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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리만 키우는 할머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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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1년 가을호 (통권 81호)
메리만 키우는 할머니

“할머니, 어디 가세요?”

“유기견 보호소에 간다. 새 식구 데려와야지.”

“할머니 이번에는 쫌. 제발 어린 강아지요.”

내가 팔에 매달리지만 할머니는 웃으며 손수 만든 알록달록한 천 가방을 들고 골목길을 내려간다.

김명자 할머니는 우리 빌라 1층에 혼자 사신다.

나는 학교 수업이 끝나면 할머니네 집에서 놀 때가 많다. 바로 할머니가 개를 키우시기 때문이다.

우리 집도 강아지를 키웠으면 좋겠지만 엄마가 개털 알레르기가 있어서 꿈도 못 꾼다.

그런데 할머니는 참 이상하다. 귀여운 새끼 강아지 대신 늙고 병든 개를 유기견 보호소에서 데려다 기르신다.

“동물은 새끼 때가 예쁜데 강아지를 키우지 않으시고. 늙고 병든 개는 돈도 많이 들어요.”

엄마도 나와 같은 생각이지만 할머니는 손사래를 친다.

“나 같은 늙은이가 새끼 강아지를 어떻게 키워. 내가 먼저 죽을 텐데. 강아지 산책도 못 시켜. 내 걸음으로 쌩쌩 달리는 녀석들 목줄을 어떻게 잡고 다니겠어.”

그렇게 할머니는 유기견 보호소에서 잘해야 1, 2년밖에 못 산다는 늙은 개를 데리고 왔다. 할머니가 잘 보살펴 주신 덕분인지 개들은 보호소에서 얘기한 것보다는 1년에서 3년까지 더 오래 살았다.

나는 할머니를 창문으로 보자마자 우당탕 뛰어서 얼른 1층으로 내려갔다.

네 번째로 할머니 집에 온 개는 요크셔테리어다.

“인사해라, 메리야. 위층 사는 송나은이란다.”

할머니는 낯설어서 구석으로 자꾸만 숨는 개의 머리를 천천히 쓰다듬었다.

할머니 집에 오면 모든 개들의 이름이 메리로 바뀐다. 할머니는 어렸을 때 키우던 개 이름이라고 하지만 내 생각에는 이름을 기억하기 힘들어서인 것 같다. 신기하게도 새로 온 개들은 원래부터 자기 이름이 메리였던 것처럼 잘 알아듣는다.

“메리가 나은이보다 언니다. 열세 살이거든. 사람으로 치면 팔순이 훌쩍 넘은 거지. 나보다도 더 늙었어.”

메리는 코끝으로 내 손등의 냄새를 맡았다.

“나이는 많아도 아픈 데 없이 건강하다고 하더구나. 이제 이 녀석이 마지막이야. 몇 년 뒤면 내 몸뚱이도 건사하기 힘들 테니 말이다.”

할머니는 다른 메리들에게 그랬던 것처럼 강아지 유모차에 메리를 태워 산책을 다녔다. 오래 걸을 수 없는 메리에게 콧바람이라도 쐬어줘야 한다며 날마다 집 앞 공원을 가고 동네를 한 바퀴 돌기도 했다.

 

“명자 씨. 일루 와봐. 식혜 한 잔 마시고 가.”

슈퍼 앞 빨간 플라스틱 의자에 앉은 할머니들이 명자 할머니를 불렀다.

“참말로 이상한 할마씨여. 개한테 들어가는 돈으로 예쁜 옷 사 입고 맛난 거 사 먹지.”

“골목길 아래 동물병원이 단골이 되었드먼. 자네한테는 진료비도 싸게 받는다면서?”

명자 할머니는 식혜 한 잔에 잔소리는 두 잔을 들었다.

“내가 데려오지 않으면 안락사 당한다잖아. 생명을 살리는 일인데 내가 쓸 돈을 아껴야지. 글고 이가 좋아야 맛난 거 사 먹지. 다 늙어서 예쁜 옷 입으면 뭐해.”

할머니는 메리를 쓰다듬으며 말했다.

“하여튼 인물이여, 인물. 늙은 개만 거둬서 죽는 꼴만 보면서도 저 짓을 만날 하니. 복을 제대로 쌓는구먼.”

할머니들은 칭찬인지 험담인지 모를 말을 늘어놓으면서도 명자 할머니의 스웨터 호주머니에 꼬깃꼬깃한 만 원을 구겨 넣었다.

“개 사료 값 해.”

“나도 돈 있어.”

“알어. 우리가 엄마 친구니까 이모 아니여. 이모가 조카 사료 값 주는 겨.”

