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밭단상
③유령과 극장

  • 글밭단상
  • 2021년 여름호 (통권 80호)
③유령과 극장

 

대학교 연극은 아무리 봐도 어딘가가 계속 어설펐다. 신입생 때는 학교에 변변찮은 극장 하나 없기 때문이라고 생각했었는데, 지나고 보니 극장 때문도 아니었다. 이십대에 주로 학생 연극을 보러 다녀서 그랬을까. 언젠가부터 연극보다 희곡이 더 좋아졌다. (플라톤 식으로 말하면) 희곡이 이데아라면 연극은 이데아의 그림자가 아닐까 싶을 정도로. 공연을 보다가 도저히 못 견디겠다 싶을 때는 눈을 살짝 감았다. 그러면 희곡의 한 페이지가 머릿속에 펼쳐지면서 극작가와 대면할 수 있었다. 한국 축구의 전설적인 풀백, 이영표 선수의 말을 잠시 빌려 본다. 축구를 정말 잘 아는 사람은 동네 축구도 재밌게 관람한다. 웹툰 <커피우유신화>의 대사를 한구절 인용해 본다. 진정으로 커피를 사랑하는 ‘커피의 신’은 커피를 두고 우열을 매기는 사람이 아니라, 모든 커피를 즐길 수 있는 사람이다. 그러나 앎과 사랑이 모두 부족해서였을까. 동네 축구를 하루 빨리 벗어나고 싶었던 것 같다. 그러나 동시에 동네를 떠나는 순간 축구는 끝이라는 것도 내심 알고 있었던 것 같다. 언젠가는 모두가 동아리를 그만두어야 한다는 것을. 언젠가는 연극은 막을 내리고 다음 챕터로 넘어가야 한다는 필연을. 미련이 유령처럼 남았다. 그 유령이 글쓰기라는 이상한 막간극으로 인도한 것 같다. 여지껏 살면서 정말 단 한 번도 생각조차 해보지 못 했던 일이었기에 정말이지 유령에 홀린 느낌이었다.

 

이런 말을 하곤 했었다. 만약 어떤 미친 독재자가 나타나 지구라는 행성의 연극 상연을 전부 금지시켜 버린다고 할지라도, 희곡의 가치는 털끝만큼도 손상되지 않을 것이라고. 연극과 문학 사이에서 양다리를 걸쳐 있는 희곡이라는 요상한 글쓰기 양식의 존재론적 가치에 대해서 나름 고뇌하다가 불쑥 내뱉어 본 가정법이었다. 제법 반응이 좋아 뒤풀이나 술자리에서 읊고 다녔었는데, 거짓말처럼 코로나 19가 번지면서 호기롭게 내뱉었던 말이 으스스한 현실로 되돌아왔다. 2020년대는 극장들이 문을 닫으면서 시작했다. 대산 문화 재단의 후원으로 다녀왔던 유럽 여행의 기행문에는 “이십대에 극장이 나의 종교였고, 나는 예배를 결코 빼먹지 않는 신실한 수녀처럼 극장을 다녔었다. ‘교회 다니세요? 절 다니세요?’ ‘저는 극장 다녀요.’라고 답했을 지도 모른다.” 같은 낯부끄러운 말들을 적었다. 그리고 몇 주 후 극장들이 하나둘 문을 닫는 현실을 맞았다. 2010년대에는 극장에 앉아만 있어도 행복했었다. 극장에 앉아 있노라면 영혼이 하늘로 솟구쳐 날아가는 기분이었다. 그 비상의 환각을 위해, 비둘기 무리가 공원의 나뭇가지에 옹기종기 모여 앉아있듯, 비좁은 극장에 빽빽이 붙어 앉아 서로의 숨결을 맞대었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어느 순간부터 타인과 맞닿는다는 것은 불결하고 찝찝한 경험으로 감각되기 시작했다. 따라서 극장은 인적이 줄어들었고, 한 때 열렬한 신도를 자처했던 나조차도 확진자가 급속도로 늘어나고 있다는 경고 문자를 받은 날에는 극장 가기가 망설여지고는 했다. 늦은 밤, 일을 마치고 쥐구멍과 같은 지하철 입구를 지나 어둡고 습한 하수구 길을 걸어가다가, 아무리 익숙해졌다 해도 여전히 생경한 어떤 풍경을 마주했다. 하나같이 하얀 마스크를 입에 조여 맨 사람들. 그 모습이 순간 새의 부리처럼 보였다. 동아리의 동네 축구에서 볼을 주고받고, 극장에서 서로의 비말을 열정적으로 함께 뒤마셨던 그 사람들도 2호선의 지하철 어딘가에서, 날개가 부러진 새처럼 쭈그려들 있었을까.

 

이재빈
극작가, 제19회 대산대학문학상 희곡부문 수상자, 1990년생
희곡 「주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