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화제작
아슬아슬 작두 위 멸사봉공 소년

- 고토게 코요하루의 『귀멸의 칼날』

  • 오늘의 화제작
  • 2021년 가을호 (통권 81호)
아슬아슬 작두 위 멸사봉공 소년

- 고토게 코요하루의 『귀멸의 칼날』

 

고토게 코요하루의 『귀멸의 칼날』에서 두드러지는 점은 크게 두 가지다. 소년소설이라는 빌둥스로만(성장소설)에서 시작한 고전적인 소년만화라는 점과 빌둥스로만에서 갖추게 될 사회규범과 가치관이 가족애를 넘어서서 일본식 봉건제에서 두드러지는 마조히즘적 충성심이 엿보인다는 점이다.

『귀멸의 칼날』은 판타지 액션만화로, 전체적인 구도는 한때 인간이었으나 식인귀로 변한 ‘도깨비[鬼]’와 도깨비에 맞서 싸우는 ‘귀살대(鬼殺隊)’의 싸움을 다룬다. 주인공 카마도 탄지로는 천 년 전부터 도깨비를 만들어 낸 수장 키부츠지 무잔에게 여동생 네즈코를 뺀 가족이 모두 몰살 당하고, 네즈코마저 도깨비로 변하게 된다. 그러나 네즈코는 탄지로의 가족애에 힘입은 의지력으로 식인을 하거나 괴물로 변하지 않았고, 탄지로는 귀살대에 들어가 동생을 인간으로 바꿀 방법을 찾으며 무잔과 도깨비에게 복수하려는 과정이 스토리의 골자다.

탄지로는 윤리관이 뚜렷하고 이타적인 성격으로 목숨이 달린 어려운 문제에 부딪치면서도 언제나 옳은 행동을 하려고 노력하는 소년이다. 이러한 모습은 빌둥스로만의 대표적인 특징이다.

여러 근대국가에서 빌둥스로만은 다양한 형태로 변용되어 나타났고, 그 가운데에서도 근대 제국주의 일본에서는 소년소설이라는 장르로 나타난다. 빌둥스로만은 소년이 사회의 일원으로 성장하는 과정을 그린다. 소년은 타인과 관계를 맺으면서 어려움을 겪고 번민하면서 사회규범과 가치관을 이해하고 받아들여 정신적으로, 도덕적으로, 인격적으로 성숙한 사회 일원으로 성장한다. 근대에 들어서면서 독일로부터 많은 영향을 받은 제국주의 일본에서는 빌둥스로만을 소년소설로 변용한다.

소년소설은 1910~1940년대에 큰 인기를 모았는데, 일본의 필요에 맞추어 소년을 서구적 근대 시민으로서 주체적으로 행동하는 사회인으로 성장시키면서도 사회적 규범과 가치관은 전근대 일본의 ‘멸사봉공(滅私奉公)’으로 대표되는 전체를 위해 개인의 희생을 강조하는 ‘충의’가 되도록 교육하는 장치로 활용되며 1920~1940년대까지 큰 인기를 모았다.

1950년대 들어, 소년소설은 소년만화에 밀려 사양길에 접어들었다. 소년소설이 가진 전근대성도 사라지는 듯했다. 그러나 오일쇼크와 정치투쟁으로 무엇이 올바른 길인지 모호해진 혼란스러운 1970년대에 들면서, 소년소설가로 데뷔했으나 생계를 위해 소년만화의 스토리를 쓰게 된 카지와라 잇키가 ‘시대착오’라는 말을 들으면서도 소년소설을 소년만화 시장에서 부활시켰다. 소년소설 특유의 ‘이상과 목표를 위해 자기 파괴적으로 가혹한 특훈을 거듭한 끝에 자기파멸에 이르는 서사’를 『타이거 마스크』, 『거인의 별』, 『가라테 바보의 일생』, 『내일의 죠』 등 히트작에서 부활시켜 사회현상까지 일으킨다.

이를 가능하게 한 무기는 카지와라 잇키가 소설가로서 지닌 무기인 해설과 독백이었다. 그림으로 스토리를 전달하는 소년만화의 특성을 뛰어넘어, 내면의 독백으로 등장인물의 약점과 인간적인 면을 그려 감정이입을 유도하고, 감정이입한 캐릭터의 독백 혹은 대사로 인간으로 살아가야 할 가치관을 고양된 독자에게 반강제로 공유하게 만든다. 그 결과 혼란스러운 현실 사회의 ‘정답’을 제시하는 힘이 생겨, 그림의 화려함을 넘어 서사 전반과 주제에 흡입력과 원심력이 발생한다.

