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무 일찍 도착한 미래 같기만 했던 2020년이 지나갔다.
2020년은 코로나 바이러스, 팬데믹, 셧다운과 락다운, 언택트, 자가격리, 항체와 백신 같은 단어들로 대변되는 한 해였다. 2020년이 오기 전까지는 하나같이 거의 사용해본 적 없던 단어들이다. 일상의 풍경 역시 예년과 달랐다. 마스크를 쓴 사람들로 가득한 버스와 지하철, 밤이 되면 문 닫힌 상점들로 조용해지는 거리, 그리고 텅 빈 도서관과 극장과 공항 같은…… 가상의 카메라로 그 풍경을 클로즈업한다면 불안과 초조, 지친 표정들이 깃든 사람들의 얼굴이 잡힐 터이다. 직장을 잃거나 구하지 못한 사람들, 몇 년 혹은 몇십 년 동안 살뜰하게 운영해 온 상점을 닫아야 하는 소상공인들, 더위와 추위와 노동에 지쳐가던 의료진들, 병상이 부족해서 제대로 치료받지 못한 환자들, 학교에 가지 못해 답답해하던 아이들, 작품을 발표하고 공연할 기회를 얻을 수 없었던 예술가들의 얼굴들이 말이다. 전시된 숫자들이 그 얼굴들을 증거했다. 실업률과 폐업률, 자살률이 증가했고 가계부채는 날마다 기록을 갈아엎었다. 저마다 외출과 만남을 줄이면서 마음을 앓는 사람들의 수도 크게 늘었다.
개인적으로 나 역시 타격이 있었다. 평균 한 달에 한 번 정도 마련되곤 했던 강연이나 북토크가 70퍼센트 이상 취소되었고 작품을 발표할 기회도 전년보다 확연히 줄었다. 사실 2020년은 내게 도전의 의미가 있는 해였다. 바로 등단 16년 만에 순수한 의미의 전업작가로 살아보자는 결정을 한 것이다. 코로나19가 이토록 오랫동안 세계를 지배하게 되리라곤 예상하지 못한 채 내린 결정이었는데, 결과적으로 나는 전업작가라는 이름의 생존 게임에서 살아남긴 했다. 다행히 꾸준히 수입이 생겼고, 나는 그 돈으로 식료품을 구매했고 책을 사서 읽었다. 세금을 냈고 겨울옷을 마련했으며 가족과 친구의 생일을 챙겼다.
그렇게, 1년을 보냈다.
나는 무사한 셈이다. 무사한데, 그 무사함이 가끔은 미안했다.
적절하게 난방이 되는 집에 앉아 택배 노동자들의 연이은 죽음을 기사로 접할 때, 거리두기가 강화되기 전까지 자주 작업하던 커피숍 사장님이 아무래도 곧 폐업해야 할 것 같다는 소식을 전한 날, 저축한 돈으로 근근이 살아가고 있지만 앞으로가 걱정이라는 친구의 전화를 받으면서…… 통장 잔액은 줄기 마련이고 폐업한 상점이 있던 자리는 텅 비게 될 것이며 누군가의 죽음은 되돌릴 수 없는데, 앞으로 2021년은 무슨 힘으로 살아내야 하는지 알 수 없어 답답했고 그럭저럭 어려움 없던 내 일상이 못내 미안했다.
요사이 나는 자주 희망을 생각한다. 막연한 가능성으로서의 희망이 아니라 적극적이고 능동적인 행동을 수반하는 희망에 대해 생각하고 또 생각한다. 네가 없으면 나도 없다는 믿음, 네가 힘들므로 내가 나서겠다는 다짐과 행동, 결국 우리가 모두 하나로 엮여 있다는 자각이 이 시대의 희망이 되면 좋겠다고…… 알베르 카뮈의 『페스트』에서 전염병에 맞서는 의사 베르나르 리외는 페스트와 싸우는 유일한 방법은 성실성이라고 말한다. 리외는 의사 한 명의 성실성을 말한 것은 아닐 것이다. 수많은 사람들이 연대하며 서로가 서로를 지켜내는 성실성으로서의 ‘희망’이라는 단어가 2021년에는 우리의 풍경과 표정을 대변하기를 소망해본다.
- 조해진
- 조해진
소설가, 계간 《대산문화》 편집자문위원, 1976년생
장편소설 『로기완을 만났다』 『아무도 보지 못한 숲』 『여름을 지나가다』 『단순한 진심』, 소설집 『천사들의 도시』 『목요일에 만나요』 『빛의 호위』 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