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그림 산책
눈앞에 펼쳐진 생동감 넘치는 장면들

- 김홍도의 《행려풍속도》

  • 우리 그림 산책
  • 2021년 가을호 (통권 81호)
눈앞에 펼쳐진 생동감 넘치는 장면들

- 김홍도의 《행려풍속도》

그림 1. 김홍도, 《행려풍속도》, 1778년, 비단에 수묵담채, 각 폭 90.9X42.7cm, 국립중앙박물관   

 

1778년에 김홍도(金弘道, 1745~1806년 이후)는 조선시대 풍속화에 일대 혁신을 가져온 회심의 역작인 《행려풍속도(行旅風俗圖)》를 그렸다(그림 1). 당시 김홍도는 34세였다. 《행려풍속도》는 8폭으로 된 병풍으로 각각의 화면에는 행인들, 타작하는 사람들, 나룻배를 기다리는 사람들, 대장간에서 일하는 사람들 등 다양한 인물들이 나타나 있다. 이들의 동작과 표정은 생동감이 넘친다. 《행려풍속도》의 8장면은 병풍 왼쪽부터 <파안흥취(破顔興趣)>, <노상풍정(路上風情)>, <타도낙취[타도락취](打稻樂趣)>, <과교경객(過橋驚客)>, <매염파행(賣鹽婆行)>, <진두대도(津頭待渡)[또는 진두대주(津頭待舟)]>, <노변야로(路邊冶爐)>, <취중송사(醉中訟事)>이다.

 

그림 2. 윤두서, <채애도(採艾圖)>, 《윤씨가보(尹氏家寶)》, 17세기 말~18세기 초, 모시에 수묵, 30.4X 25.0 cm, 해남 녹우당   

 

‘파안흥취’는 나귀를 탄 사대부가 부채로 얼굴을 가리고 밭에서 목화를 따는 여성들을 몰래 훔쳐보는 장면이다. ‘노상풍정’은 나귀를 탄 두 명의 사대부를 그리고 있다. 이들은 아이를 가슴에 앉은 채 소를 타고 가는 여성과 아이를 등에 업은 젊은이를 길에서 만나고 있다. ‘타도낙취’는 한창 벼 타작을 하는 농부들과 앉아서 이들을 지켜보는 지주(地主)인 양반을 그린 장면이다. 전경(前景)에는 벼 타작하는 곳으로 향하는 남녀 행인이 보인다. ‘과교경객’에는 나귀를 타고 다리 위를 지나가는 사대부 일행이 나타나 있다. 나귀를 탄 사대부는 갑자기 날아가는 새를 보고 깜짝 놀란다. ‘매염파행’은 새벽에 소금과 생선을 광주리와 항아리에 담아 머리에 이고 가는 일군의 여성들을 보여주고 있다. ‘진두대도’는 배를 타고 강을 건너오는 뱃사공이 빨리 도착하기를 나루터에서 초조하게 기다리는 사람들을 그린 장면이다. ‘노변야로’에는 시골 주막에서 밥을 먹거나 쉬고 있는 사람들과 쇠를 달구고 두드리는 작업을 하고 있는 대장장이들이 나타나 있다.

‘취중송사’에는 고을 원님 앞에 엎드려 자신의 사정을 아뢰는 인물들과 태수(太守)의 판결 내용을 열심히 받아 적는 형리(刑吏: 형방)가 나타나 있다. 이와 같이 《행려풍속도》에는 고을 수령, 아전, 양반, 농부, 대장장이, 평민 여성 등 다양한 인물들이 등장하고 있다. 김홍도는 현장에서 이들의 동작과 표정을 섬세하게 관찰하고 그림으로 그렸다. 그 결과 각각의 장면은 너무도 생생하고 현장감이 넘친다. 김홍도는 주위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장면들을 순간적으로 포착하여 생동감 넘치게 표현함으로써 이 그림들을 보는 사람은 마치 눈앞에서 이러한 광경들이 벌어지는 것과 같은 느낌을 받게 된다.

