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작순례
가장 멀고 가장 막막한 곳에 선 인간

패트릭 화이트 『전차를 모는 기수들』

  • 명작순례
  • 2021년 가을호 (통권 81호)
가장 멀고 가장 막막한 곳에 선 인간

패트릭 화이트 『전차를 모는 기수들』

 

“오스트레일리아가 될 수도 있겠지요.” 전에는 한 번도 머릿속에 떠올린 적이 없었으나, 이제 그 땅이 현실로서 그에게 다가왔다. 아마도 가장 멀고 가장 막막한 곳이기 때문이었으리라.

가스실 문턱에서 기적처럼 생환한 유대인 모르데카이 히멜파르프는, 어디로도 갈 수 없는 벼랑 끝 같은 상황에서 오스트레일리아를 떠올린다. 누군가에게는 그런 곳이 필요하다. 아무것도 되돌아볼 수 없을 만큼 멀고, 어디로도 도망칠 수 없을 만큼 막막한 곳. 일찍이 프톨레마이오스가 미지의 남쪽 땅을 상상한 이래 17세기 이전까지 유럽인들은 오스트레일리아라는 이 거대한 대륙의 존재를 제대로 알지 못했다. 18세기 말에야 영국에서 이곳을 새로운 유배지로 삼아 이주 정책을 펼쳤고, 이후 금광 개발을 노린 인구가 전 세계로부터 흘러들면서 유색 인종을 배척하는 백호주의가 20세기 중후반까지 위세를 떨치기도 했다. 그리고 이 모든 치열한 이민사가 시작되기 이전에, 적어도 2만 5천 년 이상의 역사와 고유문화를 지켜 온 애버리지니들이 토착 생물들과 함께 이 땅에서 살아가고 있었다.

오스트레일리아에 정착한 유럽인들은 애초에 애버리지니들을 인간으로 인식하지 않았다. 수십만 명에 이르던 애버리지니 인구는 유럽인들이 매개한 질병과 직접적인 학살 때문에 한때는 3만 명 남짓밖에 남지 않았으며, 20세기에는 많은 아이들이 백인 가정으로 강제 입양을 당하기도 했다. 차별이 애버리지니들만을 향한 것은 아니다. 국가 차원의 백호주의는 1970년대 들어서야 기능을 상실했고, 그 이전까지 유대인을 위시한 이방인들은 공공연한 차별에 시달려야 했다. 이들을 차별한 백인들이라고 해서 완벽하게 우월한 지위를 누린 것은 아니다. 애초에 유럽에서는 오스트레일리아를 변방의 유형지로 이해했기 때문이다. 별다른 혈통이나 재산의 뒷받침 없이 이민을 시도한 백인들이라면 상황은 더욱 암담해서, 이들은 같은 백인에게조차 멸시당하며 빈곤한 삶을 꾸려나가야 했다.

가장 멀고 가장 막막한 이 땅에서도 인간은 살아간다. 이러한 오스트레일리아인의 정체성을 문장으로, 또한 인생으로 대변한 작가가 바로 패트릭 화이트다. 런던에서 태어난 그는 부모의 고향인 오스트레일리아에서 유년기를 보내고, 다시 영국으로 돌아가 교육을 받았다. 한때는 유럽과 미국에서 작가로 성장하기를 원하기도 했다. 이차대전이 발발하자 영국 군인으로 참전해 각지에서 복무했으며, 알렉산드리아에서 매놀리라스 카리스를 만난 후로는 그와 평생의 동반자가 되었다. 그리고 이 모든 복잡한 배경에도 불구하고, 유년기를 보냈던 오스트레일리아를 마침내 삶의 터전으로 삼았다. 그곳에서 그는 아무것도 되돌아볼 수 없고 어디로도 도망칠 수 없는 이들의 이야기를 그려냈다. 그리고 문학 세계 외부에서도 이들을 위한 싸움을 멈추지 않았다. 당시로서는 인정하기조차 쉽지 않았을 동성애자로서의 정체성을 일찍이 받아들이고서 부당한 편견에 맞섰다. 베트남 전쟁과 무분별한 개발, 이후에는 우라늄 개발과 핵 확산에 대해서도 날선 비판을 가했다. 애버리지니의 인권 문제에 평생 관심을 보였으며 문화적인 후원을 통해 그들의 예술을 소개하려 했다. 이렇듯 화이트는 존재 자체로 오스트레일리아의 모든 소수자, 더 나아가 세계의 모든 소수자를 대변했다.

