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계절의 문학
다시, 문학으로……

  • 이 계절의 문학
  • 2021년 여름호 (통권 80호)
다시, 문학으로……

 

“이래서 북유럽 사람들 독서량이 많은 건가?” 코로나19 여파가 장기화되고 있는 시기, 지인이 건넨 말이다. 운동이나 약속 같은 외부 활동에 제약이 생기다 보니 답답했다는 이야기를 한 것이다.

그도 역시, 흔히 듣고 봐왔던 것처럼 코로나19 시국 초기에는 넷플릭스나 유튜브 영상 보는 것을 즐겼다고 했다. 그러다 이마저 지겨워지니 책을 들여다보게 됐다고 했다. 그런 자신도 이러는 것을 보니, 밤이 길고 상점들도 일찍 문 닫는 환경 덕에 북유럽 사람들이 자연스레 책도 많이 보게 되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실제 지난해 서점가 통계를 보면 코로나19 시국 이후 도서 판매량이 코로나19 이전보다 더 늘었다. 또 지난 3월 시장조사 전문기업 엠브레인 트렌드모니터가 실시한 조사에서는 ‘코로나19가 발생한 2020년에는 이전보다 독서량이 더 늘었다’라는 답변이 46.9%로 절반에 가까웠다. ‘지난해 이후 주로 읽은 책의 분야’로는 소설이 47.3%로 가장 많다는 결과도 있었다.

지인의 사례도 이러한 흐름과 비슷해 보였다. 주식 투자서나 자기계발서가 아닌 소설을 보고 있다고 했다. 한때 빠져있었다는 추리, 미스터리 스릴러 소설을 다시 들여다보고 현실의 답답함을 풀어줄 작품들을 찾아 읽고 있었다.

영상에서 소설로의 변화가 있을 뿐 ‘재미’를 추구하기는 마찬가지였다. 그래서인지 현실을 반영해 공감대를 형성하거나 가까운 미래에 일어날 법한, 상상력을 발휘한 이야기, 가슴이 두근두근하는 서스펜스, 스릴러 등 장르물들이 주목받은 듯하다.

 

 
 
 

 『일의 기쁨과 슬픔』의 장류진 작가 신작 『달까지 가자』는 흙수저 여성 3인방을 등장시켜 가상화폐 투자 이야기를 그리고, 표절 논란 이후 6년 만에 신작을 내놓은 신경숙은 『아버지에게 갔었어』를 통해 딸이 바라보는 아버지의 모습을 담았다.

『괭이부리말 아이들』의 김중미 작가는 20년 만에 내놓은 신작 『곁에 있다는 것』으로 세월이 지났음에도 변함없는 ‘가난’에 대해 짚었고, 조해진 작가는 『환한 숨』을 통해 공장 사고로 의식을 잃은 미성년자, 계약 해지를 앞둔 특성화고 교사, 기댈 곳 없이 암 투병 중인 여성 등 가려지고 외면된 사람들의 이야기를 다뤘다.

그런가 하면 편혜영 작가는 소설집 『어쩌면 스무 번』에 수록된 8편의 단편을 통해 일상에서의 아이러니를 전했다.

어떤 작품은 ‘내 이야기 같다’라는 반응을 이끌었고, 또 어떤 작품은 죄책감이나 용서, 연대, 환경보호 등 생각해 보지 않았던 것들을 되돌아보게 하는 기회를 전했다.

특색 있는 장르소설의 인기도 두드러졌다. 이미예, 손원평, 김초엽, 천선란, 이인화, 장다혜, 서미애 작가의 작품이 눈에 띄었다.

이미예 작가의 『달러구트 꿈 백화점』은 지난해 9월 출간된 이후 꾸준히 베스트셀러 차트(교보문고 기준) 상위권을 유지하고 있다.

손원평 작가의 영어덜트 소설 『아몬드』도 2017년 출간됐음에도, 김초엽 작가의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은 2019년 출간됐음에도 여전히 독자들의 선택을 받았다.

천선란 작가와 이인화, 조예은 작가는 SF소설을 선보였다.

천선란 작가는 2035년, 휴머노이드 기수지만 인지학습기능을 갖게 된 별종 ‘콜리’의 이야기 『천 개의 파랑』을, 이인화 작가는 인공지능들이 인간을 지배하는 2061년에서 1896년 조선으로 시공간을 넘나드는 『2061년』을 내놓았다. 조혜은 작가는 방부제 눈이 내리는 재난 시대 이야기 『스노볼 드라이브』로 주목받았다.

국내 미스터리 작가 1위로 불리는 서미애 작가는 『모든 비밀에는 이름이 있다』로 사이코패스라는 존재가 애초 태어나는 것인지, 사회적으로 만들어지는 것인지를 다뤘다. 이선영 작가의 신작 『지문』은 변사사건의 범인을 쫓는 과정에서 가정폭력, 아동학대, 대학 내 성폭력 등의 폭력을 조명했다.

조선시대 거상의 아들 실종을 중심으로 풀어가는 이야기, 장다혜 작가의 『탄금』도 궁 밖을 무대로 한 이야기와 그 속에 담긴 반전의 반전으로 흥미를 돋웠다.

독특한 시도의 앤솔로지도 눈길을 끌었다.

『두 번째 엔딩』은 김려령 『우아한 거짓말』, 김중미 『모두 깜언』, 손원평 『아몬드』, 이희영 『페인트』 등 기존 작품에서 주인공이 아니었던 인물의 이야기를 다룬 단편집이다. 영화에서의 스핀오프라고 볼 수 있다. 주인공만큼 그 주변 인물도 행복해졌는지, 몰랐던 조연의 사정 등을 소설에서도 만날 수 있는 신선한 시도였다.

천선란, 박해울, 박문영, 오정연, 이루카 등 5명의 여성 SF작가가 3월 8일 여성의 날을 맞아 낸 소설집 『우리는 이별을 떠나기로 했어』와 하지은, 호인, 이재만, 김이삭, 한켠, 서번연, 지언 작가가 무협소설과 구전·전래동화 재해석 작품을 엮은 『야운하시곡』도 호응을 얻었다.

불과 몇년 전만해도 한국문학은 외국문학보다 인기가 덜했다. 에세이가 강세를 띠면서 문학 자체의 인기도 낮아지면서 ‘문학의 위기’라는 해석도 따랐다. 하지만 팬데믹 상황에서 마주한 불안은 우리를 다시 문학으로 이끌고 있다.
문화콘텐츠는 그 시대를 반영한다고 했다. 지금 우리의 문학은 우리가 처한 팬데믹, 환경, 사회, 정치의 현실을 투영하고 그와 관련된 답답함을 풀어내는 매체로 독자들의 마음을 두드리고 있다.

일본의 라이트노벨 작가 요시다 아키미는 『한낮에 뜬 달』을 어느 날 문득 모습을 드러내지만 줄곧 그 자리에 있었을 뿐 그저 알아채지 못한 것으로 표현한 바 있다. 줄곧 곁에 있어도 보려고 하지 않으면 보이지 않는 존재. 어쩌면 이 시대의 문학은 우리에게 『한낮에 뜬 달』 같은 존재이진 않을까.

임종명
뉴시스 사회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