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특집
②2013년과 2021년, 그들도 다른 그들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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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1년 봄호 (통권 79호)
②2013년과 2021년, 그들도 다른 그들처럼


1.
2013년 봄, 그러니까 아직 “하우스푸어”라는 단어의 위세가 잦아들기 이전의 부동산 경기 침체기에 1980년생 작가 김애란은 단편소설 「입동」에서 두 주인공, K씨 부부를 내세워 자신이 속한 세대의 ‘내 집 마련’에 대한 이야기를 다룬다. 그들은 이제 막 “분양 면적 이십사 평, 실 면적 십칠 평”의 아파트로 이사했다. 집 대신 방을 찾아 떠돌던 세입자의 삶에 종지부를 찍기 위해 “경매로 싸게 나온 물건”을 “집값의 반 이상을 대출로 끼고서” 구입한 것이다. 이사를 마친 후 K씨 아내는 자기 집을 소유한 이들만이 누릴 수 있는 마음의 여유를 맛보며 실내 공간을 근사하게 꾸미겠다고 나선다. 서민도 아니고, 중산층도 아닌, 그 사이에 애매하게 낀 상태이지만, 새로운 집안의 풍경이 필요했다. K씨 가족이 드디어 정주(定住)형 인간이 되었다는 안도감을 만끽할 수 있도록 돕는 그런 풍경, 말 그대로 ‘안식처’라는 표현이 제공하는 어떤 정서의 핵심을 가시화해 줄 경관이 절실했다.
도시화의 시간은 ‘내 집 마련’과 함께 집치장의 풍속을 만들어내고, 집치장의 풍속은 유행의 흐름을 면면히 이어가며 나름의 계통도를 그려나간다. 주거 유형과 집 크기, 거주자의 소득 수준과 취향 등을 주요 변수로 삼아 끊임없이 모이고 갈라지는 유행의 계통도, 시간을 거슬러 그 계통도를 되짚어볼 수 있다면, 꽃무늬 냉장고, 시스템키친, 그린인테리어, 홈패션, 벽난로 등이 박물관 유물처럼 펼쳐질 것이다.
K씨 아내는 그 계통도의 끝자락에 자리를 잡고 “북유럽 스타일 가구”나 “스칸디나비아 패브릭”에 눈길을 준다. 집치장에 참고하려고 인터넷 카페나 인테리어 전문 블로그를 들락거리다가 스웨덴 가구업체 이케아의 영향권 안으로 들어간 결과였다. 하지만 그녀의 시선은 상품과 교환되지 못한다. 맞벌이 봉급으로 대출금과 이자를 갚기에도 허리가 휠 지경이다.
결국 그녀는 돈 대신 공을 들이기로 작정한다. 저렴한 2인용 패브릭 소파를 인터넷 쇼핑몰에서 구입하는 데 만족한다. 그리고 10년 동안 다섯 번의 이사에서도 살아남은 낡은 가구와 소품을 “리폼”하는 데 나선다. 쓸모와 필요 때문에 어쩔 수 없이 함께 생활했던 “못생긴” 세간들이지만, 페인트칠로 새로이 단장해 거실과 부엌 곳곳에 다시 들여놓는다. 그렇게 완성된 경관 속에서 “LOVE”나 “HAPPINESS” 같은 영단어가 적힌 “파스텔톤 깡통”이 거실의 나무 선반 위에서 이 가족의 사랑과 행복을 증언할 것이다.
작가가 보기에 아마 여기까지가 2010년대 초중반, 평범한 지방 출신 부부가 부모의 도움 없이 자력으로 당도할 수 있는 실내 경관의 최대치였을 것이다. 한 움큼의 사치도 허용되지 않지만 일상의 사소한 흔적들이 기적처럼 ‘스위트홈’의 미장센으로 전환되는 실내, 그 안에서라면 네 살배기 아이가 엄마가 애써 가꿔놓은 세간에 침을 묻히거나 낙서를 한다고 해도 상관없을 것이다. 그마저도 사랑과 행복의 징표로 간주될 테니 말이다.
그리고 8년이 지나 2021년. 2013년에 1천630만 원이었던 서울시 아파트 3.3㎡당 평균 시세는 2020년 기준 3천202만 원으로 훌쩍 뛰었다. 저성장과 저금리, 소득 양극화, 그리고 중상위 계층의 투기심리와 정부의 정책 실패 등 많은 사회경제적 요인들이 제각각의 방식으로 부동산 시장을 들쑤셔 놓은 결과였다. 8년 전 집값의 반 이상을 대출로 충당했었지만, 그 사이 K씨의 집값은 두 배로 껑충 뛰어올랐고 보유자산 역시 세 배로 불어났다. 아파트뿐만 아니라 대출금까지 나서서 부지런히 돈을 벌어다 주었고, K씨 부부는 그 덕분에 중산층이 될 수 있었던 것이다.
