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작후기
「새로운 버전」

- 시집 『세 개 이상의 모형』

  • 창작후기
  • 2021년 여름호 (통권 80호)
「새로운 버전」

- 시집 『세 개 이상의 모형』

 

 

저는 이번 《대산문화》에 싣기 위해 ‘새로운 버전’이라는 제목의 글을 썼었습니다. 작년에 대산창작기금을 수혜하고 발간한 『세 개 이상의 모형』에 대한 단상을 쓰면 되었기에 어렵지 않게 쓸 수 있으리라 생각했습니다. 이 시집은 어떠어떠한 시집이다, 혹은 책이다, 혹은 책을 내고 나니 이러저러한 기분이 든다, 기타 등등. 이런 문장을 썼었어도 됐을 것입니다. 문제는 이것입니다.

 

①14매 분량의 「새로운 버전」이 어디로 갔는지 알 수가 없습니다.
②저는 요새 건강이 몹시 좋지 않습니다.

①에 대해 조금 더 덧붙이자면, 저는 「새로운 버전」이 꽤나 마음에 들었습니다. 예상했던 것보다 더 많은 노력과 수고가 들어간 글입니다. 그런데 그 글이 사라진 것입니다. 제 컴퓨터 어디엔가 잠들어 있겠지요. (잠시 딴 이야기를 하자면) 저는 제가 작년 대산창작기금 수혜자로 선정되었을 때 쓴 소감문도 아주 좋아합니다. 누군가는 그 산뜻하고 어지럽고 슬픈 글을 읽었으리라 생각합니다.

그리고 이 글도, 또는 이 글이나 이 글이 아닌 모든 이 글도 앞선 글의 후속이라고도 생각합니다.
②저는 요새 건강이 몹시 좋지 않습니다. 차차 나아질 것이라 생각하여도 지금 여기가 끝이 아닐까 하는 어지러운 생각에 빠져들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지금은 조금 나아져서 책상 앞에 앉아 있지만, 이것도 잠시일 뿐입니다. 흔들리는 것입니다. 알 수 없는 신경 증상으로 인해 피가 잘 통하지 않고 사지 곳곳이 차갑고 시립니다. 제 나이는 겨우 만으로 29세입니다. 의사들은 제 신경이 예민한 탓이라고 말합니다. 무슨 일을 하냐고 물어보고는 글을 쓴다고 대답하면 그 이후로는 모든 증상이 제 탓입니다. 어쨌든 여기서 제가 말하고 싶은 건 이러한 절망적인(혹은 우스운) 상황에서 제가 사라진 「새로운 버전」을 대신할 「새로운 버전」을 쓰고 있다는 사실이 문득, 모든 질문에 대한 대답이 아닐까 하는 현학적이고 구도적인 생각이 들었단 점입니다.

네, 저는 어쨌든 곧 죽을 수도 있겠다 싶을 정도로 어지럽고 두근거리는 순간에 ‘이 모든 게 낫는다면, 다시 정상으로 돌아간다면, 무슨 말이 되었든 말을 해야겠다’라고 생각했습니다. 이전에는 그럼 무얼 덜 말했기에? 잘 모릅니다. 그러나 저는 존 케이지를 좋아합니다. 그 사람은 도(道)에 빠져 있었습니다. 데이비드 린치는 초월명상을 합니다. 저는 무엇에 대하여서인지는 몰라도 그 정도는 아니지만 약간 관심이 있습니다.

기울어진 사람입니다. ①의 「새로운 버전」에는 기울어진 사람의 어떤 시선이 담겨 있었을까요? 저는 「새로운 버전」에서 3월에 완성한 중편소설 「―네, 저 또한 오만 종류의 글을 씁니다―」의 마지막 부분을 인용하고 변주하여 말 그대로 제가 생각한 새로운 버전이란 게 무엇인지를 드러내어 보였습니다. 글 자체가 새로운 버전을 담고 있었던 것이지요. 그러나 완성도의 측면이 아니라 힘의 측면에서 저는 그 글이 덜 완성되었다고 느꼈습니다.
이상한 문장이지요. 달리 말해보면, 저는 그 글이 완성도의 측면에선 100% 완벽하고 완성도가 아닌 다른 측면에선 100% 완벽하지 않다고 느꼈습니다. 다음의 문장 또한 이상합니다.


③나는 죽고 싶지 않다. 네가 애인 없이 그리고 포도주와 말, 매, 개, 황금 없이 살고 싶지 않은 것처럼 말이다.1)

 

발자크의 단편 「영생의 묘약」에서 아버지가 아들에게 말했던 이 문장 ③은 참 이상합니다. 그는 마치 삶 없이는 죽고 싶지 않다고 떼를 쓰는 것 같습니다. 삶이 없다면 죽음을 달라, 는 일반적인 문장과는 다릅니다. 삶이 없다면 죽고 싶지 않다고, 아버지는 말합니다. 그는 삶이 있는 죽음(death with life)을 원한다고 말하는 것 같습니다. 삶이 있는 죽음은 살아있는 죽은 자(living dead)와는 다릅니다.

작년 2020년 여름 두 번째 시집인 『세 개 이상의 모형』을 발간하고 저는 가을과 겨울을 지나 봄으로 돌아왔습니다. 지금의 저는 리빙데드에 가깝지만 이렇게 몸이 좋지 않은 경우가 아닌 평소엔 삶이 있는 죽음을 원하는 쪽에 가깝습니다.

여기서 인생이 끝날지도 모른다는 (과장되었지만 실제적인) 두려움 속에서 사라진 『세 개 이상의 모형』의 단상인 「새로운 버전」을 대신할 만한 「새로운 버전」을 쓰고 있습니다. 그리고 ①과 ②와 ③과 기타 약간의 과장을 거쳐 이즈음에서 문장을 끝맺습니다.

이 「새로운 버전」 또한 제가 어떻게 해서 그런 종류의 시집을 내고 이런 종류의 글을 쓰는가에 대한 나름의 해석문이 되어줄 것입니다.

 


1) 「영생의 묘약」, 『미지의 걸작』, 오노레 드 발자크 지음, 김호영 옮김, 녹색광선, 2019.

※ 필자의 시집 『세 개 이상의 모형』은 재단의 대산창작기금을 받아 2020년 문학과지성사에서 발간되었다.

김유림
시인, 1991년생
시집 『양방향』 『세 개 이상의 모형』 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