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화
여기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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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1년 여름호 (통권 80호)
여기 있어

“어휴, 이게 또 어디 간 거야.”

엄마가 창문을 찾는 벌처럼 거실을 온통 헤집고 다녔어요. 머리끈이 또 없어졌나 봐요. 퇴근하고 돌아오면 엄마가 맨 처음 하는 일이 머리 묶기거든요. 머리를 질끈 묶은 엄마는 곧장 세면대로 가서 세수를 하고 발을 닦죠. 그리고 묶은 머리를 한 번 더 꽉 조인 다음에 밀렸던 잔소리를 시작해요. 아무리 찾아도 없는 머리끈 때문에 엄마는 잔뜩 어질러진 내 방을 보기도 전에 화가 난 것 같았어요. 

“이상하네. 분명 여기다 뒀는데.” 

엄마는 ‘머리끈 탁자’ 앞에 서서 한숨을 푹 내쉬었어요. 머리끈 탁자가 뭐냐고요? 다시는 잃어버리지 않겠다며 엄마가 정한 거예요. 앞으로 모든 머리끈은 소파 앞에 놓인 탁자 위에만 둘 거라고요. 

“엄마, 또! 또 잃어버린 거야?” 

지유가 엄마 주위를 빙빙 돌며 소리쳤어요. 보물찾기라도 하는 것처럼 신이 나서 말이에요.

“지유가 만진 거 아니지?” 

엄마가 묻자 지유는 혀까지 빼꼼 내밀며 고개를 저었어요. 

“아닌데!” 

우렁찬 목소리로 대답하고는 쪼르르 달려가 버렸죠. 엄마는 그새 찾는 걸 포기한 건지 서랍 안에서 새 머리끈을 꺼냈어요. 

“대체 어디로 다 사라지는 거야?” 

궁금한 것처럼 말했지만 더 고민하지는 않았어요. 새 머리끈으로 잽싸게 머리를 묶은 엄마는 평소처럼 씻고, 청소기를 밀고, 저녁밥을 차리기 바빴죠. 하지만 나는 그날 밤 침대에 누워서까지 고민했어요. 분명히 학교에서 돌아왔을 때까지만 해도 탁자 위에 머리끈이 있는 걸 봤거든요. 혹시 머리가 너무 길어서 불편했던 귀신이 엄마 머리끈을 훔쳐가기라도 한 걸까요? 나는 오싹해져서 얼른 이불을 머리끝까지 뒤집어썼어요. 그러다 나도 모르게 잠이 들어버렸죠. 그렇게 걱정할 건 없잖아요. 머리끈이야 얼마든지 또 있으니까요.

 

“여보! 그거 어디 있지?” 

일요일 저녁이었어요. 아빠는 집안에 서랍이란 서랍은 전부 열어보더니 결국 엄마를 불렀죠. 나는 아빠가 찾는 게 손톱깎이라는 걸 바로 알아맞힐 수 있었어요. 아빠는 일요일 저녁마다 꼭 손톱을 깎거든요. 

“그게 뭔데?” 

엄마는 화가 난 것 같았어요. 아빠가 뭐든지 ‘그거’라고 부르는 걸 싫어하거든요. 

“그거 있잖아, 손톱깎이.” 

아빠는 맨날 찾는 걸 왜 모르냐는 듯 답답해했어요. 엄마는 손톱깎이를 두는 곳도 정해놔야겠다고 툴툴거리면서 아빠가 이미 열어봤던 서랍들을 다시 뒤지기 시작했어요. 

“얘들아, 손톱깎이 못 봤니?” 

얼마 뒤엔 지유랑 나까지 함께 찾아야 했어요. 온 식구가 구석구석 들추고 다녔지만, 손톱깎이는 나오지 않았어요. 엄마는 그러게 왜 아무 데나 두냐며 아빠 탓을 했어요. 아빠는 마지막으로 쓴 사람은 분명 엄마라고 우겼죠. 나는 이대로 손톱깎이를 못 찾으면 정말 큰 싸움이 날 것 같아서 다급해졌어요. 그런 내 속도 모르고, 지유는 자꾸 엉뚱한 데만 들쑤시고 다녔어요. 우산꽂이 속을 들여다보질 않나, 화분에 흙을 파고 있질 않나. 

“야, 그런 데 있을 리 없잖아!” 

나는 답답해서 소리쳤어요. 

“있을 수도 있지! 그걸 언니가 어떻게 알아?” 

지유도 지지 않고 소리쳤어요. 

“그만 싸워! 안 찾아도 되니까 너희들은 들어가서 자.” 

엄마는 아직 잘 시간이 한참 남았다는 걸 알면서 괜히 지유랑 나를 방으로 돌려보냈어요. 아빠한테는 내일 퇴근길에 손톱깎이를 사 오라고 했죠. 아빠는 하얗게 자란 손톱들을 불만스럽게 내려다보긴 했지만, 곧 잊어버리고 말았어요. 샤워하면서 콧노래를 부르기까지 했죠. 지유랑 내 싸움은 끝나지 않았어요. 