김홍도 이전에도 풍속화는 존재했다. 윤두서(尹斗緖, 1668~1715)는 쟁기 가는 농민, 짚신 삼는 사람, 나물을 캐는 여인들, 목기를 깎는 사람들을 그림으로 그려 조선 후기 풍속화를 발전시키는 데 큰 공헌을 하였다(그림 2). 그러나 그의 풍속화는 화첩에 그려진 작은 크기의 그림들이었으며 구도나 인물 표현에 있어 중국 그림의 영향에서 완전히 벗어나지 못했다. 아울러 그의 풍속화에 등장하는 인물들의 동작이나 표정은 이전 그림에 비해 사실성이 증가하기는 했지만 생동감을 전해주지는 못했다. 정선(鄭敾, 1676~1759)과 가까웠던 양반 출신의 화가인 조영석(趙榮祏, 1686~1761)은 윤두서를 이어 조선 후기 풍속화를 한 단계 더 진전시킨 인물이다. 그는 그림을 그리는 데 있어 직접적인 관찰과 사생(寫生)을 중시하였다. 조영석이 그린 풍속화들을 그의 아들이 모아 엮은 것이 『사제첩(麝臍帖)』(개인 소장)이다. 이 화첩에는 바느질하는 여성들, 마주 앉아 새참을 먹는 농부들, 한여름 나무 아래에서 목기를 깎는 기계를 손보는 장인들, 어미 소의 젖을 짜는 사람들, 마구간에서 여물을 먹는 말과 그 옆에 앉아있는 마동(馬童) 등의 풍속화가 들어있다.

<말징박기>(그림 3)를 보면 조영석이 정확한 관찰을 중시했으며 핍진(逼眞), 즉 사실적인 묘사에 뛰어났음을 알 수 있다.

 

그림 3. 조영석, <말징박기>, 18세기 전반, 종이에 수묵담채, 28.7X19.9cm, 국립중앙박물관  

 

조영석이 추구했던 현장감이 넘치고 인물들의 동작과 표정이 살아있는 것과 같은 느낌을 주는 풍속화는 김홍도를 통해 완성되었다. 주로 화첩에 풍속화를 그린 윤두서, 조영석과 달리 김홍도는 병풍이라는 매체를 사용하여 큰 화면 속에 살아 움직이는 인물들이 등장하는 생생한 현장을 포착, 표현하였다. 특히 김홍도는 자연을 배경으로 한 풍속화라는 새로운 형식을 개발하여 조선 후기 풍속화에 일대 혁신을 이룩하였다. 《행려풍속도》에 나타난 자연 배경은 그 속에서 움직이는 인물들과 일체를 이루어 매 장면들은 놀라운 현장감을 보여준다. 김홍도는 산수를 배경으로 풍속 장면을 전경에 배치한 새로운 구도를 창안하였다. 그는 자신이 보여주고자 하는 풍속 장면을 화면 앞쪽에 크게 배치하여 그림을 보는 사람이 바로 그림 속에 나타난 장면이 무엇인지를 인식할 수 있도록 하였다. 특히 김홍도는 그림에 표현된 장면이 마치 ‘이곳에서 막 일어난 일’처럼 생생하게 그림을 보는 사람에게 시각적으로 전달될 수 있도록 풍속 장면을 매우 사실적으로 묘사하였다.

 

그림 4. 김홍도, <진두대도>, 《행려풍속도》   

그림 5. 그림 4의 세부    

 

