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글판
올여름의 할 일은 모르는 사람의 그늘을 읽는 일

  • 광화문글판
  • 2021년 여름호 (통권 80호)
올여름의 할 일은 모르는 사람의 그늘을 읽는 일

 

무더운 여름날 거리를 걷다 보면 나무 밑 그늘에서 햇빛을 피하고 싶을 때가 있습니다. 가을이나 겨울 추운 날에는 그늘을 피하게 되지만, 여름의 그늘은 참 고마운 존재입니다. 여름이 되면 우리는 그늘 안에서 휴식을 하며 지친 몸을 녹이기도 하고, 위안을 얻기도 합니다.
우리는 간혹 사람의 어두운 부분을 그늘이라고 표현하고는 합니다. 그늘은 어둡고 서늘한 곳이지만 맑고 더운 날일수록 찾아가게 되는 것처럼 내 마음이 맑고 따뜻할 때 다른 사람의 그늘에 관심을 가져보는 것은 어떨까요. 다른 사람의 그늘을 알아볼 수 있는 것은 내 안에도 그늘이 있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올여름에는 모르는 사람의, 그리고 내 안의 그늘을 찾아가 보고 위로를 건네 보면 좋겠습니다.

광화문글판 선정회의
2021년의 여름편 문안 선정을 위해 광화문글판 자문위원들의 추천과 인터넷 공모를 받아 총 37편의 문안이 접수되었다. 7명의 선정위원(성석제 소설가, 장재선 문화일보 선임기자, 김행숙 시인, 이슬아 작가, 윤상철 교보생명 고문, 곽효환(前 대산문화재단 상무, 現 한국문학번역원 원장), 박치수 교보생명 전무)이 이를 대상으로 토론과 투표를 진행하였고 그 결과, 나태주의 시 「멀리서 빈다」, 김경인의 시 「여름의 할 일」 중 일부를 최종 문안후보로 선정했다. 이어 교보생명 브랜드통신원의 선호도 조사와 내부 논의를 종합하여 「여름의 할 일」을 최종 문안으로 선정하였다.

여름의 할 일

• 김경인


올여름은 내내 꿈꾸는 일
잎 넓은 나무엔 벗어놓은 허물들
매미 하나 매미 둘 매미 셋
남겨진 생각처럼 매달린
가볍고 투명하고 한껏 어두운 것
네가 다 빠져나간 다음에야 비로소 생겨나는 마음

올여름의 할 일은
모르는 사람의 그늘을 읽는 일
느린 속도로 열리는 울음 한 송이
둥글고 오목한 돌의 표정을 한 천사가
뒹굴다 발에 채고
이제 빛을 거두어
땅 아래로 하나둘 걸어들어가니
그늘은 둘이 울기 좋은 곳
고통을 축복하기에 좋은 곳
(하략)

박재현
대산문화재단 사업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