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화제작
능력주의와 샌델의 대안

- 마이클 샌델의 『공정하다는 착각』

  • 오늘의 화제작
  • 2021년 여름호 (통권 80호)
능력주의와 샌델의 대안

- 마이클 샌델의 『공정하다는 착각』

 

 

불평등과 능력주의의 폐해를 비판하는 많은 책들은 세습귀족제의 수단이 된 교육 현실을 한탄한다. 그러면서 진정한 능력주의, 아메리칸 드림의 사회를 회복하자고 제안한다. 하지만 샌델은 그런 식의 결론을 거부한다. 그는 미국이 세습 귀족제적 사회가 되었음을 비판하면서도 동시에, ‘능력주의의 폐해는 능력주의가 제대로 구현되지 못했기 때문이므로 능력주의를 더 완벽히 구현해야 한다’는 주장에도 반대한다. 능력주의 자체가 ‘폭정(tyranny)’을 낳기 때문이다.

능력주의는 세습 상류층에서 권력을 빼앗기는커녕 오히려 그들의 권력을 강화했다. 하버드대 총장이었던 제임스 코넌트는 1940년대부터 ‘무계급 사회’의 이상을 위해 “엘리트 체제를 뒤집어엎고 능력주의적 체제로 대체”하는 과감한 개혁을 시작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날수록 엘리트 체제는 점점 강화되기만 했다. 샌델은 코넌트가 ‘상황을 너무 낙관했다’면서 능력주의 개혁은 “무계급 사회를 가져오지도 않았고, 재능 없다고 배제된 사람들에 대한 혐오를 방지하지도 못했다”고 말한다.

샌델은 성공이 자신의 재능과 노력 때문이라고 믿는 능력주의적 신념은 사실에 부합하지 않을 뿐 아니라 공동선(共同善, the common good)을 해친다고 비판한다. 그는 능력주의 방식의 인재 선별은 완벽해질 수도 없거니와, 설령 완벽해진다고 가정하더라도 선별되기 위한 극단적 경쟁의 고통, 선별에서 탈락한 대다수의 좌절은 사회통합에 매우 해로울 수밖에 없다고 지적한다. 공동선을 지고의 목표로 삼는 공동체주의자인 샌델에게 이 점은 치명적인 문제였을 것이다.

그렇다면 샌델의 대안은 무엇일까. 그가 보기에 개인의 성공은 ‘운’에서 온다. 재능이나 노력은 그에 비하면 지극히 미미한 요인이다. 샌델은 프리드리히 하이에크, 존 롤스, 프랭크 나이트와 같은 지적 거인들이 ‘정의의 기반으로서 능력이나 자격을 거부했다’면서 이들의 주장을 소개한다.

하이에크 주장의 요지는 다음과 같다. ‘시장의 보상은 단지 내 재능과 노력이 시장의 수요에 부합해 높은 사회적 가치를 실현한 데에 대한 보상이며, 따라서 그것은 재능과 노력의 보상이 아니라 행운의 산물이다.’ 하이에크가 이런 주장을 한 이유는 재분배 요구를 근본적으로 차단하기 위해서였다. 불평등은 도덕적으로 비난받을 일이 아니며 누군가의 몫이 지나치게 많아지는 것에도 세금을 부과할 수 없다는 것이다.

롤스 역시 하이에크처럼 재능의 도덕적 자의성을 강조하지만, 결론은 하이에크와 반대다. 롤스에 따르면, 불평등이 정당화되는 경우는 오직 최소 수혜자의 상황을 개선하는 경우(‘차등의 원칙’)이다. 그는 세금을 통한 소득 재분배도 적극적으로 이루어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게 정의롭기 때문이다.

경제학자인 프랭크 나이트는 시장 보상이 능력이나 자격에 대한 보상이 아님은 물론이고, 시장 수요에 부응하는 게 사회적으로 가치 있는 일이어서 보상받는 것이라는 하이에크의 주장까지 배격한다. 사회적 가치에는 언제나 경제적 요구만으로는 도저히 담아낼 수 없는 윤리적 가치까지 포함되기 때문이다. 그렇지 않다면 ‘카지노 왕’이 외과의사 보다 50배 더 큰 사회적 기여를 한다고 여겨야 하는데, 당연히 그런 주장은 정당화되기 어렵다.

샌델은 이런 주장들이 공유하는 전제, 즉 ‘성공은 운에서 나온다’는 명제에서 자신의 대안을 끌어낸다. “당신의 성공은 운에서 비롯한 것이니 부디 겸손할지어다!” 실제로 책의 마지막 장 마지막 절의 제목은 ‘민주주의와 겸손’이다. 샌델은 성공에 도취하여 거만하게 굴지 말고, 박봉에 시달리는 사람들의 일을 존중하며, 건실한 공동체의식을 회복해야 한다고 역설한다. 조금 실용적인 대안도 제시한다. 명문대 입시에서 1차선별 후 최종선별 과정에서 제비뽑기를 적용하는 것이다. “일정 관문을 넘는 조건으로만 능력을 보고, 나머지는 운이 결정토록 하는 일”은 능력주의의 폭정에 맞서 건강함을 찾게 해줄 거라고 샌델은 주장한다.

그러나 이러한 주장은 능력주의의 대안으로 충분치 않을 뿐 아니라 적절하지도 않다. 무엇보다 능력주의의 폐해는 개인의 태도(겸손) 차원의 문제가 아니며 그런 방식으로 해결될 수도 없다. 또한 성공은 운뿐만이 아니라 상층계급이 의도적으로 진입장벽을 높이는 ‘사회적 봉쇄(social closure)’와 ‘기회 비축(opportunity hoarding)’의 결과이기도 하다. 샌델은 이런 측면을 간과하고 운이라는 요소를 지나치게 강조함으로써 문제를 불가피한 것으로 자연화한다. 능력주의가 나쁜 근본적인 이유는 사람들을 오만하게 혹은 의기소침하게 만들어서가 아니라, 그것이 현존하는 불평등을 정당화하고 재생산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능력주의와 그 대안을 논의할 때 관건은 불평등의 재생산 구조를 어떻게 균열시킬지에 있다.

박권일
저서 『소수의견』 『축제와 탈진』 『88만원 세대』 『지금 여기의 극우주의』 『능력주의와 불평등』 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