본 적 없던 단어들이다. 일상의 풍경 역시 예년과 달랐다. 마스크를 쓴 사람들로 가득한 버스와 지하철, 밤이 되면 문 닫힌 상점들로 조용해지는 거리, 그리고 텅 빈 도서관과 극장과 공항 같은…… 가상의 카메라로 그 풍경을 클로즈업한다면 불안과 초조, 지친 표정들이 깃든 사람들의 얼굴이 잡힐 터이다. 직장을 잃거나 구하지 못한 사람들, 몇 년 혹은 몇십 년 동안 살뜰하게 운영해 온 상점을 닫아야 하는 소상공인들, 더위와 추위와 노동에 지쳐가던 의료진들, 병상이 부족해서 제대로 치료받지 못한 환자들, 학교에 가지 못해 답답해하던 아이들, 작품을 발표하고 공연할 기회를 얻을 수 없었던 예술가들의 얼굴들이 말이다. 전시된 숫자들이 그 얼굴들을 증거했다. 실업률과 폐업률, 자살률이 증가했고 가계부채는 날마다 기록을 갈아엎었다. 저마다 외출과 만남을 줄이면서 마음을 앓는 사람들의 수도 크게 늘었다.
개인적으로 나 역시 타격이 있었다. 평균 한 달에 한 번 정도 마련되곤 했던 강연이나 북토크가 70퍼센트 이상 취소되었고 작품을 발표할 기회도 전년보다 확연히 줄었다. 사실 2020년은 내게 도전의 의미가 있는 해였다. 바로 등단 16년 만에 순수한 의미의 전업작가로 살아보자는 결정을 한 것이다. 코로나19가 이토록 오랫동안 세계를 지배하게 되리라곤 예상하지 못한 채 내린 결정이었는데, 결과적으로 나는 전업작가라는 이름의 생존 게임에서 살아남긴 했다. 다행히 꾸준히 수입이 생겼고, 나는 그 돈으로 식료품을 구매했고 책을 사서 읽었다. 세금을 냈고 겨울옷을 마련했으며 가족과 친구의 생일을 챙겼다.
그렇게, 1년을 보냈다.
나는 무사한 셈이다. 무사한데, 그 무사함이 가끔은 미안했다.
적절하게 난방이 되는 집에 앉아 택배 노동자들의 연이은 죽음을 기사로 접할 때, 거리두기가 강화되기 전까지 자주 작업하던 커피숍 사장님이 아무래도 곧 폐업해야 할 것 같다는 소식을 전한 날, 저축한 돈으로 근근이 살아가고 있지만 앞으로가 걱정이라는 친구의 전화를 받으면서…… 통장 잔액은 줄기 마련이고 폐업한 상점이 있던 자리는 텅 비게 될 것이며 누군가의 죽음은 되돌릴 수 없는데, 앞으로 2021년은 무슨 힘으로 살아내야 하는지 알 수 없어 답답했고 그럭저럭 어려움 없던 내 일상이 못내 미안했다.
요사이 나는 자주 희망을 생각한다. 막연한 가능성으로서의 희망이 아니라 적극적이고 능동적인 행동을 수반하는 희망에 대해 생각하고 또 생각한다. 네가 없으면 나도 없다는 믿음, 네가 힘들므로 내가 나서겠다는 다짐과 행동, 결국 우리가 모두 하나로 엮여 있다는 자각이 이 시대의 희망이 되면 좋겠다고…… 알베르 카뮈의 『페스트』에서 전염병에 맞서는 의사 베르나르 리외는 페스트와 싸우는 유일한 방법은 성실성이라고 말한다. 리외는 의사 한 명의 성실성을 말한 것은 아닐 것이다. 수많은 사람들이 연대하며 서로가 서로를 지켜내는 성실성으로서의 ‘희망’이라는 단어가 2021년에는 우리의 풍경과 표정을 대변하기를 소망해본다.
조해진
조해진
소설가, 계간 《대산문화》 편집자문위원, 1976년생
장편소설 『로기완을 만났다』 『아무도 보지 못한 숲』 『여름을 지나가다』 『단순한 진심』, 소설집 『천사들의 도시』 『목요일에 만나요』 『빛의 호위』 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