“언니는 왜 맨날 아는 척이야?” 

지유가 카랑카랑한 목소리로 덤비고 들자, 나는 얼굴이 빨개질 정도로 화가 났어요. 올해 초등학교에 입학한 지유는 요즘 자꾸 기어올라요. 한 번은 나를 ‘야’라고 불러서 엄마한테 된통 혼나기까지 했다니까요. 

“내가 너보다 많이 아는 게 당연하지! 이 바보야!” 

나는 6학년 언니들이 그랬던 것처럼 팔짱을 꼈어요. 콧방귀를 흥 뀌고, 상대할 필요 없다는 것처럼 고개를 팽 돌려버렸죠. 지유는 처음 보는 내 모습에 당황한 것 같았어요. 나는 씩씩거리는 지유를 보며 후회하는 한편, 조금 우쭐해지기도 했어요. 

“치, 뭐가 없어진 줄도 모르면서.” 

지유는 자존심이 상했는지 한 마디 쏘아붙이고는 자기 방으로 들어가 버렸어요. 뭐가 없어졌다고? 나는 지유가 한 말이 이해가 안 돼서 고개를 갸웃거렸어요. 방에 들어가서 없어진 게 없는지 확인해봤지만 모두 그대로였어요. 지유가 탐내던 하트모양 열쇠고리는 책가방에 잘 달려 있었어요. 지유가 자기도 읽고 싶다고 떼썼던 단짝 예은이가 준 편지도 원래 있던 자리에 얌전히 놓여있었죠. 

“대체 뭐가 없어졌다는 거야.” 

나는 그게 뭐든 별로 궁금하지 않았어요. 어쨌든 내가 아끼는 물건들은 전부 멀쩡히 있었으니까요. 없어진 줄도 모르는 걸 굳이 찾을 필요는 없잖아요?

 

“또 어디다 흘린 거야? 잘 생각해 봐!” 

엄마가 다그쳤지만, 아빠는 얼굴을 찌푸리기만 할 뿐 아무 대답도 못 했어요. 오늘 오랜만에 나들이를 떠나기로 했거든요. 우리는 아침 일찍 일어나 바쁘게 준비했어요. 엄마는 노란 달걀부침을 넣은 김밥을 싸고, 아빠는 창고에만 있느라 먼지가 쌓인 야영 텐트를 깨끗이 닦았어요. 나랑 지유는 달리기 시합할 때 쓸 호루라기랑, 던질 때마다 불빛이 번쩍거리는 탱탱볼을 챙겼죠. 이제 차에 타기만 하면 되는 줄 알았더니, 아빠가 분명 호주머니 속에 넣어뒀다는 차 키가 없는 거예요. 집으로 돌아오자마자 아빠는 회사에 들고 다니는 가방 속을 뒤적였어요. 엄마는 어제 아빠가 입었던 바지를 세탁기에서 도로 꺼내 주머니란 주머니엔 다 손을 넣어봤어요. 나는 소파 방석을 샅샅이 들춰봤어요. 아빠가 거스름돈으로 받은 동전들을 넣어두는 단지 속도 들여다봤죠. 하지만 차 키는 어디에도 없는 것 같았어요. 없는 걸 찾고 있는 걸까 봐 막막했어요. 물건도 자기 이름을 듣고 대답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그럼 잃어버릴 때마다 이름을 부르면 될 텐데요. 

“그럼 이제 나들이 못 가는 거야?” 

지유가 발가락을 꿈틀거리며 물었어요. 아까부터 지유는 어딘가 불안해 보여요. 내 눈치를 살살 보더니 자기 방으로 쏙 들어가 버리는 거 있죠? 나는 만화 속 탐정이 그러는 것처럼 살금살금 지유의 뒤를 밟았어요. 지유는 방에 들어가자마자 옷장 밑 컴컴한 틈새로 손을 밀어 넣었어요. 그러곤 잡히는 대로 하나하나 끄집어내기 시작했죠. 손톱깎이, 머리끈, 엄마 코트에 달려있던 것과 같은 단추 하나가 먼지를 뒤집어쓴 채 밖으로 나왔어요. 더 깊숙이 손을 밀어 넣은 지유는 마침내 차 키까지 끄집어냈죠. 

“너 뭐 하는 거야?” 

나는 엄마가 그러는 것처럼 허리춤에 손을 올리고 무서운 표정을 지었어요. 지유는 화들짝 놀라며 물건들을 등 뒤에 감추려 했어요. 

“다 네가 숨긴 거였어?” 

내 물음에 지유가 금붕어처럼 입을 뻐끔거리기만 했어요. 나는 변명을 기다려주고 싶지 않았어요. 맨날 말썽만 일으키는 지유가 괘씸했거든요. 자기 멋대로인 데다 아무것도 모른다니까요. 나는 큰 목소리로 엄마 아빠를 불렀어요. 

