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밭단상
①간첩사진

  • 글밭단상
  • 2021년 가을호 (통권 81호)
①간첩사진

내가 처음 시체를 본 것은 어느 일간지 일면에 실린 간첩소탕 보도사진에서였다. 그는 젊은 남자였다. 많아봤자 이십 대 중반이었을 그의 육체는 차갑게 식어 하늘을 향해 뻗은 채 굳어있었다. 정확히 기억나진 않지만, 아니 약간은 각색되어 기억에 남아있는 것이 분명할 텐데, 그는 눈을 감지 못하고 -위로 치켜뜬 모습으로- 사진에 찍혔고, 축축한 정글에서 무언가로부터 쫓기다가 나동그라진 건장한 야생동물 같은 형상으로 박제되어 있었다. 물기가 뚝뚝 떨어질 듯한 짧은 머리카락이 앳되어 보였다. 나는 중학생에 불과했지만, 아무리 간첩이라 하더라도 죽은 사람의 몸과 시선을 아무 거리낌 없이 공공연히 전시할 수 있다는 현실에 꽤 충격을 받았다. 그 사진을 더 골똘히 쳐다보고 싶었지만 그와 눈이 마주칠까 두려워 얼른 페이지를 넘기고 울렁거리는 마음을 진정시켰다. 동시에 내 마음속에는 어떤 매혹 같은 것이 있음을 알게 되었는데 그것을 들여다보는 일은 시체 사진과 마주하는 것보다 더 곤혹스러운 일이었다.

다시 그 사진을 떠올린 것은 대학생이 된 후였다. 나는 꽤 오랫동안 대학교에 적응하지 못했다. 사람들과 어울리는 것이 어색해서 공강이나 점심시간이 되면 나도 모르게 여학생 휴게실이나 클래식음악 감상실 등 비교적 한산하고 후미진 곳을 찾아 혼자 시간을 보냈다. 나의 피난처들 중 하나였던 생활도서관은 내성적이지만 반항적인 아이들을 끌어당기는 곳이었는데, 그 즈음엔 그들 중 상당수가 스스로를 아나키스트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그때 처음으로 한국에서 체 게바라의 평전이 번역되어 나왔기 때문이었다. 나도 한참을 기다려 책을 빌릴 수 있었다. 책의 초반부에는 흑백사진으로 체 게바라 삶의 주요 장면들이 소개되었는데, 그중 맨 마지막에는 체 게바라가 총살당한 후 텅 빈 표정을 하고 눕혀져 있는 사진이 실려 있었다. 그는 젊은 간첩과 마찬가지로 눈을 뜨고 죽음을 맞았다. 그러나 체 게바라의 얼굴은 간첩과 달리 -어떻게 설명해야할지 난감하지만- 훨씬 더 복잡하고 숭고하게 느껴졌다. 이후 사진을 반복해서 보았으므로 첫인상은 이제 희미해졌지만, 무언가 보지 말아야 할 것을 보았다는 막연한 두려움과 함께 불쑥 마음을 사로잡는 어떤 감정이 간첩사진을 보았을 때처럼 나를 혼란스럽게 만들었다. 어째선지 잘 모르겠지만 젊은 남자가 죽은 장면은 젊은 여자가 죽었을 때보다 훨씬 더 비극적으로 느껴진다는 생각도 문득 들었던 것 같다.

그다음으로 죽은 간첩을 생각했던 건, A의 입관식에서였다. A는 내가 열정적으로 사진 촬영에 몰두하기 시작했을 무렵 알게 된 친구로, 한때는 무척 친했지만 몇 가지 사소한 일들이 쌓이면서 그리고 각자 스스로의 실제적인 삶에 더 깊숙이 들어가면서 어느새 관계가 소원해진 상태였다. 의욕적으로 새로운 일을 시작했다는 소식을 건너들은 지 불과 몇 달도 채 지나지 않아, A는 그만 세상을 떠나고 말았다. 갑작스럽게 연락을 받고 달려온 친구들은 장례식장에서 뜬눈으로 밤을 새우고, 다음날 아침 A의 가족을 따라 입관식에 참석했다. A는 체 게바라처럼 누워있었다. 아니, 전혀 다른 모습이었다. A는 흰 천으로 몸 전체를 덮고 있었는데 다행히 눈을 감고 있었다. 눈은 무겁게 감겨 있었다. 무표정한 듯 평화로운 얼굴이었다. 울다 지친 나는 우두커니 서서 A가 체 게바라처럼 천식을 앓았었다는 사실을 떠올렸다. 대학을 졸업했으므로 다들 어른 행세를 하고 싶어 했지만 아직 인생의 모든 것이 그토록 심각해질 수 있다는 걸 잘 실감할 수 없는 나이였다. 한 시절이 완전히 끝났다는 생각을 했던 것 같다. 우리 앞에 놓인 무수한 끝이 이제 시작되었다는 생각도 아마 조금 했을지 모른다. 그날 아침, 나는 어떠한 매혹도 느낄 수 없었다. 내가 한때 알고 지내던 젊은 남자의 죽음에는 아무런 수식도 붙일 수 없었다. 그것은 아주 냉정한 단절이었다. 그와 나 사이에 놓여있던 투명한 유리창처럼 아주 명징하고, 무엇보다도 물질적인 사건이었다.

그 후로 나는 A가 등장하는 꿈을 두 번쯤 더 꾸었고, 오랫동안 간첩사진에 대해서는 일절 생각하지 않았다.

전하영
소설가, 1980년생
단편소설 「그녀는 조명등 아래서 많은 시간을 보냈다」 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