할머니들이 실랑이를 하는 동안 메리는 눈곱이 낀 눈을 깜박거렸다.

 

 

일주일이 지난 어느 날이었다. 명자 할머니가 며칠째 보이지 않았다. 문을 두드려서 불러도 아무 대답이 없었다.

나는 학교에서 돌아오는 길에 우리 집 건너편에 있는 자전거 가게에 갔다. 손재주가 좋은 자전거 가게 한 씨 아저씨는 명자 할머니랑 친해서 소식을 알 것 같았다.

“나은이는 아직 소식을 못 들었구나. 이번에 데려온 메리가 갑자기 죽었단다. 온 지 며칠밖에 안됐는데 말이야.”

나는 한 씨 아저씨의 말을 듣고 깜짝 놀라서 집까지 뛰어갔다.

“할머니가 속상해서 집에만 계신가 보다.”

마침 쉬는 날인 엄마는 된장국을 끓여 나와 함께 할머니 집에 내려갔다.

몇 번이고 초인종을 눌러서야 할머니가 힘없이 문을 열었다. 현관 입구 쪽에는 개 배변패드가 쌓여 있고 사료 봉투도 입을 벌린 채 놓여 있었다.

아직 개털이 집안 곳곳에 남아 있는지 엄마가 에취 하고 재채기를 했다.

“알레르기 있는 사람이 뭐 하러 들어와.”

그러면서도 할머니는 소파에 엄마를 앉히고 화장지를 꺼내 주었다.

“메리가 왜 그렇게 빨리 죽었어요? 건강하다고 했다면서요?”

나는 참았던 물음을 쏟아냈다.

“병원에서 그러더라. 워낙 나이가 많아 갑자기 그런 일이 생길 수도 있다고. 우리가 모르는 병이 있었을 수도 있고.”

할머니는 검버섯이 핀 눈가를 손등으로 문질렀다.

“나이 든 녀석이라 죽을 줄은 알았지만 이렇게 빨리 가버리니까 어찌나 허망한지. 아직 정도 못 붙였는데 말이야.”

할머니는 한숨을 포옥 내쉬었다. 엄마는 고개를 끄덕이면서 화장지로 코를 눌렀다. 재채기를 참느라 눈까지 빨개졌다.

“난 형제 많은 가난한 집에서 태어났어. 아버지가 입 하나 던다고 나를 친척집에 식모로 보냈지. 가족들과 떨어져서 식모살이하다가 나이가 들어 결혼을 했는데. 글쎄 이번에는 애를 못 갖는다고 이혼을 당한 거야.”

할머니의 목소리가 젖어가고 있었다. 엄마는 놀라는 나에게

“옛날에는 그랬어.”

하고 작은 목소리로 속삭였다.

“가족한테 버림받는 것이 어떤 것인지 내가 잘 알지. 그래서 버림받은 개들을 거둔 거야. 마지막은 사랑받으면서 가라고 보듬어주고 싶었거든. 근데 키우다 보니 내가 사랑받는 거였어. 나를 반겨주고 좋아해 주고 늘 옆에 있어주고.

내가 좋아서 키웠어. 내 욕심으로.”

할머니의 얘기를 심각하게 듣는 엄마는 아예 콧구멍에 화장지를 끼우고 입을 벌리며 숨을 쉬고 있었다.

“나도 나이가 많아 언제 갑자기 죽을지 모르는데 나 좋자고 개들을 데려와서 키웠으니. 내가 갑자기 죽으면 개가 혼자 남겨져 다시 버림받을 생각을 못 했어.”

엄마의 알레르기가 아주 심해지나 보다. 이젠 눈에서도 눈물이 줄줄 흘러내린다.

 

 

할머니는 두 달 넘게 메리가 없는 시간을 보냈다. 할머니는 밖에 자주 나오지 않았고 1층에선 예전처럼 맛있는 음식 냄새도 올라오지 않았다.

소나기가 내린 다음 날이었다.

학원에 다녀오는데 개 유모차를 밀고 오는 한 씨 아저씨를 만났다.

“유모차 바퀴가 고장 난 걸 손봤단다.”

아저씨가 문을 가만히 두드리자 명자 할머니가 나왔다.

“뭐 하러 고쳤어. 이젠 필요 없는데.”

“시장 보러 다닐 때 밀고 다니세요. 수리비는 안 받을게요.”

“가게에 손님도 없을 텐데 공짜 수리를 해 주면 어떡해.”

할머니는 바지 주머니에서 천 원짜리를 꺼냈다.

“아니에요. 오늘 손님이 자전거 수리를 맡겼어요. 어제 빗길에 미끄러져 개를 치었다지 뭐예요. 핸들이랑 앞바퀴가 완전히 돌아갔더라고요. 갈아야 될 부품도 있고.”

