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특집
④청소년 독서의 현장에서

- 오늘 읽는다고 내일이 달라질까

  • 기획특집
  • 2021년 가을호 (통권 81호)
④청소년 독서의 현장에서

- 오늘 읽는다고 내일이 달라질까

책 읽으면 놀림받는다는 말 

청소년들은 책을 좋아할까. 연구에 따르면 중·고등학교에서 꾸준히 자유 독서를 하는 학생의 비중은 약 10%라고 한다.1) 이 비율은 청소년 독서동아리 참가율 10%와 공교롭게도 비슷하다.2) 한 학급 인원을 30명이라 보면, 교실에서 자발적으로 책을 읽는 아이는 세 명 정도이고, 한 학급에서 독서모임 한 팀도 제대로 꾸려지지 않는 셈이다. 책 읽는 청소년은 소수인 거다.

이보다 흥미로운 것이 있다. ‘책을 많이 읽는 친구에 대한 이미지는 어떠한가’를 청소년들에게 물었는데, ‘똑똑하고 아는 것이 많을 것 같다’는 예상 가능한 답이 64.1%다. 한편 ‘친구들에게 인기가 있을 것이다’고 답한 비율은 1.2%였다.3) 이 1.2%가 예사롭지 않게 여겨졌다. 책 읽는 청소년이 또래 집단에서 어떤 이미지로 받아들여지고 있는가를 알 수 있기 때문이다. 한 초등학교 교사는 책 읽는 아이들이 놀림감이 되고 있다 한다. 학부모는 학생들의 독서량 하락 이유로 책 읽는 것을 부끄러워하는 학교 문화를 꼽고 있다.4)

청소년기는 또래 집단의 압력에 크게 영향을 받는 시기다. 더구나 대부분의 청소년들은 학교에서 집단생활을 하고 있기에 훨씬 더 즉각적인 영향을 주고받는다. 또래 집단에서 책을 읽는 것이 멋진 행위로 받아들여지기보다 놀림받는 일로 인식되는 것은 이미 악순환의 고리에 접어들지 않았을까 싶다. 집단 내에서 놀림받는 일은 더욱 하지 않으려 할 것이 자명한 까닭이다. 정작 우려되는 것은 청소년 독서량 감소가 아니다. 책을 읽는 것이 소수 학생들만의 문화가 되지 않을까. 이 점이 걱정된다.

 

책을 재미있어 할 리 없다?

1학기 기말고사가 끝나고 방학을 일주일 앞둔 때였다. 내가 가진 책들 중 최근 1~2년 이내에 출간된, 청소년들이 좋아할 만한 책들을 50권 정도 골라 상자에 담았다. 청소년 소설도 있고 만화도, 어른들이 읽는 책도 있었다. 학생들은 국어시간에 책 상자에서 책을 골라 읽는다. 다음 시간이 되면 자신이 읽던 책을 찾아서 이어 읽는다. 학급별로 세 시간씩 읽고, 이 중 네다섯 권을 선정해서, ‘삼척여고 1학년 0반이 권하는 책’을 추천하는 글을 공동으로 작성한 뒤 청소년 책 추천 사이트(북틴넷)에 올리기로 했다. 나는 이 활동을 방학맞이 특별 프로그램이니 뭐니 하며 호들갑스럽게 제안하면서도 아이들의 시큰둥한 반응을 예상했다. 수행 평가도 아니고, 뭐 마음이 의자에 붙을 만한 시기도 아니어서 큰 기대 없이 시작했다.

허나 아이들은 재미있어했다. 책 읽기를 시작하려면 책 읽을 순서 조정을 먼저 해야 할 정도였다. 인기 있는 책들은 지난 시간에 읽던 친구가 있는데도 다른 친구가 먼저 가지고 가기 때문이다. 그 책을 가지고 간 친구를 찾아서, 먼저 읽던 친구가 있음을 설명하고 책 분배를 조정해야 했다. 책에 빨려 들어갈 때 아이들 특유의 표정이 있다. “너, 지금 책 재미있지?” 살짝 물으면 다른 차원의 세상에서 방금 도착한 것 같은 표정으로 “예.” 대답할 때, 잠깐 스치는 그 표정을 보는 일은 은밀하고도 특별하다.

이 이야기를 지인에게 했더니 그럴 리가 없단다. 기말고사 후 성적 확인까지 끝나면 학교는 더 이상 존재 의미가 없는데 아이들이 책을, 그것도 교사가 가지고 온 책을 재미있게 읽을 리가 없다는 것이었다. 교사가 착각하는 거라 하면서 차라리 좋은 영화를 보여주라고 나에게 충고했다. 하지만 이것은 사실이었다. 아이들은 책 읽기를 재미있어했다.

