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산초대석
서로 화합하고 모두 행복해 하는 이념영화를 만들고 싶다

- 영화감독 윤제균과의 대화

  • 대산초대석
  • 2021년 여름호 (통권 80호)
서로 화합하고 모두 행복해 하는 이념영화를 만들고 싶다

- 영화감독 윤제균과의 대화

 

윤제균
영화감독, 한국영화감독조합 대표, 1969년생,
영화 <국제시장> <해운대> <색즉시공> <낭만자객> 등

 



코로나19 이후의 한국영화는 어떻게 될까. 제작과 투자, 유통은 물론 콘텐츠까지 새로운 변화를 겪고 있다. 극장 관객이 70%나 줄어들고 그에 따라 제작과 투자도 어느 때보다 위축되는 어려움과 고통 속에서도 한편으로는 지난해 <기생충>이 아카데미 4관왕(작품상, 감독상, 각본상, 국제장편영화상)에 오른 데 이어 올해에는 <미나리>로 배우 윤여정 씨가 여우조연상을 수상하면서 새로운 역사를 쓰고 있다. 그 빛과 그림자를 안고 한국영화가 어떤 미래로 나아갈지, 그 모습은 어떨지, <국제시장>의 윤제균 감독과 이야기를 나눠 보았다.

이대현 코로나19로 한국영화도 적잖은 변화를 겪고 있지요.

윤제균 무엇보다 가장 크게 바뀐 것은 영화 플랫폼의 부상이라고 생각합니다. 극장 대신 OTT(Over The Top, 인터넷을 통해 방송 프로그램, 영화 등 미디어 콘텐츠를 제공하는 서비스)로 영화를 볼 수밖에 없는 상황이 계속될 수밖에 없고, 그것이 한국영화의 모든 분야에 큰 변화를 일으키고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이대현 코로나19 이전부터도 젊은 세대는 극장 대신 넷플릭스 같은 OTT로 영화를 많이 봤지요. 물론 코로나19가 그것을 확대시킨 것만은 분명합니다. 이제 곧 OTT 공룡인 디즈니플러스까지 한국에 들어오면 극장에 관객은 더욱 적어지겠지만 코로나19가 한국 영화시장에 가져온 변화가 그것만은 아닐 텐데요.

윤제균 물론입니다. 다방면에 영향을 미치고 있지요. 자연적인 흐름이든, 어쩔 수 없는 선택이든 OTT에 의한 유통방식이 시장과 소비의 변화를 넘어 제작과 장르, 포맷에까지 변화를 가져오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단순히 극장용 2시간짜리가 아니라 숏(short)폼의 영화들, 즉 짧게는 30분짜리 20개, 1시간짜리 10개의 영화도 가능해졌다는 것입니다.

이대현 지금까지 전형적이랄까, 고전적이랄까 하는 소위 극장상영용 영화는 극장의 역할 축소와 함께 줄어들 것이란 얘기이기도 한데요. 찬반이 엇갈립니다. 미국 배우인 톰 행크스는 “앞으로 큰 영화(블록버스터)만 극장에 걸리고 작은 영화는 OTT로 갈 것이다”라고 했지만, 얼마 전 <태극기 휘날리며> 재상영을 하면서 강제규 감독은 “그래도 극장은 다시 부활할 것이다. 영화는 유통도 중요하지만 콘텐츠이기 때문이다”라고 했어요. 봉준호 감독도 “과거 <아바타>가 나왔을 때 앞으로 모든 영화가 3D로 갈 것이다 했지만 아니지 않느냐”면서 모든 영화가 OTT로 가지 않는다고 했어요.

