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특집
「도둑맞은 가난」 줄거리

  • 기획특집
  • 2021년 여름호 (통권 80호)
「도둑맞은 가난」 줄거리

상훈이가 찌개 안의 멸치 눈깔이 징그럽다고 대가리는 좀 따고 넣으면 어떠냐고 했다. 파리똥만 한 눈깔에 신경을 쓰는 게 아니꼽기도 하거니와 불안하기도 했다. "어때, 여자하고 같이 사니까 좋지?" "응, 그렇지만 방이 너무 좁아서 불편하지 않아?" 나는 저하고 나하고 같이 살게 된 후 절약되는 돈 액수를 따져 들어갔다. 가장 중요한 건 일부러 빼먹었다. 서로 좋아한다는 것, 그 말에 부끄럼을 타기도 했지만, 그 말만은 상훈이가 하게 하고 싶었다. 상훈이는 공장에 다녔다. 부엌은 침침하고 환기도 안 되어 연탄가스와 음식 냄새로 숨이 막힐 것 같다. 그러나 나는 이 냄새를 부끄러워하거나 싫어하면 안 된다. 어머니, 아버지, 오빠가 이 냄새를 맡느니 차라리 죽는 게 낫다고 생각하고 죽어버렸기 때문이다. 그들은 겉으론 가난을 경멸하는 척했지만 실상은 두려워했다는 걸 나는 안다. 엄마의 유일한 친구였던 아줌마는 우리에게 전세방을 얻어주었지만 어머니는 보증금도 없이 월세만 사천 원인 산동네까지 가는 신세가 되었다. 나를 지켜보던 아줌마는 한 달에 만원씩 주며 일을 시켰다. 나는 이 동네 사람들 모두 열심히 돈 벌고 있다고 식구들을 부추겼지만 나한테 기대지 않겠다며 두고보라던 우리 식구는 연탄불을 피워놓고 죽어 있었다.

 공장에서 돌아오는 길에 고등어를 한 손 샀다. 상훈이는 아무것도 안 해놓고 누워 있었다. "무슨 일 있었어?" "만식이가 각혈을 하고 쓰러지니까 주인은 송장 치우게 될까 봐 겁이 나는지 집에 업어다 주라고 호통을 치잖아." "너희는 보고만 있었어? 어려울 땐 어려운 사람들끼리 도와야지" 나는 우리 공동의 예금통장을 주면서 돈이 걷히는 대로 빨리 갖다 주라고 당부를 했다. 그러나 밤에 집에 돌아온 나는 놀랄 수밖에 없었다. 예금통장에 잔고가 한 푼도 남아 있지 않았다. "미안하게 됐어. 다 말도 못하게 지독한 가난뱅이들뿐인걸." "뭐라구. 그럼 우린 뭐니? 우린 부자니 응?" 그는 3만여 원 중, 반이 넘는 돈이 자기 돈인데도 조금도 아까워하지 않고 있었다. 

상훈이를 만난 것은 풀빵을 굽는 구루마 앞에서였다. 풀빵을 먹고 있는 나에게, 어디서 차나 한잔 사줄까하고 수작을 붙였다. 나는 이 얼간이가 마음에 들었고, 혼자 산다기에 나처럼 고아려니 했고, 같이 살자고 먼저 꼬드겼다. 우리는 같이 살았지만, 나는 가끔 그에게 신경질을 부렸다. 그러던 어느 날 그는 집에 들어오지 않았다. 나는 그가 꼭 돌아와 있을 것만 같은 확신으로 하루를 보냈다. 어느 날, 상훈이가 돌아와 있었다. "웬일이야?" "응, 돈 갚으려고. 그때 3만 얼마더라?" 문득 그의 옷깃에서 빛나는 대학 배지와 두꺼운 책이 눈에 띄었다. "너 미쳤니? 기어코 도둑질을 했구나." 그러나 상훈은 "내가 하는 소리를 똑똑히 들어. 나는 부잣집 도련님이고 대학생이야. 아버지가 좀 별난 분이실 뿐이야. 방학 동안 고생 실컷 하고, 돈 귀한 줄도 알고 오라고 나를 내쫓으셨던 거야. 알아듣겠어?"라고 말했다. 어떻게 그걸 알아들을 수 있단 말인가. 부자들이 제 돈 갖고 무슨 짓을 하든 아랑곳할 바 아니지만 가난을 희롱하는 것만은 용서할 수 없지 않은가. 내 가난은 나에게 있어서 소명(召命)이다. "아버지께 네 얘기를 했어. 연탄을 아끼자고 체온을 나누기 위한 남자를 끌어들이는 여자애가 있더라고 말이야. 물론 그 남자가 나였단 소리는 빼고. 심부름이라도 시키다가 야학이라도 보내자고 하시잖아. 이 기회에 끔찍한 생활을 청산해.” 나는 돈을 받아 그의 얼굴에 내동댕이치고 그를 내쫓았다. 나는 얼마나 떳떳하고 용감하게 내 가난을 지켰나를 뽐내며 방으로 돌아왔다. 그런데 내 방은 좀 전까지의 내 방이 아니었다. 내 가난을 구성했던 살림살이들이 무의미하고 더러운 잡동사니가 되어 내동댕이쳐져 있었다. 내 방에는 이미 가난조차 없었다. 나는 상훈이가 가난을 훔쳐갔다는 것을 비로소 깨달았다. 나는 우리가 부자한테 모든 것을 빼앗겼을 때도 느껴보지 못한 깜깜한 절망을 느꼈다. 나는 내 방 속에, 뼈가 저린 추위에 온몸을 내맡겼다.

편집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