비슷한 사례가 <분노의 질주> 시리즈에서 보인다. 블록버스터 프랜차이즈 영화 대부분이 속편을 거듭할수록 색이 바래기 마련인데, <분노의 질주> 시리즈는 다르다. 언뜻 보기에는 황당무계할 정도로 큰 스케일로 반복되는 기기묘묘한 액션과 질주가 전부로 보이는 영화 속 볼거리가 단순히 눈요기로 끝나지 않는 이유는 핵심인 가족이라는 보편적 가치관이 캐릭터의 행동원리와 플롯에 당위를 뒷받침하기 때문이다. 캐릭터들도 입만 열면 가족을 강조하고 가족을 지키기 위해서는 자기 목숨을 아낌없이 내던지며 위험한 사건으로 뛰어든다. 게다가 단순히 피를 나누었기 때문에 가족이라 부르는 것이 아니라 서로가 서로를 지키기 위해 목숨을 바치고 고통을 나누고 기쁨을 함께 해왔기 때문에, 서로 인종도 출신 배경도 다 다름에도 가족으로 결속한다.

『귀멸의 칼날』도 마찬가지다. 물론 이 작품이 높은 인기를 얻은 이유는 연출과 스토리 전개를 보완한 TV 애니메이션의 힘이 더 크다는 게 중론이다. 원작 만화는 고토게 코요하루의 첫 장편 연재작이다 보니 여러 가지로 미흡한 구석이 많은데, 대표적으로 내레이션 해설과 캐릭터의 독백에 지나칠 정도로 의존하는 점이 그것이다. 오죽하면 내 첫인상은 만화가 아니라 삽화를 넣은 라디오 드라마나 지나치게 친절한 옛날 대중소설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림이 아니라 글과 대사의 힘으로 서사를 이끌어 나간다는 단점은 오히려 2010년대에 들어 사회적으로 무엇이 옳은지 판단하기 어려워진 일본 사회에서 보편적인 휴머니즘을 외친다는 점에서 큰 인기를 얻는 요인이기도 하다.

그러나 『귀멸의 칼날』은 단순히 인간이 지켜야 할 생명의 가치와 윤리, 그리고 가족애를 노래하는 인간 찬가라고 넘어가기 어려운 점이 있다. 극도로 우경화하는 현재 일본 사회에서 극우적인 봉건적 가부장제 전체주의와 쉽게 연결되기 때문이다.

일본의 극우적 전체주의는 가상의 아버지인 천황을 중심으로 일본이라는 전체를 위해 개인이 자발적으로 희생하는 ‘멸사봉공’을 바탕으로 삼는다. 중세 일본의 충성은 윗사람을 위해 자신을 없애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대의를 위해서라면 군주에게도 입바른 소리를 하는 것이 충성이라는 성리학적인 조선의 ‘충성’과 달리, 중세 일본에서는 경제학 교수이자 소설가인 난조 노리오가 말한 “일본의 봉건시대는 99%의 마조히스트와 1%의 사디스트로 구성되어있다.”라는 말처럼 오직 윗사람이 가학적으로 옳고 그름을 판단해 희생을 요구하면 아랫사람은 그저 자발적으로 목숨을 바치는 것이 ‘충성’이다. 일본 극우가 가미카제 특공대를 미화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귀멸의 칼날』은 요즘 소년만화에서는 보기 드물게, 악에게 서사를 부여해 상대화하는 면이 없이 설령 동정할 부분이 있다 하더라도 악은 처벌받아야 한다는 윤리관이 두드러진다. 그리고 이러한 모습은 소년소설적인 연출에 힘입어 직접적으로 제시된다. 그러나 동시에 『귀멸의 칼날』은 시대 배경이 1910년대(다이쇼 시대)임에도, 귀살대나 도깨비 집단 모두 극도로 봉건적인 모습을 보인다. 귀살대에서는 상명하복과 충성이 근본가치이고 도깨비 집단은 절대적 충성을 보이지 않으면 죽임을 당한다. 주인공을 비롯한 대부분의 귀살대 대원들이 도깨비를 죽이기 위해서는 당연히 자기희생을 해야 한다는 식의 판단을 보이는 묘사가 자주 등장한다. 아슬아슬한 칼날 위에서 맨발로 서서 곡예를 보이다가 자칫하면 발이 베어 어느 한 쪽으로 치우치게 되듯 독자가 받아들이는 메시지가 극우적 전체주의로 이어질 위험이 있다. 역설적으로 읽는 독자도 탄지로만큼이나 강한 윤리관이 필요하다.

손지상
소설가, 만화평론가, 1986년생
장편소설 『우주 아이돌 배달작전』, 소설집 『데스매치로 속죄하라-국회의사당 학상사건』, 서브컬처 비평서 『서브컬처계를 여행하는 히치하이커를 위한 가이드』 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