윤제균 강제규, 봉준호 감독님의 의견에 동의합니다. 같은 로맨틱 코미디라 하더라도 드라마 형식의 10부작이랑 영화는 다릅니다. 수많은 로맨틱 코미디 10부작을 OTT에서 오랜 시간을 들여 볼 수도 있지만, 그 10부작을 감독이 공들여 2시간짜리 영화로 만들면 극장에 올 수밖에 없지요. 어느 감독 토크 자리에서 제가 극장에서 영화를 보는 것과 OTT로 보는 것의 차이를 중국요리 집에서 자장면 먹는 것과 집에서 짜파게티를 끓여먹는 것으로 비유했습니다. 처음 짜파게티가 나왔을 때 중국집 사람들이 우리 다 망할 것이라고 시위까지 했던 기억이 납니다. 그런데 봉준호 감독의 <아바타>와 3D영화 얘기처럼 그렇게 되지 않았습니다. 사람은 싫증을 잘 내는 존재인데다, 비슷하다고 같게 생각하지는 않기 때문입니다. 코로나19가 지나가고 일상으로 돌아오면 극장에 관객이 몰려들 것이라고 확신합니다. 극장과 플랫폼은 제로섬이 아니라, 더하기가 될 것입니다.

이대현 코로나19 이후에도 극장은 여전히 소중한 영화상영공간으로 남을 것이라는 낙관적 전망을 하는군요.

윤제균 문제는 그날이 오기 전에 많은 극장들이 문을 닫을까 걱정입니다. 지금 실제로 그런 일이 일어나고 있으니까요. 아무리 대기업이 운영하는 멀티플렉스라고 하지만 한 해 적자가 10년 동안 번 것을 다 날려버릴 정도로 쌓인다면 버틸 수 없지요. 정부에서도 관람료 지원 등의 노력은 하고 있지만, 역부족이지요. 코로나19가 오래 지속되면 정말 영화를 만들어도 상영할 공간이 없는 상황이 벌어질지 모릅니다. 그렇다고 모든 영화를 사이버 공간 상영에 맞춰 만들 수는 없는 것 아닙니까. 자칫 큰 영화는 아예 만들어지지 않는 현실이 닥칠지 모릅니다.

 

이대현 평론가(왼쪽)와 윤제균 감독(오른쪽)

 

이대현 극장이라는 공간은 단순히 영화를 더 웅장하고 크게 보는 의미를 넘어선다고 생각합니다. 직접 사람들이 대화하고 토론하지는 않지만, ‘광장’과 비슷한 역할을 하지요. 같은 영화를 한 장소에서 함께 본다는 것은 영화와 끝없이 대화하는 동시에 무언으로 다른 관객과 소통을 하면서 사회적 공유와 참여의식을 갖게 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윤제균 영화가 시작되기 직전 극장의 조명이 꺼지는 순간을 무슨 ‘의식’처럼 생각한다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그런 점에서라도 영화도, 극장도 결코 사라지지 않을 것으로 생각합니다. OTT 역시 코로나19란 불가피한 상황을 떠나 새로운 세대들에게는 개인의 사유로서 영화감상에 필요한 공간으로 자리 잡고 커질 것입니다.

이대현 저 역시 OTT가 한국영화의 발전에 부정적인 작용만 하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단순히 영화 소비와 투자의 확대를 넘어 한국영화의 글로벌화에 기여한 측면만 보더라도.

윤제균 긍정적 측면이 훨씬 크다고 봅니다. 넷플릭스가 들어오고 플랫폼이 다양화되면서 한국영화 역시 단순히 국내시장이 아닌 글로벌 시장으로 나아가는 것이 자연스러워졌습니다. 양상도 달라졌습니다. 기존에는 영어 대사에 외국 배우를 써야만 가능했지만 지금은 한국 배우의 한국영화로도 얼마든지 가능해졌습니다. 비록 OTT에 국한된 것이긴 하지만 글로벌 영화시장에서 1위도 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승리호>가 그 사례입니다. 기술적으로도, 장르에서도, 시장에서도 한계는 없어졌다는 것이지요.

