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밭단상
②들볶지 말아라

  • 글밭단상
  • 2021년 여름호 (통권 80호)
②들볶지 말아라

마트에 갔더니 두릅을 팔았다. 그걸 보니 두릅전이 생각났고, 두릅전 하면 막걸리지 하고 주류 코너로 갔다. 나는 주로 하얀색 뚜껑의 장수막걸리를 마시는데, 그 앞에 1,750원이라는 가격표가 붙어 있었다. 지난달까지는 분명 1,500원이었는데. 언제 오른 걸까? 안주가 두릅전 하나면 너무 조촐하지 않을까 싶어 마트를 한 바퀴 돌아보는데 정육점 코너에서 아저씨가 돼지고기 앞다리살을 세일한다고 외쳤다. 고기 잔뜩 넣고 묵은지나 지져야지. 아저씨한테 400그램만 달라고 했더니 뭘 할 거냐 물었다. 김치를 넣고 지질 거라고 답했다. 아저씨가 나도 묵은지가 좀 있으면 좋겠네,라고 혼잣말을 하며 고기를 잘랐다. 집에 돌아와 김장김치 한 포기를 넣고 사 온 고기를 넣었다. 그리고 물을 적당히 넣고 가스레인지에 냄비를 안쳤다.

언젠가 텔레비전에서 예능 프로그램에서 어느 연예인이 이런 말을 한 적이 있었다. 어머니가 담가준 김치로 김치찌개를 끓이는데 어머니의 찌개 맛이 나지 않는다고. 나는 그 말을 들으면서 맞아, 맞아, 맞장구를 쳤다. 내 경우는 청국장이었다. 똑같은 청국장으로 끓이는데 엄마가 끓여준 그 맛이 나지 않았다. 엄마한테 물어보면 별다른 비법이 없는데도 그랬다. 암튼, 그 말을 했던 연예인이 그러던 어느 날 어머니의 김치찌개 맛의 비밀을 알게 되었다고 말했다. 그 다음부터 나는 귀를 쫑긋하고 이야기를 들었다. 가문의 비법이라도 말해줄 것 같아서. 하지만 비법이라는 게 별 게 없었다. 자신의 어머니가 요리하는 것을 가만히 지켜보니 김치찌개를 끓이는 동안 뚜껑을 한 번도 안 연다는 거였다. 찌개가 끓는 동안 어머니는 해야 할 부엌일이 많았다. 푹 끓는 동안 가만히 두기. 그게 비법이었어요. 연예인의 말을 듣고 나는 웃었다. 하하하. 맞네, 맞아, 하면서. 대단한 양념을 넣는 것보다 저게 더 진짜 비법이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요리를 할 때면 엄마는 들볶지 말라는 말을 자주 했다. 자꾸 뒤척이고, 자꾸 간을 보고, 자꾸 주무르고, 암튼 그러면 맛이 없어진다는 거였다. 그걸 엄마는 들볶는다고 말했다. 요리를 못하는 사람은 재료를 들볶는다고. 김치찌개의 비법은 뚜껑을 열지 않는 것이라는 말을 듣는데 엄마의 말이 생각났다. 들볶지 말라는 그 말. 무나물을 할 때도, 새우젓호박볶음을 할 때도 늘 그 말을 했다. 김치찜이 끓기 시작하자 약불로 줄였다. 앞으로 사십 분 동안 들볶지 말아야지, 하는 생각을 했다. 사십 분 후 뚜껑을 열고 들기름을 한 바퀴 둘렀다. 탈 것 같아서 물도 약간 추가하고 다시 뚜껑을 닫았다. 마지막으로 약불에 이십 분만 더. 그 사이 재빨리 두릅을 다듬었다. 그러다 가시에 손가락을 찔리고 말았다. 꽤 아파서 찔린 엄지손가락을 입에 넣고 한참 동안 빨았다. 두릅전에 김치찜에 막걸리를 먹다 보니 손가락 아픈 게 금방 잊혔다.

다음 날, 손가락이 욱신거려 소독약을 발랐다. 그다음 날, 여전히 손가락이 욱신거렸다. 휴대폰에서 손전등 어플을 켜고 손가락을 자세히 보았더니 안에 가시가 보였다. 가시를 빼내면서 두릅을 들볶지도 않았는데 가시에 찔리다니,라며 생각했다. 벚꽃 핀 게 아쉽게도 비가 왔다. 그래서 그저께 먹고 남은 두릅을 데쳐 막걸리를 먹자는 생각이 들었다. 마트에 가는 길에 바닥에 떨어진 벚꽃 잎들을 보았다. 벚꽃이 아까워 우산을 쓰고 아파트를 한 바퀴 돌았다. 신발 사이로 물이 스몄다. 양말이 젖고 있다는 게 느껴졌다. 그래도 한 바퀴 더 돌았다. 밤새 내린다면 꽃은 다 지고 말 테니까. 벚꽃이 필 때는 비도 오지 말고 바람도 가만히 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그건 불가능한 일. 그걸 알면서도 나는 하늘을 쳐다보며 간절히 중얼거려 보았다. 들볶지 말아주세요. 제발 가만히 두세요. 신발이 젖었기에 나는 일부러 물이 고인 쪽을 밟아가며 산책을 했다. 거기에 떨어진 꽃잎들도 같이 고여 있었으므로.

윤성희
소설가, 1973년생
장편소설 『구경꾼들』 『상냥한 사람』, 중편소설 『첫 문장』, 소설집 『레고로 만든 집』 『거기, 당신?』 『감기』 『웃는 동안』 『베개를 베다』 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