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특집
③삶을 위한 리터러시를 향한 여정

  • 기획특집
  • 2021년 가을호 (통권 81호)
③삶을 위한 리터러시를 향한 여정

“삶의 리터러시, 삶을 위한 리터러시란 ‘좋은 삶’을 위한 리터러시입니다. ‘옳음’이라는 이름으로 타자의 삶을 억압하는 리터러시가 아니에요. ‘좋은 삶’을 생각하도록 모두를 초대하는 것이 삶의 리터러시입니다. 이런 점에서 리터러시는 모두를 해방하고 자유롭게 하며, 그 자유로운 사람들이 서로서로 다리를 놓으면서 그것이 바로 ‘좋은 삶’이라는 것을 깨달아가는 과정이 아닐까 합니다” (김성우 & 엄기호, 『유튜브는 책을 집어삼킬 것인가』, 277쪽).

 

미디어 리터러시, 생태 리터러시, 뉴스 리터러시, 금융 리터러시, 비판 리터러시. ‘리터러시’의 개념은 이제 교육과 문화를 설명하는 핵심 개념으로 잡아가고 있다. 하지만 용어의 사용범위가 급속하게 확산되면서 ‘리터러시’를 정의하는 핵심 요소는 무엇인지에 대한 합의는 점점 어려워지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유튜브는 책을 집어삼킬 것인가』는 리터러시의 정의와 역사를 간략히 짚고 변화하는 리터러시 생태계의 특성을 논의하면서 앞으로 리터러시 교육이 나아가야 할 방향을 제시한다. 무엇보다 그간 시험과 텍스트 중심의 리터러시에서 주변화된 맥락, 관계, 권력 등의 키워드를 면밀히 살피고 이를 통해 궁극적으로 ‘삶을 위한 리터러시’가 어떻게 가능한지 이야기한다.

유튜브는 책을 집어삼킬 것인가 : 네 가지 문제의식

책을 집필하면서 필자가 가졌던 문제의식은 크게 네 가지로 압축된다. 첫째, ‘삶과 ‘리터러시의 분리’이다. 글이건 영상이건 근본적으로 모든 미디어는 삶의 맥락에서 창조된다. 하지만 일종의 ‘완제품’이 된 미디어는 본래의 맥락에서 벗어나 독자 혹은 사용자의 세계로 들어간다. 이 과정에서 생기는 긴장과 갈등은 피할 수 없다. 창작자의 세계와 독자/사용자의 세계는 엄연히 다르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매체가 창작자의 삶과 독자(혹은 시청자)의 삶을 이어주는 것이 아니라 다른 제도와 맥락의 부속품이 될 때 세계와 자신을 이해하는 길로서의 리터러시는 설 자리를 잃는다. 예를 들어 과학 이론을 다룬 논문의 일부가 영어 모의고사의 지문으로 사용되었다고 하자. 모두 같은 방식으로 해당 지문을 읽어내진 않겠지만 과학의 발전에 일익을 담당한 글이 대다수 학생들에게는 ‘난이도 높은 지문’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닌 것이 된다. 해당 글이 과학의 세계로 나아가는 문이 되기보다는 평가점수가 적절하게 분포될 수 있도록 만드는 시험-기계의 부속이 되어버리는 것이다. 글에서 삶은 탈각되며 글을 읽어내는 행위는 세계를 확장하는 자유의 경험이 아니라 자신을 기존 제도의 틀 안에 배치하는 ‘구속의 의례’로 전락한다.