이대현 이런 놀랄 만한 변화가 단순히 OTT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말할 수는 없지요. 그보다 더 큰 이유는 세계가 놀라고 공감하는 콘텐츠의 보편성, 완성도를 선보인 <기생충>이 전환점을 가져오지 않았을까요. 글로벌한 공통된 이슈인 신자유주의가 가져온 빈부격차 문제를 날카롭게 풍자함으로써 모든 사람들이 함께 고민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했다는 점에서 <기생충>이 한국영화의 현재성과 세계화에 큰 발판을 놓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윤제균 물론입니다. 자본주의의 모순과 부작용에 날카롭고 풍자적으로 질문을 던진 <기생충>은 주제로도, 소재로도 탁월한 선택이었습니다. 이 작품으로 한국영화의 존재와 수준을 모르는 사람이 없어졌고, 또한 한국 배우와 감독, 한국어 대사까지 낯설지 않게 만들었지요. <미나리>의 배우 윤여정 씨가 올해 한국어 연기로 아카데미에서 여우조연상을 받은 것도 그 연장선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한국영화 글로벌화의 고정관념까지 바뀌게 만들었다고 봅니다.

이대현 윤여정 씨에 대해 이야기를 조금 더 해보죠. 그의 연기가 세계적인 주목을 받은 이유는 무엇일까요. 우리에게는 정말 자연스러운 할머니 연기이지만, 세계인들에게는 그것이 낯설고 어색하게 보일 수도 있는데요.

윤제균 <미나리>에서 보여준 윤여정 씨의 코믹 연기와 정극 연기 사이의 변화와 폭이 서양인들의 예상을 뛰어넘은 것이지요. 처음에는 그냥 코믹 조연인가 생각했는데 뇌졸중 이후 보여준 정극 연기의 깊이는 차원을 달리했습니다. 마지막에 가족들이 자는 모습을 지켜보는, 미안함과 걱정과 절망과 자신에 대한 원망이 뒤섞인 그 표정은 저에게도 충격적이었습니다. 어떻게 저런 표정을 지을 수 있을까. 그 내공이 세계인들에게 이심전심으로 전해지지 않았을까. 어찌 보면 이런 결과들도 OTT가 한국영화와 배우들을 낯익게 만들어서 가능했다고 할 수 있지요. 뒤집어보면 K-콘텐츠 글로벌화의 홍보마케팅에 1등 공신인 셈이지요. 이를 돈으로 환산하면 상상도 못할 액수이지요.

이대현 봉준호 감독의 <옥자>가 넷플릭스로 개봉할 때 저도 이 영화가 내딛는 새로운 길을 한국영화의 세계화를 위해서 거부만 하지 말자고 신문에 칼럼을 쓴 적이 있습니다만, 걱정은 지나친 글로벌화와 OTT에 매달려 한국영화의 콘텐츠까지 정체성을 잃어버리는 것은 아닐까 하는 것입니다.

윤제균 패러다임이 바뀐다고 기존과 전혀 다른 영화가 나오지는 않을 것입니다. 그보다는 자신감으로 새로운 감각과 소재, 장르에까지 도전할 것으로 봅니다. 이미 그렇게 하고 있고, 성공도 거두고 있습니다. 할리우드의 판타지일 뿐이라고 생각한 좀비 영화를 연상호 감독이 <부산행>과 <반도>로 한국에 가지고 왔습니다. 처음에는 누구나 ‘한국에서 만들어서 되겠어’라며 별 기대를 안 했죠. 그런데 만들어 놓고 보니 완성도가 할리우드 못지않고, 드라마는 오히려 더 익숙하고 좋았습니다. 우리도 할 수 있어를 넘어 충분히 우리 것이 될 수 있다는 자신감이 생겼습니다. 마치 1999년 <쉬리>가 그전까지 엄두를 못 내던 제작비를 과감히 투입해 첩보영화에 도전해 성공을 거두듯이. 한국영화가 두 가지 길을 만들었지요. 하나는 글로벌 시장을 향한 새로운 도전으로 할리우드 엔터테인먼트를 감정이입이 100%인 우리 영화로 만드는 것이고, 또 하나는 우리의 역사와 현실과 삶을 바탕으로 국민 모두가 느끼고 싶은 이야기를 담는 것이라고 할 수 있지요.

 

 

이대현 후자는 윤 감독의 <국제시장> 같은 작품을 말하는 것인가요.

윤제균 그렇다고 할 수 있습니다. 모두 같이 웃어주고 울어주면서 ‘괜찮아’하고 큰 위로를 주는 영화, 갈등보다는 화합을 이야기하는 영화.

