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문학의 공간
쓰기와 걷기 사이

  • 내 문학의 공간
  • 2021년 가을호 (통권 81호)
쓰기와 걷기 사이

 

걷기 운동을 다시 시작한 건 코로나 3차 대유행이 왔던 2020년 겨울부터다. 걷기를 잠깐 멈췄던 지난 몇 년간은 그동안 있는 줄도 모른 채 살았던 내 몸의 근육들을 인지하고 써보면서 지낸 시간이었다. 다니던 센터에서 몇 년간 세 명의 강사를 만났는데 그중 한 강사가 그런 말을 했다. 우리 몸에는 생명과 직결된 근육이 딱 하나 있는데 그게 바로 호흡근이라고. 다른 근육을 단련하는 것도 좋지만 호흡근 단련이 무엇보다도 중요하다고 강사는 말했고, 다른 강사보다 흉곽 호흡 훈련에 더 많은 시간을 쏟았다. 호흡 훈련 대신 복부를 좀 더 극적으로 쥐어짜는 동작에 더 많은 시간을 할애해 주면 좋겠다고 생각한 적도 있었지만 센터를 그만두고 대부분의 운동을 걷기에 쏟고 있는 요즘은 그 강사와 함께하던 호흡의 순간들을 가장 많이 떠올리고 있다.

대퇴골두가 골반에서 어떻게 맞물려 돌아가는지, 복횡근과 복사근이 어떻게 움직이는지, 중둔근과 내전근엔 어떻게 힘이 들어가는지, 근육을 인지하며 걷는 것은 근육의 쓰임을 모르고 걷던 때보다 걷기를 훨씬 재미있게 느끼게 해주었다. 걷는 길 사방이 콘크리트 벽으로 막혀 있고 심지어 음악 없이 걸어야 한다고 하더라도 근육의 움직임을 느낄 수 있다면 지루할 새가 없겠다는 생각을 하기도 하면서. 몸이 점차 보폭과 속도에 맞춰지면서 심장과 폐가 최대치로 작동하고 호흡과 사지가 자유로워지는 느낌에 도달하는 것은 4킬로미터에서 5킬로미터 정도를 지날 때인데 이때, 그러니까 가슴이 터질 것 같을 때, 어디서부터 어디까지가 그 근육인지는 정확히 알 수 없지만 나는 내 호흡근이 작동 중이라는 걸 알 수 있다. 그리고 그 순간에, 그러니까 가슴이 터질 거 같을 때, 쓰고 있는 소설 생각이 나면 소설이 잘 써지고 있다는 징조다.

날씨가 더워진 이후로는 저녁에 걷는 시간이 많아졌다. 하루를 ‘쓰기’와 ‘걷기’로 단순하게 운용할 수 있는 날이 내겐 가장 행복한 날이고 그런 날이 이삼일 내리 이어지면 그게 너무 복 같아서 하루가 저무는 게 아쉽다. 노트북 앞에 앉아서 글을 쓰는 시간은 한 문장, 한 장면을 물리적으로 밀고 나가야 하는, 오직 현재에 집중해야 하는 시간이지만 걸을 때는 소설의 어디로도 뻗어나갈 수 있다. 걷는 중에 나는 아직 쓰지 않은 내 인물들의 고별과 해후를 미리 겪고, 불현듯 그 의미에 사무치다가, 십 년 후에나 쓰게 될 것 같은 소설 때문에 갑자기 가슴이 뛰기도 한다. 걸을 때만 찾아오는 그 의욕들은 다음날 노트북 앞에 앉으면 대개 기약 없는 고행으로 바뀌어버리지만 어느 순간부터 나는 믿게 되었다. 사무쳐왔던 것들이 다 소설이 되진 못하더라도 그때의 호흡이, 내가 호흡하는 순간순간 만들어갔던 그 근력이, 나를 좀 더 오래 앉아 있게 해줄 거라고. 쓰게 해줄 거라고.

내게 호흡근에 대해 말해주었던 강사는 2020년 여름의 2차 유행과 겨울의 3차 유행 사이인 가을 즈음에 센터를 그만두었다. 그 강사가 그만두고도 두어 달, 마스크를 쓴 채 운동을 더 나가다 나 또한 오래 다니던 그 센터에 재등록을 하지 않았다. 그리고 어느 때보다도 긴 겨울이 이어졌다. 지금은 2021년 여름이다. 나는 쓰거나 걷고 있고, 숨이 턱 끝까지 차오른 채 걷다가 자주 그 겨울이 사무쳐올 때가 있다.

최은미
소설가, 1978년생
장편소설 『아홉번째 파도』, 중편소설 『어제는 봄』, 소설집 『너무 아름다운 꿈』 『목련정전(目連正傳)』 『눈으로 만든 사람』 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