번역서리뷰
원작의 간결하고 경쾌한 문체를 잘 살려내다

불역 황정은 장편소설 『계속해보겠습니다』

  • 번역서리뷰
  • 2021년 가을호 (통권 81호)
원작의 간결하고 경쾌한 문체를 잘 살려내다

불역 황정은 장편소설 『계속해보겠습니다』

 

발표하는 작품마다 큰 반향을 불러일으킨 인기 작가 황정은의 『계속해보겠습니다』의 불역판(Je vais ainsi)이 스위스의 중견 출판사 조에(Zoé)에서 나왔다. 1975년에 설립된 조에 출판사는 그동안 한국문학 작품을 많이 발간한 것으로 우리에게 친숙한 출판사는 아니다. 이 출판사의 홈페이지에는 “별것 아닌 것들, 그리고 뉘앙스와 함께 밝음과 어두움을 드러내는 일상에 주목한다. 우리 작가들은 글쓰기와 그들이 상상하는 것 사이의 유기적 관계를 유지하면서 이 세계를 해독해내고 그 복잡성과 역설을 우리에게 밝혀준다”는 다소 추상적인 출판사의 편집 방침이 소개되어 있다. 이처럼 섬세한 문학적 감성의 표현과 높은 작품성을 자기들이 출판할 작품의 선정 기준으로 삼는다고 밝힌 것과 작품의 투고를 받아 심사를 거쳐 출판 여부를 결정하고 SF나 판타지 소설, 다른 장르의 작품들을 출판하지 않는다는 입장을 명시한 것에서도 수준 높은 소설 전문 출판사로서의 자부심 같은 것이 느껴진다. 이 같은 기준으로 보아도 황정은 소설은 조에 출판사의 편집 방침과 잘 맞아떨어지는 작품이라는 생각이 든다. 출판사와의 교섭 과정은 알려지지 않았지만, 번역자가 보낸 원고를 편집진이 검토해서 출판을 결정했을 것으로 짐작된다.

『계속해보겠습니다』의 불역판은 프랑스 국립동양어문화연구소(Inalco)의 정은진 교수와 자크 바틸리오(Jacques Batilliot)의 공역으로 되어 있다. 이들은 그동안 오정희, 이청준, 황석영, 신경숙, 한강 같은 우리 문학을 대표할 만한 작가들의 작품을 번역한 실적이 말해주듯이 불어권에서는 자타가 공인하는 관록 있는 번역팀이다. 경험과 실력을 두루 갖춘 역자들의 작업인 만큼 황정은 소설의 불역판 역시 전체적으로 높은 완성도를 보여준다. 원작의 간결하고 경쾌한 문체를 잘 살려 마치 마주 보며 대화하듯이 이야기를 풀어나가는 일인칭 화자의 독백투의 문장들이 생동감 있게 전달된다. 구어적 표현을 적절히 사용했고 가독성이 높은 것이 이 번역판의 큰 장점이다. 황정은의 이번 작품처럼 인물들이 자기 생각을 따라가거나 다른 사람과의 가상의 대화 또는 실제로 주고받았던 말들을 되새기며 그 말과 행동의 의미를 곰곰이 따져보는 독백이 많은 글에서 인물들이 서로에 대해서 느끼는 미묘한 심리의 변화와 복잡한 감정의 기복을 담아낼 수 있는 적절한 표현들을 찾아내기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을 것이다.

『계속해보겠습니다』의 불역판 제목은 Je vais ainsi로 되어 있는데, 우리말로는 ‘나는 이렇게 지냅니다’ 또는 ‘나는 이렇게 살아갑니다’ 정도의 뜻이므로 원작과는 다소 뉘앙스의 차이가 난다. 황정은 작가는 이 작품의 출판을 기념한 작가와의 만남 자리에서 원래 《창작과비평》에 연재될 때는 ‘소라나나나기’라는 제목을 붙였던 것을 단행본으로 출판하면서 『계속해보겠습니다』로 바꾸었는데, 이 작품이 계속 이어질 수 있는 이야기라는 생각에서 이렇게 제목을 정했다고 밝힌 바 있다. 『계속해보겠습니다』는 소라와 그 여동생 나나, 어릴 때부터 같이 지냈던 옆집 친구 나기가 차례로 화자로 등장해서 이들이 공유한 과거와 현재의 자신과 관련된 개인적 이야기를 들려주고 마지막에 나나가 다시 화자로 나서 짧게 이야기를 마무리 짓는 식으로 구성된 작품이다. 작품의 제목이 된 ‘계속해보겠습니다’는 제2부 나나 편에 반복해서 나오는 표현이다. 그것은 제1부 소라와 제3부 나기 편이 독백체의 글쓰기 방식이라면, 제2부 나나 편은 상대에게 직접 말을 건네는 듯한 대화체의 말하기 방식을 채택하고 있기 때문이다. 제2부는 “나나입니다. 말해보겠습니다”로 시작해서 여러 번 새로운 단락이 “계속해보겠습니다”라는 표현으로 시작되고, 마지막 문장 역시 “계속해보겠습니다”로 끝나는 것을 볼 수 있다. 이처럼 계속 이어질 수 있고, 세 사람이 각자 자기 입장에서 들려주는 이야기라는 점을 고려하면, 명시적인 일인칭 대명사 나(je)보다는 다른 주어 인칭대명사를 대신하거나 불특정 다수를 가리키는 포괄적 의미의 대명사인 on과 계속한다는 의미의 동사를 사용해서 ‘On va poursuivre’ 정도로 옮기는 것이 원작의 제목과 더 비슷한 느낌을 주지 않을까 싶다.

※ 불역 『Je vais ainsi(계속해보겠습니다)』는 재단의 한국문학 번역, 연구, 출판지원을 받아 정은진, 자크 바틸리오의 번역으로 2021년 스위스 조에 출판사에서 발간되었다.

유석호
연세대학교 명예교수, 1953년생
저서 『라블레, 새로운 글쓰기의 모험』, 역서 『가르강튀아/팡타그뤼엘』 『팡타그뤼엘 제3서』 『팡타그뤼엘 제4서』 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