이대현 극장관객 1천426만 명이라는 엄청난 흥행으로 보면 <국제시장>이 그런 역할을 했지요. 그러나 일부 언론과 정치권에서는 그 영화와 윤 감독을 보고 ‘보수’를 미화했다고 비판하기도 했지요.

윤제균 솔직히 상상도 못했습니다. 관객 800만 명쯤 됐을 때, JTBC 뉴스룸에 출연했는데, 앵커가 저에게서 ‘보수’라는 말이 나오게 하려고 집요하게 질문을 계속해 무척 곤혹스러웠습니다. 이 영화에서 중요한 것은 보수적 시각이냐, 진보적 시각이냐가 아닌데. 정말 고생하신 부모님께 감사하다는 말을 전하기 위해 만들었다는 저의 진심을 믿지 않으려 했죠. 우리나라가 정말 이념에 민감하다는 것을 실감했지요.

이대현 언론의 정파성이 문화영역에까지 스며든 것은 사실 어제오늘의 일은 아닙니다. 그러다 보니 일부 영화인과 영화들이 이를 자신의 권력과 흥행에 이용하는 경우도 있고요. 이런 풍토 때문에 <국제시장>도 그런 시선을 받을 수 있었지요. 하필이면 박근혜 정부에서 이 영화를 만들었느냐, 왜 박정희 시대를 다루면서 독재와 반민주는 외면했느냐, 하는 식의 비판이지요.

윤제균 영화가 시대의 모든 것을 담을 수는 없습니다. 부분을 선택할 수밖에 없지요. 정치적인 것들은 모두 빼버렸습니다. 못 한 것이 아니라 안 한 것입니다. 심지어 오해를 받을까봐 독일 탄광을 방문하는 박정희의 모습까지도. <국제시장>은 그것을 보여주려는 영화가 아니었으니까. 퇴직금을 주식으로 날려버린 아버지가 돌아가시면서 장손인 저한테 마지막으로 “미안하다”라고 했습니다. 제가 평생 아버지가 열심히 사신 것 봤고 아는데. 그래서 아버지와의 마지막 대화를 생각하며 구상한 영화가 <국제시장>입니다. 2009년 <해운대>를 만들 때 이미 시나리오 작업을 진행하고 있었고, 투자도 2012년 이전에 결정되었죠. 같은 이유라면 은 왜 문재인 정부에서 만들어 개봉했느냐는 시비도 가능하죠. 정치적 계산까지 하는 영화도 있겠지만, 영화는 무엇보다 그 시대의 감성을 담으려 합니다. <국제시장>이나 이 그것을 잘 읽고 진정성 있게 담았기 때문에 흥행에 성공했다고 생각합니다.

이대현 영화가 정치 상황을 지나치게 이용하려는 것도 문제지만, 영화를 지나치게 정치적으로 해석하려는 것도 바람직하지 않지요. 그것이 얼마나 심각한지는 2019년 박사논문으로 「한국신문 영화보도담론의 정파성에 관한 연구」를 쓰면서 다시 한번 실감했습니다. 보수, 진보 언론이 정말 ‘데칼코마니’더군요. 좋은 영화는 이념에 있지 않고 그것을 뛰어넘은 인간과 사회의 보편적 가치를 담은 감동에 있다는 사실은 무시하지요.

윤제균 저도 최근에 보고 가장 많이 울었던 영화가 입니다. 우파는 애국자 아닙니까. 좌파는 애국자 아닙니까. 다 애국자잖아요. 가장 소중한 목숨까지 바쳐서 나라를 구하고 발전시키려 하잖아요. 문제는 그 이념 때문에 역사 이래로 얻은 게 많기보다는 잃은 게 많다는 것입니다. 경쟁구도가 돼서 얻은 게 많다면 당연히 건강하게 발전시켜야 하지만 잃은 게 많다면 자꾸 갈등만 일으켜서는 안 되죠. 정치에서는 어느 정도는 어쩔 수 없다 하더라도 영화에까지 그 굴레를 씌우지 말아야지요. 영화는 그보다 소중한 것을 담고 있으니까.