“개를 치었어요? 그럼 그 개는 죽었어요?”

나는 놀라서 물었다.

“아니, 죽지는 않았는데 뒷다리를 둘 다 못 쓰게 됐대. 주인 없는 개라 자전거 주인이 동물 병원에 데려갔는데 뒷다리가 마비돼서 끌고 다녀야 하나 보더라.”v “그, 그럼 그 개는 어떻게 돼? 유기견 보호소로 가?”

이번에는 할머니가 나보다 먼저 물었다.

“거기서도 얼마 못 있겠지요. 멀쩡한 개들도 안락사 시키는데 뒷다리 못 쓰는 장애견을 돌보겠어요? 아직 두 살도 안 된 놈이라던데.”

자전거 가게 아저씨는 부품 주문을 넣어야 한다며 총총히 골목으로 돌아갔다.

할머니는 잠깐 동안 그 자리에 멍하니 서 있다가 아직도 개털이 군데군데 박혀 있는 스웨터를 털며 집안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그다음 주, 할머니 집에 메리가 다시 들어왔다. 이번에는 늙은 개가 아닌 두 살 된 말티즈였다. 뒷다리를 딛지 못하고 질질 끄는 걸 보니 자전거 가게 아저씨가 얘기한 사고 난 바로 그 개가 분명하다.

“할머니, 할머니!”

나도 개가 반가운 건지 할머니가 반가운 건지 모르겠다. 할머니가 드르륵 거리며 유모차를 끌고 나온 모습에 달려가 할머니와 개를 끌어안았다.

“이제 안 키우신다더니. 메리야, 안녕?”

나는 머리 쪽 털을 위로 묶은 흰색 말티즈에게 인사를 했다.

“내가 이놈 때문에 며칠 잠을 못 잤거든. 한 씨가 메리한테 다리를 만들어줬대서 거기 간다.”

할머니의 말에 나는 눈을 동그랗게 뜨고 앞장서서 걸었다.

한 씨 아저씨는 메리에게 자전거 바퀴로 만든 휠체어를 걸어주었다. 가슴에 건 하네스에 지지대를 연결했고, 메리의 키에 맞는 작은 바퀴가 달려 있었다.

“자, 메리야. 앞으로 끌고 가 봐.”

한 씨 아저씨가 엉거주춤 서 있는 메리의 앞다리를 살며시 잡아당겼다. 메리는 걸음마를 배우는 아기처럼 한 발짝 한 발짝 천천히 걸었다.

뒷다리를 대신한 바퀴가 조금씩 구르자 걷는 속도가 조금씩 빨라졌다. 메리는 몇 번 더 걸어보더니 조금씩 속도를 내서 걸었다. 바퀴가 쉽게 굴러가자 뛰기 시작했다.

나는 얼른 뛰어가 메리를 잡았다.

“어린 녀석이라 금방 배우네.”

한 씨 아저씨는 허리에 손을 얹고 활짝 웃었다.

“아이고 저렇게 쌩쌩 달려서 내가 산책 시킬 수 있겠나. 큰일 났네.”

할머니는 메리에게 목줄을 채웠다.

“걱정 마세요, 할머니. 제가 메리를 산책 시킬게요.”

나는 목줄을 받아들고 빨리 걸었다. 메리가 신이 나서 혀를 내밀며 함께 뛰었다. 조금 뛰더니 잠시 멈춰 뒤돌아보았다. 천천히 걸어오는 할머니를 기다리는 것 같았다.

할머니가 가까이 오자 다시 뛰기 시작했다. 메리는 그렇게 자꾸 뒤돌아보며 멈췄다 뛰었다 했다.

“와, 휠체어 탄 개다.”

동네 아이들과 어른들이 신기해하며 모여들었다. 어느 새 동네 꼬마들이 메리를 졸졸 따라오며 함께 뛰었다.

“아이고 저 녀석 때문에 내가 오래 살어야겠네. 메리보다 하루라도 더 살아야 될 텐데. 젊은 녀석이라…… 어휴, 힘들다.”

할머니는 메리를 따라잡으려는 듯 더 씩씩하게 걸었다.

이제 명자 할머니는 더 건강해지고 행복해질 것이다. 할머니는 휠체어 탄 메리에게 사랑을 듬뿍 받으실 테니 말이다.

고수산나
동화작가, 1970년생
동화 『우리 반에 도둑이 있다』 『세상에서 가장 작은 동생』 『동물원 친구들이 이상해』 『콩 한쪽도 나누어요』 『뻐꾸기시계의 비밀』 『거꾸로 걸리는 주문』 『별에서 온 엄마』 『수상한 선글라스』 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