 

삶과 만난 책은 힘이 세진다

소년원에서 독서수업을 한 적이 있다. 1년 동안 수업을 진행하면서 일곱 명의 작가를 교실에 초대했는데 학생들이 뜨겁게 호응한 작가들이 있었다. 김동식, 박찬일, 이종철5) 작가였다. 뒤늦게야 세 작가의 공통점을 알았다. 그것은 ‘일하는 손’이었다. 세 작가 모두 몸을 쓰는 일을 했거나 하고 있었다. 김동식 작가는 십 년 동안 주물공장에서 일했던 이야기를, 박찬일 작가는 이탈리아에서 요리를 배우며 일했던 이야기를 학생들에게 들려주었다. 이종철 작가의 『까대기』는 만화가의 꿈을 이루기 전에 택배 노동을 하던 6년을 담은 작품이다.

소년원 학생들은 ‘바깥세상’에서 ‘나쁜 짓’을 많이 한 아이들이었다. 소년원까지 오게 된 삶이었으니 짐작이 갈 것이다. 이 아이들이 나쁜 짓만큼 많이 한 것이 있었다. 돈을 벌기 위한 일이었다. 아이들은 15세 정도에 건축현장의 일, 전단지 돌리기, 택배 상하차, 음식 배달 등 꽤 다양한 일을 경험했다. 어린 나이에 돈을 벌기 위해 일을 많이 했다는 것은 여러 가지를 말해주겠지만, 그중 하나는 이 아이들이 따뜻하고 든든한 울타리 안에서 성장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학생들은 ‘일하는 손’을 만난 책에 푹 빠졌다. 이 아이들은 독서의 경험이 적고, 책을 읽는 힘이 약했다. 책에 대한 흥미도 낮았다. 하지만 자신의 삶과 맞닿는 지점이 있는 책에 마음을 열었다. 이종철 작가는 이런 말을 했다. 자신이 만났던 청소년 독자들은 작품 안의 택배 노동을 직업에 대한 이해로 받아들이는데, 소년원 학생들은 ‘공감’하는 마음이어서 놀랐다고 했다. 세 권의 책은 ‘누군가’의 삶과 만났다. 삶과 만난 책은 힘이 세어졌다.

 


독서의 즐거움이 두 배가 되는 방법

지난봄 국어 시간, 여섯 가지 주제 도서를 정하고, 학생들이 이 중 한 권을 골라서 4~5명의 친구들과 같은 책을 읽고 글을 쓰고 독서토론6)을 하는 수업을 4주 동안 진행했다. 책 대화가 이루어지는 시간, 나는 모둠마다 다니면서 진행 상황을 물었다. 독서토론을 하던 학생들이 고개를 돌려 나를 보았을 때 나는 적잖이 놀랐다. 아이들의 표정이 평소보다 말랑하고 조금씩 들떠 보였기 때문이었다. 뭔가 재미난 일에 골몰하는 타인의 얼굴을 훔쳐보는 기분이었다. “지금 잘 되어가?”라고 물었는데, “지금 너무 좋아요!”라는 답이 돌아왔다. 별문제 없이 진행되느냐 물었을 뿐인데, 지금 너무 좋다는 동문서답을 한 것이다.

4주(16시간) 동안 책 한 권을 읽고, 글을 쓰고 친구들과 토론 주제 네 가지를 정해 독서토론을 한다. 독서토론 녹음한 것을 풀어서 말을 글로 다듬어 보고서를 제출한다. 시간도 정성도 많이 들어가는 일이다. 시작부터 끝까지 협력해야 결과물을 제출할 수 있다. 만만하지 않은 과정이다.

“함께 하니 즐거움이 두 배였다. 책을 읽고 토론하면서 친구들의 생각을 알 수 있었다. 내 생각을 말하는 일에 조금 자신감을 가지게 되었다.”

“토론하며 책을 읽는 것이 이렇게 재미있는 일인지 처음 알게 되었다. 좋은 추억을 만들게 되었다.”

학생들의 소감이다. 이 수업은 사실 수행 평가다. 수행 평가를 하면서 친구들과 친해졌다 한다. 다음에도 친구들과 책 이야기를 나눠 봐야겠다고 한다. 도대체 함께 책을 읽는 시간에 무슨 일이 일어나는 걸까. 어떤 화학 작용이 일어나, 아이들의 표정이 말랑해지고 친구들과 친해지고 이 일이 추억이 되는 걸까. 그리고 다시 독서토론을 하고 싶어지는 걸까. 나도 잘 모르겠다.