이대현 지금 우리나라뿐 아니라, 세계적으로 이념과 집단 갈등이 더 심각해지고 있는 것 같아요. 미국도 그렇고. 그러다 보니 영화까지 그 패러다임에 빠지기 쉽죠.

윤제균 작품의 완성도나 진정성 없이 정치적 계산만으로 나온 영화들은 대부분 실패를 합니다. 영화는 흥행이 안 되면 저절로 없어집니다. 정치성 짙은 영화도 그냥 가만히 두면 됩니다. 물론 저도 언젠가는 이념 문제를 다룬 영화도 한번 만들 생각입니다. 어느 쪽이 좋다 나쁘다가 아닌, 갈등을 부추기는 영화가 아닌, 서로 화합해 우리 모두 행복하고 공감하는 모습을 담아보고 싶습니다. 이념을 떠나 서로를 따뜻하게 아우르는 영화가 성공하면 사람들도 조금씩 화합으로 나아가겠죠. 그것이 영화의 작은 역할이고 힘이라고 생각합니다.

이대현 영화가 의도적으로 단합이나 화합을 강조하는 영화는 오히려 비현실적이라는 비판을 받고 공감도 줄 수 없을 텐데요.

윤제균 개인적 소망이지만 쉽지 않겠지요. 그렇다고 중국영화처럼 국가를 찬양하는 영화를 만든다는 것은 아닙니다. 가능하지도 않고. 오랫동안 고민해 봐야죠.

이대현 이제는 누구나 코로나19가 지나가도 예전으로 회귀하지 못할 것이란 사실에 어느 정도 동의합니다. 신자유주의와 글로벌화가 얼마나 허약한지를 실감하면서 국가주의와 민족주의가 부상하고, 사회주의를 외치는 일까지 생기고 있습니다. 동시에 인공지능 시대가 더욱 앞당겨지고 있는 것도 피할 수 없게 되었습니다. 그런데도 여전히 지금의 영화세계는 유효하다고 믿는지. 새로운 상상과 미래로 나아가야 하는 것은 아닐까요.

윤제균 지나치게 트렌드에 민감하기보다는 그것이 과거가 됐든 현재가 됐든 미래의 상상이든 영화로 하고 싶은 이야기, 자신이 잘 만들 수 있는 이야기를 선택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봅니다. 저에게 그것은 휴먼코미디입니다. 시대가 바뀌고, 상황이 달라져도 영화에서 중요한 건 진정성이니까요. 그 진정성을 선택했을 때 오는 도전이라면 얼마든지 받아들일 각오입니다. 특히 젊은이들은 우리보다 똑똑하고 공감 능력도 뛰어납니다. ‘얘들은 우리를 이해 못 할 거야. 그러니 우리가 받아줘야 돼’라는 것은 어른들의 착각이자 고정관념일 뿐입니다. 그들과 <국제시장> 얘기를 해보면 ‘나도 힘들다’는 반항심이 앞설 줄 알았는데 부모, 조부모 세대의 노력에 대부분 공감해요. 시대가 어떻게 변하든 인간으로서 변하지 않는 진심이지요.

이대현 오랜 시간 감사합니다. 마지막으로 근황이 궁금합니다.

윤제균 뮤지컬 영화 <영웅> 마무리 작업을 하고 있습니다. 안중근 의사의 이야기는 극영화와 드라마로 많이 나왔지만 뮤지컬 영화, 그것도 100% 라이브 싱으로는 한국영화 사상 처음입니다. 2011년 원작인 뮤지컬을 보고 감동해서 많이 울었어요. 그때 언젠가는 영화로 만들어야지 하고 생각했던 작품입니다.

이대현 새로운 도전이네요. 그런 만큼 또 다른 느낌으로 사람들을 감동시킬 영화가 되리라 기대합니다.

이대현
언론인, 영화평론가, 1959년생
저서 『영화로 소통하기, 영화처럼 글쓰기』 『소설 속 영화, 영화 속 소설』 『내가 문화다』 『유아 낫 언론』 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