K씨 부부는 8년 전 지혜롭게 영혼까지 끌어모았던 자신들을 대견스럽게 생각하면서, 수도권의 자가 보유 중산층만이 느낄 수 있는 안도감을 만끽할 것이다. 아니 어쩌면 곧 중학교에 입학할 아이의 교육을 위해 돈을 더 빌려 더 좋은 동네, 더 넓은 평형대의 아파트로 이미 이사했을 수도 있다. 그들은 전임 대통령의 탄핵 사태 이후 몇 년 동안 부동산과 은행대출이 자신의 인생에서 어떤 쓸모를 지녀야 하는지 매우 진지하게 자문해 보았을 테니 말이다.

2.
이제 큐브에 대해 이야기해보도록 하자. 2013년 K씨 부부가 탈출에 성공했던 그곳. 고도성장기에 많은 젊은이들이 도시로 이주해 하숙방, 벌집, 고시원, 원룸 등과 같은 ‘방’들을 전전하면서 학교나 직장을 다니며 자신의 미래를 설계했다. 그들 대부분은 인생의 중간 목표로 ‘결혼’과 ‘내 집 마련’을 설정하곤 했는데, 여기에서 큐브란 청년 세대가 부모로부터 독립하여 거주하던 방들의 군락지를 의미한다.
사실상 사회적 이동의 정거장이나 다름없던 큐브의 삶에 급격한 변화가 찾아온 것은 IMF 외환위기 이후였다. 분양가 상한제 폐지와 부동산 폭등세로 인해 사실상 ‘내 집 마련’이란 특정 계층을 제외하곤 점차 실행에 옮기기 어려운 꿈이 되어 갔다. 실제로 큐브는 방에서 방으로의 이동만을 허용하는 폐쇄계, 그러니까 환승역이 존재하지 않는 순환선의 세계로 느리지만 비가역적인 방식으로 변모해 가고 있었다.
이 과정에서 큐브의 세입자들이 지불하는 임대료는 큐브에서 빠져나와 그 바깥의 삶을 윤택하게 만드는 윤활유로 기능했다. 거주용 방의 경우에는 세입자-집주인-은행의 경로를 따라 단방향으로 흘러갔던 것이다. 이와 같은 임대료의 흐름은 서울 같은 도시에게 꼭 필요한 것이었다. 탈산업화의 악성 빈혈에 시달려야 했던 거대 도시에 임대료는 주기적으로 맞아줘야 하는 링거액 같은 것이었다.
한편, 2000년대 중후반, 큐브 중 대학가 주변이나 교통 요지 상권이 빠른 속도로 고급화하기 시작했다. 이전까지 ‘고기 뷔페’나 음식점 간판이 자리를 차지하던 거리에, 세련된 분위기의 카페 간판들이 등장해 활력을 불어넣었다.
이를 두고 어떤 이들은 “요즘 젊은 애들은 돈 아까운 줄 모르고 오천 원짜리 커피를 사 마신다”며 불만을 토로했고, 또 어떤 이들은 서울에서도 젠트리피케이션이 시작됐다며 새로운 창업 아이템을 제안하기 바빴다.
이런 변화에 가장 촉각을 곤두세운 이들은 은퇴를 하거나 앞둔 베이비붐 세대의 중산층이었다. 그들은 빵과 커피에서 노후보장의 가능성을 발견하고선 이 지역에 프랜차이즈 브랜드 간판을 내걸고 가게 문을 열었다. 이들이 선호한 업종은 나름의 공통점을 갖고 있었는데, 특정한 기호 식품을 주력 상품으로 내걸었지만 실제로 거래되는 대상이 ‘집’의 특정 기능을 외부화한 공간이라는 점이었다. 이를테면 카페는 커피를 미끼 상품으로 내걸고 일정 시간 공간을 빌려주는 업종, 즉 초단기 부동산 임대업에 가까웠다.
그렇다면 높은 비용을 지불하며 이 공간들을 임대한 이들은 누구였을까? 그들 상당수는 2010년대 초반 ‘삼포세대’로 불렸던 이들이었다. 삼포세대란 연애, 결혼, 출산을 포기한 세대를 의미하는 신조어였지만, 실질적으로는 ‘내 집 마련’의 꿈을 포기한 세대를 뜻하는 것이었다. 그들 중 상당수는 이전 같았으면 결혼 후 허리띠를 졸라매면서 아파트 분양광고를 눈여겨볼 나이였으나, 여전히 미혼의 상태로 큐브에서 전월세방을 전전하는 중이었다.