 

흐름을 타면 판세가 달라진다

이런 일이 있었다. 미등록 이주 노동자의 삶을 다룬 『로지나 노, 지나』7)를 읽은 모둠이었는데, 한 학생(미라-가명)은 책을 읽을 마음도 읽을 힘도 부족했다. 미라는 친구들이 책을 읽는 동안 엎드려 잤고 독서토론을 할 때는 입을 다물고 있었다. 활동이 끝난 후, 같은 모둠의 친구가 미라에 대해 이런 평을 했다.

“친구들이 의견을 냈을 때 미라는 반응을 해주었으나 자신의 의견을 내지 않아서 모둠의 토론이 원활하게 진행되지 못했다. 보고서 편집 담당이었지만 제대로 하지 못해서 다른 친구가 대신했다.”

미라는 동료를 애먹인 친구였다. 나는 미라에 대한 이런 평가를 예상하고 있었다.

“책에 이해가 안 가는 부분들이 많아서 책을 끝까지 읽지 못했다. 조원들에게 피해만 준 것 같아서 너무 미안하다.

다음에 기회가 생기면 열심히 해서 조원들에게 힘이 되고 싶다.”

미라가 자신의 활동을 평가한 내용이다. 뜻밖이었다. 미라의 평소 태도를 봤을 때, ‘미안하다’라고 말하리라고는 상상하지 못했던 까닭이다. 피해를 끼쳐서 미안했고, 다음에 도움을 주고 싶다는 마음이었다. 미라의 말은 진심이다. 진심이 아니더라도 미라는 조직의 흐름상 미안할 수밖에 없었던 거다.

미라의 경우가 흥미로웠다. 내가 근무하는 학교에 한정지어 생각해 보자. 1학년 160명 전원이 한 달 동안 삼삼오오 무리지어 책을 읽고 독서토론을 한다. 160명은 대체로 이 일을 즐거워하고 보람 있다 여겨서 열심히 참여한다. 물론 학생들이 ‘함께 읽기’에서 재미와 의미를 느끼는 것은 저절로 이루어지지 않는다. 교사가 의도한 것들이 곳곳에 섬세하게 배치되어 있어서 가능한 일이다. 아무튼 160명이라는 집단에서 책을 읽는 일은 어떤 흐름을 탄 것이다. 17세의 여학생들은 또래 집단의 압력에 크게 좌우되는 인생의 시기를 통과하고 있다. 이제 읽지 않는 자, 쓰고 토론하는 것에 협력하지 않는 자는 소수가 되었다. 미라가 미안할 수밖에 없는 정황이다. 한 공동체에서 책을 읽는 일이 일정한 흐름에 올라서면 이렇게 판세가 달라진다.


책을 읽어서 뭐가 달라질까
세상은 바닥이고 절망이다. 세상에 미안한 것이 있다. 아이들과 함께 있을 때, 이 세상이 바닥이라는 것을 나는 종종 잊는다. 우리(나와 아이들)는 함께 있다 보면 웃고, 웃다 보면 잊는다. 이 ‘잊음’이 종종 미안하다. 절망을 잊을 새 없이 바닥에 내동댕이쳐지고 벼랑에 내몰리는 이들이 사회에 있음을 아는 까닭이다.

학교의 현실도 그다지 아름답지는 않다. 대학 진학을 위해서 모든 활동이 정량화되고 성적 소수점까지 등급으로 계산된다. 이러한 현실에서도, 책을 읽고 독서토론을 하는 학생들의 마음은 수시로 일렁이고 흔들린다. 자신의 삶과 책이 만나는 순간을 목격하기 때문이고, 사람과 사람의 삶이 맞닿는 짜릿함을 알아채기 때문이다. 책이 들려주는 이야기를 듣고 나의 이야기를 하고 친구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자신의 몸이 ‘이야기’로 무한정 채워지는 신기한 경험을 하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해서 뭐가 달라질까. 오늘 책을 읽는다고, 오늘 독서토론을 한다고 내일이 달라지겠는가. 그럴 리 없다. 그저 우리는 조금 애를 쓰고 있는 거 아닐까. 어느 방향을 향해 걸어야 하는 걸까. 서로 묻고 함께 궁리하는 중일 거다. 다른 곳 아닌 ‘학교’에서.

서현숙
강원 삼척여자고등학교 국어교사, 1972년생
저서 『소년을 읽다』 『독서동아리 100개면 학교가 바뀐다』(공저) 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