<진두대도>(그림 4) 장면은 이러한 김홍도 풍속화의 정수를 잘 보여준다. 이 그림은 마치 찰나의 순간을 포착한 한 장의 스냅사진처럼 매우 실감 나게 나루터의 현장을 보여주고 있다. 나루터에는 갓을 쓴 인물 세 명과 시종 한 명, 곰방대를 입에 문 젊은 평민 한 명, 등에 지게를 진 인물 한 명 등 총 여섯 명이 등장한다. 이들은 저 멀리 배를 저어 강을 건너오는 뱃사공을 애타게 기다리고 있다. 화면 오른쪽에는 나귀를 탄 양반이 보이고 그 앞에는 나무 막대 끝에 끈이 달린 채를 들어 올리고 있는 시동이 나타나 있다. 강 건너편에서 노를 저어 오는 뱃사공에게 빨리 오라는 신호를 보내고 있는 듯 시동은 채를 들어 그를 기다리는 사람들의 급한 마음을 전하고 있다. 화면 왼쪽에는 빈 지게를 지고 서 있는 인물, 두 명의 갓을 쓴 인물들, 담배를 입에 문 젊은이가 보인다. 지게를 진 인물은 뒤돌아 있어 얼굴조차 보이지 않는다. 그러나 그는 지게에 무거운 물건을 지고 있어 힘에 겨운 듯 오른손에 막대를 꽉 짚고 있다. 바로 옆에 있는 인물은 갓을 쓰기는 했지만 도포를 입고 있지 않다. 그는 신발 역시 미투리가 아닌 짚신을 신고 있다. 그런데 그는 맨발이다. 아마도 이 사람은 행색으로 보아 양반이 아닌 가난한 중인 신분의 인물로 여겨진다. 바로 그 옆에 서 있는 갓을 쓴 사람은 오른손으로 갓을 들어 올려 멀리서 강을 건너오는 뱃사공을 바라보고 있다(그림 5). 그는 갓을 들어 올려 뱃사공이 어디쯤 왔는지를 애타게 살펴보고 있는 듯하다. 초조하게 강 쪽을 쳐다보는 그의 자세에서 나루터의 생생한 현장감을 느낄 수 있다. 반면 화면 맨 왼쪽에 있는 젊은이는 마음에 여유가 있는 듯 뱃사공 쪽은 쳐다보지도 않고 등을 돌려 담배를 피우고 있다. 갓을 들어 올리며 뱃사공의 현재 위치를 파악해보려는 인물과 담배를 입에 물고 여유를 부리는 젊은이의 상반된 자세는 이 그림을 보는 사람에게 웃음을 선사해 줄 정도로 해학적이다.

김홍도는 나루터에서 배를 기다리는 인물들의 다양한 자세와 표정을 통해 이들이 지니고 있던 다양한 심정을 극적으로 표현하였다. 강세황(姜世晃, 1713~1791)은 이 그림 위에 쓴 화평(畵評)에서 “백사장 머리에 나귀를 세워 놓고 사공을 부르고, 나그네 두세 사람도 같이 서서 기다리는 강변의 풍경이 눈앞에 완연(宛然)하다”고 논평하였다. 이 논평은 <진두대도>의 특징을 정확하게 묘사하고 있다. 강세황의 화평 중 주목되는 것은 그림에 표현된 나루터의 풍경이 마치 눈앞에 펼쳐져 있는 것 같다는 점이다. 나루터에서 배를 기다리는 사람들의 표정, 동작, 감정이 바로 느껴질 정도로 김홍도의 풍속화는 살아 움직이는 그림, 즉 활화(活畫)였다고 강세황은 평가하고 있는 것이다. 다시 말해 김홍도의 풍속화는 그림을 보는 사람의 눈앞에서 벌어지고 있는 생동감 넘치는 현장 풍경 그 자체였다. 김홍도 이전과 이후 그 누구도 이와 같이 살아 움직이는 인물들의 다양한 자세, 동작, 표정을 극적으로 묘사한 예가 없다. 마치 현대의 사진작가가 어떤 순간의 장면을 예리하게 포착하여 촬영하듯이 김홍도는 나루터에서 배를 기다리는 사람들의 모습을 생동감 넘치게 그림 속에 표현하였다.

한편 강세황은 ‘곡진물태(曲盡物態)’라는 용어를 사용하여 김홍도가 그린 풍속화의 핵심을 지적하였다. 사람, 자연, 사물이 지닌 모습을 매우 사실적으로 묘사한 것이 ‘곡진물태’이다. 김홍도의 풍속화는 그림이었지만 마치 현장 사진과 같이 그려진 장면이 보는 사람을 압도할 정도로 생생했다고 할 수 있다. 이 점에 주목한 강세황은 곡진물태가 기존의 어떤 그림에도 나타난 적이 없었으며 오직 김홍도의 풍속화에서 비로소 출현한 현상으로 파악하였다. 아울러 그는 김홍도의 풍속화에 보이는 곡진물태는 전례가 없는 일이라고 강조하였다. 천재 화가였던 김홍도는 자신만의 감각으로 이렇듯 새로운 주제와 구도를 지닌 풍속화를 탄생시켰다. 그의 풍속화 속 인물들의 자세와 표정은 너무도 생생하여 이들은 모두 살아있는 사람들 같다.

장진성
서울대학교 고고미술사학과 교수, 1966년생
공저서 『Landscapes Clear and Radiant: The Art of Wang Hui, 1632-1717』, 저서 『단원 김홍도: 대중적 오해와 역사적 진실』, 역서 『화가의 일상: 전통시대 중국의 예술가들은 어떻게 생활하고 작업했는가』 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