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밭단상
②점(點)

  • 글밭단상
  • 2021년 가을호 (통권 81호)
②점(點)

내 발 안쪽, 발목 복숭아뼈 아래에는 손톱만 한 점이 있었다. 그것은 언뜻 보면 하나의 커다란 점 같지만 자세히 보면 여러 개의 점이 겹쳐진 것으로 태어날 때부터 내 발에 박혀있었다고 한다. 물방울 크기의 점이 여러 개 겹쳐져 둘러싸인 모양은 흡사 꽃이 활짝 핀 모양같이 보이기도 했다. 사실 발목 아래의 점을 암술, 수술, 그리고 그것을 둘러싼 꽃잎 같다고 느끼는 것은 그 점의 형태를 오랫동안 자세히 들여다본 후에야 가능하고, 얼핏 보면 발에 검은색 이물질이 묻은 것으로 오해하기 십상이다.

어린 시절 여름철에 샌들이나 슬리퍼를 신고 밖에 나갔다가 발목 아래의 점을 친구들에게 들킨 적이 있다. 짓궂은 동네 아이들은 “짜장이 튀었다”라고 하거나 심한 경우 “똥이 묻었다”며 나를 놀리기도 했다. 속상한 마음에 집에 돌아와 내 발에는 왜 이런 점이 있는 거냐며 울먹거리며 물었을 때 엄마는 내 발을 쓰다듬으며 말했다.

“엄마 딸이라는 표시를 남겨놓으려고 했지. 우리 딸 잊어버렸을 때 엄마가 쉽게 찾으려고 뱃속에서 일부러 도장 찍어놓은 거야.”

나는 그 말에 마음이 풀려 배시시 웃으며 엄마의 품에 안겼다. ‘아이를 찾습니다.’라고 크게 적힌 포스터가 동네 곳곳 담벼락이나 전봇대에 붙어 있던 시절이었다. 우유팩 뒷면에도 잃어버린 아이들의 인상착의나 신체 특징이 적혀 있었다. 우유를 먹으면서 나는 생각하곤 했다. 내 부모가 나를 잃어버리면 발목 밑에 있는 점에 대해 상세히 서술할 거라고, 이런 점을 가진 아이는 드물기 때문에 나는 다시 가족의 품으로 돌아올 수 있을 거라고. 그런 생각을 하면서 우유 한 팩을 다 마시고 나면 배가 불러오면서 마음도 든든해졌다.

신기하게도 서른이 넘으면서 내 발목 아래 점 색깔이 점점 옅어졌다. 어린 시절 때밀이 타월로 세게 밀어 지우려고 해도 지워지지 않았던 점이었다. 있던 점이 사라지는 경우는 드물다고 들었기 때문에 처음에는 착각이 아닐까 생각했는데 어느 순간 점점 옅어져 자그마한 크기의 점들은 이제 거의 눈에 띄지 않고, 가장 큰 점도 크기가 예전에 비해 줄어들었다. 색깔이 옅어지거나 사라진 점들이 많아져서 점이 뭉쳐진 모양도 더 이상 꽃처럼 보이지 않는다. 짜장이 튄 국물 방울이 서너 개 듬성듬성 옅게 발목 아래 붙어 있는 형상이랄까. 그것도 자세히 보지 않으면 보이지 않을 정도로 점의 색깔이 연하다. 점점 연해지고 있는 내 몸의 점을 볼 때마다 이상한 기분이 들곤 한다. 정말 어린 시절 엄마의 말대로 이 점은 내가 엄마의 딸이라는 표식이었던 걸까. 이 표식이 점점 옅어지고 있는 것은 어쩌면 이제 내가 엄마를 잃어버려도 살 수 있기 때문에, 굳이 당신을 애타게 찾을 필요가 없기 때문은 아닐까 하는 생각마저 하게 된다.

실제로 이제 내가 엄마를 찾는 일보다, 엄마가 나를 먼저 찾는 일이 늘어나고 있다. 4년 전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 엄마는 큰딸인 내게 더 오래, 더 많이 기대고 싶어 한다. 내가 감당할 수 있는 일은 감당하겠다는 마음을 먹었다가도, 가끔 엄마나 다른 가족들이 나를 찾을 수 없는 곳으로 멀리 떠나버리고 싶다는 생각을 할 때도 있다. 물론 생각에 그칠 뿐인지라 마음은 더 답답해진다. 몸에 점의 위치나 모양을 마음대로 선택할 수 없는 것처럼 태어날 때 가족을 선택할 수 있는 사람이란 없다. 그러나 의학의 도움으로 점을 지울 수 있는 것처럼 어떤 사람은 가족들을 삶에서 지우는 선택을 하기도 한다고, 그 또한 괴롭겠지만 아예 불가능한 일은 아니라는 것도 안다. 그리고 어떤 사람은 가족을 떠나고 싶어도 쉽게 떠날 수 없는, 혹은 꿈꾸던 대로 가족을 떠났지만 쉽게 행복해질 수 없는 삶에 대해 쓴다. 그것은 아마 몸에 박힌 꽃잎 모양의 점이 옅어지는 것과는 무관한 선택일 것이다.

김유담
소설가, 1983년생
장편소설 『이완의 자세』, 소설집 『탬버린』 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