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중 작가 온라인 대화
②세 가지 따스함

  • 한중 작가 온라인 대화
  • 2021년 가을호 (통권 81호)
②세 가지 따스함

첫째 : 생활의 따스함

1991년 가을 깊은 밤, 꿈속에서 갑자기 술 향기를 맡았다. 깨어나서는 몸을 조금도 움직이지 않았다. 눈 한 번만 깜빡여도 이런 상황이 사라질 것만 같았다. 하지만 내가 아무리 조심을 해도 술 향기는 내 코끝에 1초도 남아 있지 않고 재빨리 사라지고 말았다. 나는 계속 몸을 움직이지 않고 그 술의 냄새를 추억했다. 그건 양곡의 향기였다. 정확히 말하자면 옥수수 술의 냄새였다. 약간 눌어붙은 냄새가 섞여 있었다. 머릿속에 문득 아버지가 부뚜막 옆에 서서 술을 달이던 장면이 떠올랐다. 시루와 벽, 수증기, 그리고 타닥타닥 타는 장작의 모습이 차례로 떠오르면서 마을 전체가 되살아났다. 고향을 떠나고 여러 해가 지나 아버지가 술을 달이던 장면이 내 몸에 기이한 화학반응을 일으켰다. 어두운 밤에 아버지를 그리워하면서 아버지의 일생을 상상하고, 아버지의 사랑을 상상하고, 아버지의 비밀을 상상하고, 술에 취한 아버지의 상상을 상상했다……. 다음 날, 나는 아버지가 술을 달이던 모습을 소재로 단편소설 『환상의 마을(幻想村莊)』을 쓰기 시작했다. 이는 내가 처음으로 내 가족을 소재로 하여 쓴 작품으로서, 쓰는 내내 유년시절 아버지가 베풀어주셨던 따스함을 되새겼다.

그 전에는 산문의 형식으로 어머니를 그린 적이 있었다. 어머니가 내게 베풀어주신 따스함은 훨씬 더 많았다. 내가 막 세 살이 되었을 무렵, 어머니는 나를 돌보면서 집단노동에 참가해야 했다. 괭이로 땅을 파야 할 때, 어머니는 나를 등에 업고 있었고 등에 지는 광주리로 양곡을 날라야 할 때는 나를 가슴팍에 안으셨다. 나는 어머니의 몸에 매달려 있는 어린 원숭이처럼 어머니의 노동에 따라 앞뒤로 자리를 옮겨야 했다. 내가 공부를 위해 외지로 나가야 했을 때, 어머니는 남는 시간을 전부 쏟아 가금을 키워 판 돈으로 학비와 생활비를 마련해주셨다. 어머니는 정성스런 돌봄과 아낌없는 헌신으로 나의 영혼에 감동의 씨앗을 심으셨다. 그리하여 현성(縣城)에서 고등학교를 다니는 동안 나는 작가가 되기로 결심했다. 목적은 부모님을 비롯한 가족들에 대한 감동을 써내는 것이었다. 어떤 작가는 어린 시절에 겪었던 어려움이 가장 훌륭한 글쓰기 스승이었다고 말하기도 한다. 하지만 나는 여기에 한마디 보태고 싶다.

어려움이 있다고 해서 반드시 작가가 되는 것은 아니다. 작가라면 반드시 그 어려움 속에서 감동을 만들어낼 수 있어야 한다. 그리고 감동을 만들어내기 위한 전제는 그 전에 따스함을 경험하는 것이다.

 

둘째 : 책읽기의 따스함

생활이 주는 따스함 외에 나는 책읽기에서도 따스함을 얻는다. 지금 지난 날들을 돌이켜 생각해 보면 책읽기의 최초의 감동은 루쉰 선생의 글에서 왔던 것 같다. 루쉰은 인력거꾼에 대해서도 존경심을 가졌고(산문「작은 일 한 가지(一件小事)」) 어린 시절의 친구인 룬투(閏土)에 대해서도 오랜 헤어짐에 대한 자책감을 느낌으로써(단편소설「고향」) 하층 사회 출신 소년이었던 내게 아주 깊은 따스함을 가져다 주었다. 이는 위대한 작가가 자신을 책망함으로써 자신을 비하하는 사람들에게 주는 심리적 보상이었다. 이에 대해 나는 이것이야말로 문학의 가장 아름다운 기능이라고 생각했다. 나의 독서량은 갈수록 늘어갔다. 나는 위다푸(郁達夫)의 일기에서 진지함과 성실함을 읽었고 션총원의 『변성(邊城)』에서 시골소녀의 세밀한 고민을 읽었으며 카프카의 『변신』에서 갑충으로 변한 인간의 절망을 읽었고 『적과 흑』과 『보바리 부인』 『안나 카레니나』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 『콜레라시대의 사랑』 등의 명저에서 인간의 복잡한 감정들을 읽었다. 이러한 복잡한 감정들은 예외 없이 내 영혼에 자양을 공급했고, 이를 통해 나는 인생을 이해하고 인성에 대한 이해를 기초로 하여 점점 강대해졌다. 이는 또 다른 따스함이었다. 이러한 따스함은 동시에 내게 따스함에 대한 글쓰기를 가르쳐주었다.