둘째, ‘새로운 리터러시의 출현’이다. 필자의 학교교육을 돌아보면 크게 두 가지 텍스트가 지식과 정보의 중심을 이루었으니 바로 교과서와 참고서였다. 여기에 교사의 설명이 곁들여져 지식의 근간을 이루었다. 즉 학교에서 습득한 지식은 교과서와 참고서로 매개되는 교사와 학생의 상호작용에서 형성되었다고 할 수 있다. 이 외의 지식의 원천은 대개 3-4개의 TV 채널과 일간지 1-2개에 그쳤다. 비공식적인 영역에서 소비되는 매체는 단행본과 잡지로 구성되었다. 여기에서 알 수 있는 것은 많은 이들의 세계가 기본적으로 ‘편집된 미디어’에 기반하고 있었다는 것이다. 양적으로도 손에 꼽을 수 있을 정도의 매체들이었다. 하지만 지금의 세계는 다르다. 학습자들이 즐겨 찾는 인스타그램, 틱톡, 페이스북, 트위터 등의 소셜미디어는 누군가에 의해 편집된 의견과 소식을 전하지 않는다. 거기에는 전문 편집자가 존재하지 않으며 개개인이 쏟아내는 텍스트와 이미지, 영상을 있는 그대로 매개한다. 이는 리터러시의 기반이 소수의 사람들에 의해 선별되고 편집되는 세계에서 수많은 사람들이 펼쳐내는 ‘무편집의 세계’로 변화했음을 의미한다. 이에 더해 세계의 여러 사건들은 유튜브를 대표로 하는 동영상 플랫폼들에 의해 실시간으로 중계된다. 학습자들은 이제 걸러진 세계를 만나는 것이 아니라 날 것 그대로의 세계를 경험한다. 이것은 단지 매체가 다양해졌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완전히 다른 세계로의 진입을 뜻한다. 지식의 구성이 참고서와 교과서, 일간지로 매개되던 세계에서 개개인이 미디어가 된 세계로의 변화는 지식 공론장의 성격을 완전히 바꾸어 놓았다. 그야말로 새로운 리터러시가 출현한 것이다.

 

세 번째는 언어교육의 방향이다. 언어를 왜 배우느냐는 질문에 많은 사람들은 도구적 이유를 제시한다. 학교 수업이 있고 내신점수를 따야 해서, 대학 진학에 필요해서, 취업에 필요한 ‘스펙’을 쌓기 위해서 등의 이유가 대표적이다. 하지만 이것이 전부일까? 필자는 언어를 배우고 리터러시의 지평을 넓히는 데 크게 세 가지 이유가 있다고 생각한다. 먼저 성찰하는 인간으로의 성장이다. 우리의 말과 글은 누군가에게 전달되기 이전에 우리 자신과 가장 먼저 만난다. 나의 말은 나를 떠나기 전에 내 안에서 공명하는 소리이고, 그 누구보다 나에게 먼저 도달하는 메시지이다. 나의 글은 누군가에 의해 읽히기 전에 내가 가장 먼저 읽게 된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의 말은 상대에게 가닿기 전에 내 안에 차곡차곡 쌓인다. 그리고 그것은 자신의 생각과 감정, 정체성을 만들어 간다. 우리의 말글은 메시지를 전달하고 의미를 협상하기 전에 자신을 빚어내는 도구인 것이다. 그런 면에서 우리는 자신의 말글을 끊임없이 성찰하고 의심해야 한다. 읽기와 보기, 쓰기와 만들기를 통한 성찰은 언어교육에서 더욱 강화되어야 할 영역이다.

다음 목적은 소통하는 인간으로서의 성장이다. 여기에서의 소통은 메시지의 교환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소통은 무엇보다 ‘타자의 세계로의 접속’이다. 나와 같은 생각과 의견을 가지고 있고 비슷한 삶의 궤적을 가진 이들과의 대화를 넘어 다른 세계와 타자에 대한 이해가 절실한 것이다. 한국에 들어와 일하고 있는 외국인 노동자들의 삶과 생각은 어떠한가? 나와 다른 종교적 견해를 갖고 있는 이들은 세상을 어떻게 이해하는가? 나와 성적 정체성이 다른 이들은 어떤 경험을 하고 있는가? 나와 다른 지역에 살고 있는 이들은 대한민국을 어떻게 경험하는가? 이런 질문에 답할 수 있는 글과 영상에 관심을 기울이고 관련된 책을 찾아 읽는 일이 필요하다.