사람과 사람 사이의 끈끈한 연대는 사회를 움직이는 동력이다. 그러나 무엇이 사람인지, 어디까지가 사람인지는 생각보다 명확지 않다. 『전차를 모는 기수들』에는 이렇듯 경계에 놓인 인물들이 등장한다. 물려받은 재산이 제아무리 값지다 해도, 제대로 단어조차 조합하지 못하는 광인 메리는 사람이 아니다. 독일인으로서 일차대전에 참전하고 학문적 성취를 이루었다 해도, 유대인으로서의 삶을 고수하는 모르데카이는 사람이 아니다. 백인 가정에 입양되어 라틴어 동사 활용에 대해 교육받았다 한들, 애버리지니의 피가 섞인 앨프는 사람이 아니다. 노동하며 사랑할 줄 아는 아이들을 키워냈다 한들, 가장 낮은 이들과 거리낌 없이 어울리는 루스는 사람이 아니다. 이들은 존재 자체만으로도 사람이라는 범주를 위태롭게 하기에 누구와도 연대하지 못하고 외롭게 배척당한다.

그럼에도 이들이 감당하는 소외는, 패트릭 화이트에게 오스트레일리아가 그러했듯 스스로의 선택이다. 기실 사람이 아님에도 사람의 가면을 쓰고, 사람 아닌 다른 존재를 십자가에 매달거나 적어도 그 모습을 못 본 척할 수는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사람 아닌 다른 존재의 눈빛에서 일순간이라도 자기와 같은 무언가를 발견하는 순간, 그는 더 이상 사람으로서 살아나갈 수 없다. 그렇듯 사람으로 살아간다는 것은 아슬아슬한 모험이다. 민족과 종교와 성별과 이념 등 숱한 조건이 한 인간을 끊임없이 사람이라는 범주 밖으로 밀어내려 하는 오늘날에도 마찬가지다. 스스로 사람임을 증명하려는 절실한 발버둥질. 작품 속에서 그것은 아이러니하게도 지옥의 풍경이다. ‘그들은 상냥하게 상대를 어둠의 근원으로 데려다주었다. 미궁을 헤쳐 나가기 위해서는 서로가 절실히 필요했다. 적절한 안내가 없다면 지옥의 영혼도 길을 잃을지 모를 일이었다.’

반면에 밀려난 존재들은 그들끼리 새로운 범주를 구분하려 들지 않는다. 각기 다른 이유로 배척당한다는 사실 외에 어떠한 공통분모도 형성하지 못하며, 다만 동물처럼 서로의 상처를 핥을 뿐이다. 그들의 본능은 사랑이고 사랑은 곧 모든 종교 위의 종교다. 어떤 이에게는 이 모든 이야기가 몹시 부조리한 신성모독에 불과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사람 아닌 다른 모든 것의 눈빛 앞에 멈칫한 적이 있는 이들에게, 또한 스스로 그런 눈빛을 한 이들에게, 『전차를 모는 기수들』은 지극히 묵직한 울림이 될 수 있으리라 믿는다. 가장 멀고 가장 막막한 곳은 오스트레일리아 대륙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누군가의 마음과 누군가의 눈빛에도 그곳은 있다. 우리는 때로 무엇 하나 되돌아볼 수 없으며 어디로도 도망칠 수 없는 상황에 처하거나 감히 그러길 원한다. 그럼에도 사랑할 수 있다.

※ 『전차를 모는 기수들』(전 2권)은 재단의 외국문학 번역지원을 받아 필자의 번역으로 문학과지성사에서 2021년에 발간되었다.

송기철
출판기획가, 1982년생
역서 『블론드』 『J. 하버쿡 젭슨의 진술』 『위대한 탐정소설』 『푸른 작별』 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