이와 같이 초단기 임대업의 형태로 집의 기능을 외부화한 공간들이 큐브 주변에 확장을 지속해 나갔다면, 다른 한편에서는 일군의 사용자 집단에게 가상의 방을 제공해 주는 비즈니스가 빠른 속도로 증가하기 시작했다. 바로 디지털 정보서비스 산업이 그것인데, 이 산업에게 큐브는 핵심적인 거점 시장 중 하나였다. 사실 포털, 게임, SNS, OTT 등을 포괄하는 이 산업은 인터넷과 무선망을 통해 사용자와 컴퓨터 사이, 그리고 사용자와 스마트폰 사이에 각종 정보 콘텐츠로 구성된 가상의 방을 임대해 주고, 그 대가로 사용자의 ‘시간’을 챙기는 식이었다. 이전에 비해 구매력이 현저히 낮아진 젊은 소비자 집단이지만, 그럼에도 첨단 정보 기술을 총동원해 이들을 ‘사용자’로 삼아 비즈니스 모델을 고안해내려는 일련의 시도들이 거듭되고 있는 것도 이런 이유 때문이었다. 이들에게 큐브는 ‘현금화’의 방법만 찾아낼 수 있다면 노다지나 다름없는 거대한 시간의 저수지였기 때문이다.
주목해야 할 대목은 큐브 주변의 초단기 임대업과 ‘가상의 방’ 정보서비스 산업의 상호작용 과정에서 새로운 유형의 변종 보행자들이 등장했다는 점이다. 여기에서 중요한 역할을 한 것은 스마트폰이었다. 도시인이라면 누구나 제 나름의 지도를 머릿속에 간직한다. 그 지도의 기본 골격은 지하철이나 시내버스의 노선도 형태를 띠고 있겠지만, 특정 지역의 경관은 보행자의 눈높이에서 수집된 파편적 이미지의 형태로 기억 속에 보관되어 있기 마련이다. 따라서 그곳에서 걷는다는 것은 머릿속에서 나만의 지도를 펼쳐보며 기억 이미지를 되새김질해보는 인지 행위를 동반하곤 한다. 하지만 스마트폰이 등장하자, 머릿속 지도는 스마트폰의 맵이 대신했고, 기억 이미지는 인스타그램의 음식이나 인테리어 사진으로 대체되었다. 소요(逍遙)의 테크닉은 낡은 것이 되었고, 보행의 의미 역시 크게 변모했다.
어떤 이들에게 이제 보행은 그 자체의 목적을 지닌 행위가 아니었다. 오히려 스마트폰이 제공하는 일련의 ‘사용자 경험’을 경유해 특정한 과업을 수행하는 데 필요한 수단일 뿐이다. 결과적으로 스마트폰이 매개하는 도시 경험은 카페, 멀티플렉스, 음식점, 술집 등 각종 프랜차이즈 가맹점 사이의 이동 경로로 요약되었고, 보행의 감각적 차원은 손바닥만 한 터치스크린의 표면 위에서 초박형으로 납작해졌다. 사실 이들이 인터넷에 유소년기를 탕진한 첫 번째 세대에 속했다는 사실을 떠올려 보면 그리 놀라운 일은 아니었다. 매일 일정 시간 이상 PC방에서 각종 네트워크 게임에 몰입했고 버디버디와 싸이월드, 인터넷 커뮤니티와 게시판을 일상의 터전으로 삼아 새로운 형태의 친밀성을 실험했던 이들, 바로 그들이 스마트폰을 손에 쥔 채 SNS 타임라인을 응시하면서 도시 이곳저곳으로 발길을 옮기고 있었던 것이다.

3.
이제 2021년, 작년 1월 이후 중국 우한 발 코로나19 확산으로 시작된 팬데믹의 시간이다. 큐브 거주자들은 방에 갇힌 채 사방에서 고립된 상태이다. 정부의 각종 규제정책에도 불구하고 아파트 가격은 천정부지로 솟구쳐 올랐고, 이전까지 방 바깥에서 집의 기능을 일부 대신해 줬던 상업공간도 방역조치로 인해 부분적인 접근만이 허용될 뿐이다.
영혼까지 끌어모아도 상향이동은 불가능하고, 마스크를 착용해도 수평이동은 제한적이다. 이제 인스타그램에 올릴 만한 사진도 몇 장 남지 않았다. 그러니 바로 이 시점에 큐브 거주자들 일부가 배민과 쿠팡의 지원, 카카오톡 각종 단톡방의 응원을 받으며 스마트폰의 주식거래 플랫폼을 통해 글로벌 증권시장이라는 머니게임의 콜로세움으로 향하는 것도 그리 이상해 보이지 않는다. 비록 개미 떼로 변신해야 하는 고단함이 따르지만, 가상의 거대 도박장이 안겨주는 몰입의 확장감만큼은 포기하기 힘들다. 게다가 차익 실현만 보장된다면야 그곳이 현실의 방보다 훨씬 더 아늑할 테니까.
박해천
박해천
동양대학교 디자인학부 교수, 1971년생
저서 『아수라장의 모더니티』 『아파트 게임』 『콘크리트 유토피아』 『확장도시 인천』(공저) 『아키토피아의 실험』(공저) 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