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작후기
누구도 피할 수 없는 인생의 맛

소설집 『보통 맛』

  • 창작후기
  • 2021년 가을호 (통권 81호)
누구도 피할 수 없는 인생의 맛

소설집 『보통 맛』

 

오랫동안 나에게 글은 비밀병기 같은 거였다. 입사 석 달 만에 본격적인 소설 쓰기에 돌입해 창작 아카데미를 다니고 소설 작법서를 읽고 스터디를 하며 글 쓰는 법을 익혔지만 일터에서는 철저하게 조직의 일원으로 생활했다. 그랬으니, 대체 주말에 뭘 하느냐고 묻는 동료들에게 글을 쓴다고 고백하면 그들은 대수롭지 않게 이렇게 말했다.

“아, 그래. 취미로 책 읽고 글 쓰는 것 좋지, 블로그 그런 거 쓰는 거야?”

이제야 그 친구들에게 고백하고 싶은 게 있는데, 글에 대한 내 마음은 언제나 진심이었다. 다만, 그들이 소설에 정성인 내 모습을 볼 수 없었을 뿐이다.

『보통 맛』 출간 후에 리뷰에서 이런 문구를 종종 읽었다.

잘 해보려고 애쓰는 보통 사람들의 이야기.

나는 그게 본격적으로 이중생활을 시작한 지 십 년, 등단한 지 4년차인 내게 해주는 말 같았다. 좋아하는 것에만 매진할 수 없었지만 해야 하는 것에서도 못한다는 말을 듣고 싶지는 않았다. 글과 일 사이에서 균형을 겨우 잡아가며 운 좋게 등단을 하고 책을 냈다.

십 년 동안 매일이 그랬다. 회사에서 연구 보고서를 쓰고 집에 돌아와서는 책상 앞에 앉아 소설을 썼다. 그게 그렇게 재미있었다. 직장 생활에서 몸과 마음을 고갈시키고 돌아오면 소설이 나를 채워놓았다. 소설에 대한 것이라면 다 할 수 있었다. 소설이 잘 써져서 날을 새는 날에는 행복에 겨워 잠을 잤다. 소설이 안 풀리는 날에는 어두운 얼굴로 회사에 가서 입을 닫고 일만 했다.

그랬으니, 첫 책의 리뷰를 읽으며 위로를 받은 사람은 다름 아닌 그 책을 썼던 나였다. 애쓰고 있다는 자각과 위로. 독자들이 내게 격려를 해주는 것 같았다.

 

한편 나는 어릴 적부터 문예반을 하며 각종 백일장에 나갔고, 학교에서 어떤 것을 전공하든 문학 수업을 병행해왔으니, 창작의 세계에 입문하면 해보고 싶은 것들이 이미 목록 안에 빽빽했다. 그중 우선순위에 있었던 것이 대산창작기금이었다. 통보를 받았던 날의 기분을 잊을 수 없다. 내게는 기금 수혜 소식이 ‘더 써도 좋다’라는 응원의 말로 들렸다.

그동안 쓴 글들이, 걸어온 길이, 허튼 것은 아니었다고 말해주는 것 같았다.

『보통 맛』에는 보통 사람들의 삶이 등장한다. 보통만 해도 좋을 것 같은데, 인생은 늘 맵고 짜다. 실패와 성공 사이에서, 상실과 기쁨의 파고 어딘가에서, 좀처럼 보통이 아닌 인생에서, 나는 우리가 사는 모습을 적나라하게 보여주고 싶었다. 진짜 있을 법한 일, 내게도 생길 법한 이야기, 일상에 닿은 서사가 스릴러나 공포 영화보다 은밀하고 무섭기도 하다는 걸 말해주고 싶었다. 이 책에 나오는 소설들은 그런 마음으로 만들었다. 그랬으니 ‘재밌는데 괴롭다’라는 리뷰가 나올 수밖에 없다고, 나는 지금 반추한다.

우리 모두 아는 것처럼 너무 큰 기쁨 뒤에는 반드시 슬픔이 따르고, 고통 뒤에는 다시 희망이 따른다. 나는 그것이 인생이라고, 사람들은 그래서 소설을 읽는다고 생각한다. 이런 삶도 있고 이런 기쁨도 있고 이런 슬픔도 있다는 사실을 감각하기 위해 이야기와 마주한다고 생각한다. 나는 계속해서 그렇게, 사람들이 느끼면서도 느끼지 못했던 것들을 관찰하고 사람들이 보면서도 외면했던 것들을 찾아다니며, 낯설면서 피부에 닿을 글을 쓰고 싶다. 서서히, 단단한 빛을 품고 세상 속으로 스며들어가고 싶다.

※ 필자의 소설집 『보통 맛』은 재단의 대산창작기금을 받아 2021년 민음사에서 발간되었다.

최유안
소설가, 1984년생
소설집 『보통 맛』 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