언어교육의 마지막 목표는 연대하는 인간으로서의 성장이다. 우리가 책을 읽고 영상을 보고 다양한 미디어를 경험해야 할 이유는 단지 개인의 발달에 있지 않다. 우리는 매체를 통해 변화하고, 그 변화는 타인에게로 이어진다. 그러한 변화의 연쇄 속에서 사회는 조금씩 변해간다. 그런 면에서 읽고 쓰고 보고 만들어내는 행위는 우리 모두가 조금씩 변화하고 또 서로를 변화시킴으로써 역사와 사회를 바꾸어 나가는 작업이다. 이 점을 기억한다면 리터러시의 실천은 사회적인 연대에 다름 아니다. 이는 리터러시의 본령을 매체를 통한 지식의 축적으로 보는 관점에서 벗어나 연대의 실천으로 보는 관점으로의 전환을 요구한다. 『유튜브는 책을 집어삼킬 것인가』에서는 이를 바벨탑으로서의 리터러시에서 다리로서의 리터러시로의 전환으로 표현한다. 개인 안에 쌓이는 지식이 아닌 소통하고 연대하는 활동으로서의 리터러시에 방점을 찍는 것이다.

마지막으로는 ‘엇갈리는 맥락이 일상화된 세계’이다. 이는 위의 두 번째 논점과 밀접히 연결되어 있는데, 필자의 경험을 예시로 들어보려고 한다. 코로나19가 발생하기 전이었다. 학교에 가기 위해 택시를 탔다. 승차를 하면 택시 기사께서 “어디 가십니까?”라고 묻는 게 보통이지만 이번엔 달랐다. “그거 아세요?”라고 다짜고짜 묻는 것이었다. 당황한 내게 그는 “지금 난리가 났다, 정부가 바뀌고 나서 북한에 우리 세금을 퍼다 주고 있다”고 말했다. “정부에서 세금을 걷어 ○○은행을 통해서 북한군 병사들에게 월급을 주고 있다”는 것이었다. 내가 강한 의구심을 표시하자 그는 “요즘 젊은 양반들이 세상 물정 모른다”, “유튜브 보면 다 나온다”며 질책했다.

그렇게 ‘세상 물정 모르는’ 나는 택시에서 내리며 생각했다. ‘기사님의 세계와 나의 세계가 겹치는 부분이 있을까? 유튜브 채널뿐 아니라 그분이 경험하는 미디어와 내가 경험하는 미디어가 완전히 다르다면 우리의 세계는 서로 만나지 않는 ‘평행우주’ 아닐까? 그렇게 완전히 다른 맥락을 살아가는 상황에서 우리는 어떻게 소통할 수 있을까?’

이 경험이 말해주는 것은 명확하다. 이제 우리는 자신만의 맥락을 구축할 수 있는 시대를 살아가고 있다. 소셜미디어에서 원하는 사람과만 연결을 맺는다. 내가 원하는 유튜브 채널만 구독하여 지식과 정보를 획득한다. 비슷한 성향과 관심을 가진 사람들로 이루어진 채팅방에서만 대화를 나눈다. 그렇게 우리는 자신과 비슷한 성향을 가진 사람과 정보로 ‘자신만의 방’을 만든다. 끼리끼리 모이는 것이야 예전부터 그래왔던 것 아니냐고 반문할지도 모른다. 문제는 디지털 환경이 사실상 24시간 우리를 규정하는 지경에 이르렀다는 것이다. 끼리끼리 정서는 점점 더 부족적 사고로 진화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리터러시는 다른 맥락을 상상하고 이해하며 때로는 비판하는 일과 분리될 수 없다.

매체 간의 대결을 넘어 삶을 위한 리터러시로

 

이상과 같은 교육 및 사회문화적 지형 변화에 대한 진단은 현재의 미디어 생태계에서 리터러시 교육이 나아가야 할 바에 대해 몇 가지 함의를 제공한다. 가장 먼저 넘어서야 할 것은 “책이냐 유튜브냐”라는 이분법적 대립구도이다. 중요한 것은 어떤 매체를 더 우선시할 것인가가 아니라 여러 매체의 조합을 통해 어떤 삶을 추구할 것인가이기 때문이다. 유튜브로 대표되는 영상문화의 급부상 속에서 ‘문자 대 영상’이라는 대립구도가 그럴듯하게 보일지 모르지만 현 사회의 기술문명은 문자와 영상 그리고 다양한 매체를 모두 포괄하는 리터러시의 구성과 실천을 요구한다. 여러 매체는 각각의 강점과 약점을 가지고 있기에 이들을 유기적으로 엮는 ‘멀티리터러시(multiliteracies)’ 디자인이 필요한 것이다.