“세상에, 이게 다 뭐야?” 

엄마 아빠는 지유가 숨긴 물건들을 감탄스럽게 내려다보았어요. 왜 숨겼는지는 물어보지도 않았어요. 엄마는 머리를 콩 쥐어박는 시늉을 하는 게 끝이었고, 아빠는 ‘세상에 이런 일이’에 제보하겠다며 말도 안 되는 엄포만 늘어놨어요. 우리는 서둘러 나들이를 떠났어요. 엄마는 늦게 가면 돗자리 펼 자리를 다 뺏긴다고 고속도로를 쌩쌩 달렸어요. 아빠는 김밥이 다 상하겠다며 차 안에서 도시락을 까먹었어요. 나는 화가 나서 입이 댓 발 나왔지만, 왜 화가 났는지 알 수 없었어요. 지유가 나비를 쫓겠다며 팔랑팔랑 뛰어다니는 동안에도 머리가 지끈지끈 아팠답니다. 

“언니, 이거.” 

집으로 돌아오자마자 지유가 내게 뭔가를 쥔 주먹을 내밀었어요. 지유는 볼까지 붉히며 수줍어했어요. 내 손바닥 위로 지유가 건넨 그것이 살며시 옮겨왔어요. 나는 그걸 가만히 내려다봤어요. 처음엔 그게 뭔지조차 기억나지 않았어요. 지유는 꼭 맞추길 바라는 퀴즈라도 낸 것처럼 잔뜩 기대하는 얼굴을 하고 나를 바라봤어요. 

“별이네.” 

나는 그 별을 기억해 냈어요. 이제는 빛이 나지 않을 것처럼 낡은 별이었지만요. 그건 이사 오던 날 지유가 내 방 천장에 붙이라고 준 야광별이었어요. 2년을 꼬박 그 자리에 붙어있었는데, 어떻게 사라진 줄도 몰랐을까요? 한때 난 별에게 말을 걸기도 했어요. 친구랑 싸운 날엔 특히 그랬죠. 엄마는 속상해서 울먹거리는 나에게 원래 친구랑 싸우기도 하는 거라고 가볍게만 말했어요. 그것 때문에 학교 수업에 집중 못한 거 아니냐고 핀잔을 주기까지 했죠. 별은 내 말을 참 잘 들어주었어요. 내 잘못이라고도, 친구 잘못이라고도 하지 않았어요. 내일 당장 화해하라거나, 다시는 같이 놀지 말라는 말도 하지 않았죠. 나는 마음 놓고 울 수 있었답니다. 

“맨날 같은 곳만 보는 게 지루할까 봐 그랬어.” 

지유가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말했어요. 아빠가 들었다면 자신감 있게 말하라고 한소리 했을 거예요. 아빠는 작게 말하는 걸 싫어하거든요. 하지만 지유의 목소리가 작아진 건 아빠한테 한 번 호되게 혼난 뒤부터였어요. 비를 좋아하는 지유는 비 오는 날 친구랑 물장구치며 놀다가 학원을 빼먹었거든요. 노느라 시간 가는 줄 몰랐다는 지유의 말을 아빠는 끝까지 믿어주지 않았어요. 언제나 제시간에 제자리에만 있을 수는 없는 거라고 나도 한마디 하고 싶었지만, 목소리가 나오지 않았어요. 

“그렇다고 말도 없이 가져가면 어떡해. 내가 이 별을 얼마나 좋아하는데.” 

나는 미안하다고 말하는 게 미안해서, 대신 손안에 별을 꼭 움켜쥐었어요.

“이젠 안 숨길 거야. 그러니까 잊어버리면 안 돼.” 지유가 새끼손가락을 내밀며 말했어요. 나는 선뜻 손가락을 걸어놓고서 걱정이 됐어요. 만약 또 제자리에 익숙해지면요? 원래 별은 하늘에 떠 있는 거라고 하다가 올려다보지도 않게 되면요. 어느 날 사라진 별을 찾다가 지쳐버리면요. 똑같은 별은 많다고 믿게 되면요. “누우면 바로 보이는 데 붙이자.” 지유가 말했어요. 나는 침대를 밟고 올라가 힘껏 까치발을 들었어요. 팔을 쭉 펴서 언제나 외롭던 허공에 별을 붙였죠. 불을 끄자 빛을 잃어버린 줄 알았던 별이 희미하게 빛났어요. 희미해서 더 오래 봐야 하는 빛이었어요. 지유는 그게 세상에서 제일 환한 빛이라도 되는 것처럼 손뼉을 치며 좋아했어요. 나는 지유가 보는 걸 그대로 보지는 못했지만 그래도 모른 체 하고 싶지는 않았어요. 나에게도 언젠가 눈이 부시게 빛났던 별을요. 그리고 별이 내게 말을 거는 것 같았거든요. 여기 있어. 나는 여기 있어.

 

박하림
동화작가, 제19회 대산대학문학상 동화부문 수상자, 1997년생
동화 「밤의 고백」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