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글쓰기의 스승
어두운 호수의 물고기

  • 내 글쓰기의 스승
  • 2021년 여름호 (통권 80호)
어두운 호수의 물고기

 

아버지와 어머니를 따라 아르헨티나로 이민을 떠나게 되었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 나는 일곱 살이었다. 미국이나 프랑스가 아니라서, 친구들이 아르헨티나라는 이름을 듣고도 별 흥미를 보이지 않아서, 나는 떠나기도 전에 마음이 식었다. 이별의 날 모든 친척이 공항에 나왔다. 어머니는 눈이 붓도록 울었다. 아버지조차도 몇 차례 울컥하는 얼굴로 뒤돌아섰다. 오직 나만 아무 생각 없이 그들 사이에 서 있었다.

비행기를 타는 건 처음이었는데 설렘도 잠시, 얼마 되지 않아 질려버렸다. 도무지 끝나지 않는 여정이었던 것이다. 비행기에서 내려 다른 비행기로 갈아타고, 한참을 더 가서 마침내 부에노스아이레스에 도착했다. 당시 우리가 묵은 곳은 가구와 살림 일체가 포함된 렌트 하우스였다. 신기하게도 아이 방까지도 맞춤으로 준비되어 있었다. 나는 곰 가족의 집에 들어온 소녀처럼 주변을 둘려보았다. 그 집의 모든 것은 크고 두꺼웠다. 나무 계단, 그릇, 스푼과 이불까지도. 집이 너무 춥고 낯설었지만 불평할 수 없었다. 아버지와 어머니가 나보다 더 떨고 있는 것을 느낄 수 있었기 때문이다. 

 
 
아르헨티나에서 어머니와 함께

 

뒤바뀐 시차 때문에 며칠 고생을 했지만 우리는 곧 적응했다. 한인들이 많이 다니는 교회에 등록했고, 바비큐 파티에 불려 다니면서 이민 생활을 익혔다. 아버지와 어머니는 끊임없이 누군가를 만나고, 새로운 일을 찾고, 그 땅을 이해해보려 했으나 잘되지 않았다. 무엇보다 그들은 노동에 익숙하지 않았다. 아르헨티나에서 보낸 2 년여의 시간은 한없이 계속되는 주말처럼 느슨하고 방탕했다. 목적 없는 여행이 계속되었다. 스테이크라면 이제 신물이 난다고 어머니가 말했다.

내가 여덟 살이 되었을 때 어머니는 그곳의 다른 소녀들처럼 나의 귀를 뚫고 금귀걸이를 달아주었다. 물방울 모양의 귀걸이를 한 나는 어느 날 도둑질을 하다가 어머니에게 들켜 (무엇을 어디서 훔쳤는지는 기억나지 않는다) 경찰서에 끌려갔다. 도둑은 경찰서로 보내야 한다고 어머니가 나를 앞장세워 집을 나선 것이다. 어린 딸에게 본때를 보여줘야 한다는 생각이었겠지만, 어머니는 짧은 스페인어도 할 줄 몰랐고 주변의 지리도 잘 몰랐다. 한참을 헤매다 겨우 경찰서에 도착했을 때는 어머니도 나도 기진맥진해 있었다. 어머니는 내게 다시는 도둑질을 하지 않겠다는 다짐을 받은 후 비틀거리며 공중전화를 찾았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을 몰랐던 것이다. 잠시 후 아버지가 찾아왔다. 우리 셋은 호수가 있는 근방의 공원으로 향했다. 점차 어두워지는 저녁이었다. 아버지는 내게 물고기 사료를 사주었다. 먹이를 던질 때마다 커다란 물고기가 튀어 올랐다. 내게는 아르헨티나의 모든 날 중 그날의 기억이 가장 생생하게 남아있다. 호수의 색깔과 냄새, 싸늘한 저녁의 온도, 젊은 부모의 텅 빈 얼굴까지도.

결국 가진 돈이 다 떨어진 뒤에야 우리는 한국으로 돌아왔다. 겨우 2년의 시간이 지났을 뿐인데, 아버지와 어머니는 쉽게 제자리를 되찾지 못했다. 귀중한 무언가를 아르헨티나에 남겨두고 온 것 같았다. 삶이라는 축복을 너무 헤프게 누린 탓이라고, 어머니는 훗날 내게 고백하듯 털어놓았다.

나는 귀에서 금귀걸이를 빼고 초등학교에 들어갔다. 나의 이력을 아는 선생님들은 곧잘 나를 앞으로 불러냈다. 남미의 이야기를 해보라고 했다. 나는 소와 말, 초원, 이구아수 폭포에 대한 이야기를 했다. 다들 그런 이야기를 기대했고, 즐거워했기 때문이다. 나 역시 그 이상을 말할 수 없었다. 그곳에서의 시간이 우리 가족에게 남긴 균열에 대해서 그때의 나는 이해할 수도 없었고 언어화할 수도 없었다. 때때로 우리를 덮쳤던 거의 완벽한 행복과 충족감에 대해서도. 다만 나는 그 시절을 통해 삶이 믿을 수 없이 변덕스럽다는 것을 배웠다.

내가 글쓰기를 시작한 것은 바로 그와 같은 이유일 것이다. 믿을 수 없는 삶을 붙잡기 위해, 떠났다 돌아올 곳을 만들기 위해, 망명자가 되지 않기 위해, 울다가 웃기 위해, 구원의 가능성을 열어두기 위해. 언젠가 운이 좋다면 나는 그 이야기를 쓸 수 있을 것이다. 지금의 나보다 젊었던 아버지와 어머니에 대해. 결국 우리는 그들을 통해서 삶을 배울 수밖에 없는 것이다.

정한아
소설가, 1982년생
장편소설 『친밀한 이방인』 『리틀 시카고』 『달의 바다』, 소설집 『애니』 『나를 위해 웃다』 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