 

셋째 : 글쓰기의 따스함

1996년, 나는 중편소설 『언어 없는 생활(没有語言的生活)』을 완성했다. 이 소설에서는 한 특수한 가정의 이야기를 묘사하고 있다. 아버지 왕라오빙(王老炳)은 말벌에 쏘여 시력을 잃었고 아들 왕쟈콴(王家寬)은 귀머거리인데 벙어리인 차이위쩐(蔡玉珍)을 아내로 맞게 된다. 어느 날 저녁, 차이위쩐이 누군가에게 겁탈을 당한다. 그녀는 벙어리이기 때문에 겁탈을 당하고도 그런 사정을 제대로 말하지 못한다. 귀머거리 왕쟈콴은 차이위쩐의 옷매무새가 흐트러져 있는 것을 보고는 아버지 왕라오빙에게 위쩐이 누구가에게 겁탈을 당한 것 같다고 말한다. 왕라오빙이 차이위쩐에게 묻는다. “너를 겁탈한 자가 누구인지 보았느냐?” 차이위쩐은 고개를 가로젓는다. 왕라오콴이 말한다. “아버지, 위쩐이 고개를 가로젓네요.” 왕라오빙이 또 묻는다. “그 자가 누구인지 정확히 보지 못했다면, 그 자의 얼굴에 무슨 상처라도 남겼느냐?” 차이위쩐이 고개를 끄덕인다. 왕쟈콴이 말한다. “아버지, 위쩐이 고개를 끄덕여요.” 왕라오빙이 묻는다. “어디에 상처를 남겼느냐?” 차이위쩐은 두 손으로 얼굴을 할퀸 다음 또 손으로 아래턱을 쓰다듬는다. 왕쟈콴이 말했다. “아버지, 위쩐이 손으로 얼굴을 할퀴고 또 손으로 턱을 쓰다듬네요.” 왕라오빙이 말한다. “손으로 그의 얼굴을 할퀴었다는 게냐 아니면 턱을 할퀴었다는 게냐?” 차이위쩐은 고개를 끄덕였다가 또 좌우로 흔든다. 왕쟈콴이 말한다. “방금 위쩐이 고개를 끄덕였다가 또 좌우로 흔들었어요.” 왕라오빙이 묻는다. “그 자의 얼굴을 할퀴었느냐?” 차이위쩐이 고개를 끄덕인다. 왕쟈콴이 말한다. “위쩐이 고개를 끄덕였어요.” 왕라오빙이 묻는다. “그의 아래턱도 할퀴었느냐?” 차이위쩐이 고개를 가로젓는다. 왕쟈콴이 말한다. “위쩐이 고개를 가로저었어요.” 차이위쩐은 그 자의 턱에 수염이 많이 났다는 걸 말하고 싶어 입을 벌려보았지만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결국 그녀는 화가 나서 울음을 터뜨리고 만다. 그녀는 왕라오빙의 위아래 턱에 굵은 수염이 잔뜩 나 있는 것을 보고는 손을 뻗어 왕라오빙의 수염을 만진다. 왕쟈콴이 말한다. “위쩐이 아버지 수염을 만졌어요.” 왕라오빙이 말한다. “위쩐, 그러니까 넌 그 자가 수염이 났다는 걸 말하고 싶은 게냐?” 차이위쩐이 고개를 끄덕인다. 왕쟈콴이 말한다. “위쩐이 고개를 끄덕였어요.” 이렇게 그들은 상대방의 건강한 기관을 이용하여 어렵사리 소통에 성공한다. 어떤 독자들은 이 대목을 읽으면서 눈가가 촉촉이 젖었다고 한다. 이 대목에서 따스함을 느꼈다는 것이다.

 

번역 : 김태성

둥시(東西)
소설가, 중국 광시 장족자치구 작가협회 주석, 광시민족대학 창작센터장, 1966년생
장편소설 『메아리』 『운명 바꾸기』 『Mr.후회남』 『뺨 때리는 찰진 소리』 , 중편소설 『언어 없는 생활』 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