 

이미 많은 교사들과 미디어 전문가들은 다양한 매체를 엮어 수업을 구성하고 평가를 실시하고 있다. 하지만 여전히 학교 리터러시의 목표는 텍스트를 기반으로 한 문해력, 그중에서도 표준화된 이해에 초점을 맞춘다. 학년급이 올라갈수록 수능이라는 체제에 교과 전반이 포섭되는 경향을 보이는 것이다. 물론 이것이 교사나 학생 개개인의 문제는 아니다. 제도적, 사회경제적 제약과 압력이 엄연히 존재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런 구조에 문제를 계속 제기하면서도 리터러시의 지형을 조금씩 바꾸어 낼 수 있는 실천이 필요하다.

이를 위해 텍스트와 이미지, 웹툰과 영상 등 다양한 미디어가 맺을 수 있는 관계를 다각도로 살펴야 한다. 먼저 전통적인 텍스트 중심의 수업에 영상을 마중물로 사용할 수 있다. 학생들의 흥미와 준비도를 높이기 위한 미디어의 활용으로 이미 널리 채택되고 있는 방식이다. 두 번째는 텍스트를 영상으로, 영상을 텍스트로 변환시키는 프로젝트이다. 매체를 오가면서 각 매체의 강약점을 파악하고 메시지를 효율적으로 구성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는 것이다.

중간에 메모, 아우트라인, PPT, 만화, 사진 에세이 등 다양한 미디어를 넣어 단계를 다양화할 수 있다. 다음으로는 ‘주석(annotation)’으로서의 매체 활용을 적극적으로 활용할 수 있다. 문자 매체를 보고 영상 코멘트를 남기거나 영상을 보고 텍스트 주석을 달아보는 활동이다. 이때 해당 매체 전체에 대한 코멘트를 한꺼번에 작성하기보다는 매체의 전개 방식을 분석하고 각 요소마다 주석을 다는 방식이 적절하다. 예를 들어 3분짜리 영상에 대한 분석 과제를 수행하기 위해 영상의 주요 장면을 캡처하고 이에 대한 주석을 작성한 뒤, 이들을 모아 하나의 완결된 글로 제출하는 방식을 택할 수 있다. 마지막으로는 영상을 최종 산출물로 하는 프로젝트 수업을 기획하고 단계마다 토론과 텍스트를 중심으로 한 산출물을 배치하는 방식을 생각할 수 있다. 수준 높은 영상을 만드는 과정에서 말글이 의미 있는 기여를 할 수 있음을 깨닫도록 하는 것이다. 이러한 일련의 활동을 통해 ‘텍스트를 그려내고 영상을 읽어내는’ 입체적 문해력을 길러낼 수 있다.

결국 문제는 어떤 미디어가 중심이 되어야 하느냐가 아니라 어떻게 삶을 매체의 중심에 놓을 것인가이다. 즉 우리가 물어야 할 것은 ‘책을 얼마나 읽었는가’ 혹은 ‘영상을 얼마나 잘 다루는가’가 아니라 다양한 매체(media)가 우리 삶의 변화를 어떻게 매개(mediation) 했느냐이다. 미디어 생태계가 급격히 변화하는 이때, 각자의 자리에서 ‘삶을 위한 리터러시’를 디자인하고 그 성과를 공유하는 사회적 실천이 절실하다.

김성우
리터러시 연구자, 서울대학교 영어교육과 강사, 1973년생
저서 『어머니와 나』 『단단한 영어공부』 『영어교육과 IT』(공저)
『유튜브는 책을 집어삼킬 것인가』(공저) 『재난의 시대, 교육의 방향을 다시 묻다』(공저), 역서 『리터러시와 권력』(감수), 『수업혁명』(공역) 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