번역서리뷰
아버지의 시대, 아들의 기억

- 일역 김원일 장편소설 『아들의 아버지』

  • 번역서리뷰
  • 2021년 겨울호 (통권 82호)
아버지의 시대, 아들의 기억

- 일역 김원일 장편소설 『아들의 아버지』

 

김원일(1942년~) 작 장편소설 『아들의 아버지』(2013년)의 일본어역(『父の時代―息子の記憶』)이 서점칸칸방[書肆侃侃房]에서 엔도 준코·김영호·김현철 공역으로 2021년 6월 간행되었다. 일본 후쿠오카시에 있는 이 출판사는 2016년부터 『한국여성문학』 시리즈(전10권)를 출간하고 2019년부터 『한국문학의 원류』 시리즈를 내고 있는데, 이 시리즈의 한 권으로 대산문화재단의 한국문학 번역연구출판지원 사업에 의해 간행한 것이다.

번역은 원어민(네이티브)과 함께 하는 것이 좋다는 말은 일반적으로 통용된다. 이 번역은 일본어 네이티브 1명과 한국어를 모어로 하는 역자 2명이 공동 번역하여 완성도를 높이기 위해 양쪽 언어 사이에 협력한 흔적이 뚜렷하다. 이 소설의 문장은 서정적이라기보다는 서사적이며 사회 현상과 그 시대를 서술하여 형용사 등의 수식어가 적고 읽기 쉽다. 그래서 다른 경우보다는 번역하기에 수월한 점도 보인다. 그렇다고 해서 번역 자체가 쉬운 일이라는 말은 아니다. 경상도 사투리를 일관되게 옮기는 것과 특히 대화체의 문말 표현을 살려 번역하는 일은 간단치가 않았을 것이다.

필자의 경우는 장편소설 하나를 번역하고 나서 너무 힘든 경험을 했다고 느끼고, 번역보다는 우선 자기 글을 쓰는 편이 낫겠다고 생각한 적이 있다. 번역은 두 언어를 단순 매개하는 일만이 아니라, 한 나라의 문화를 옮기는 것이기도 하고 두 언어권의 서로 다른 표현과 사유의 체계를 바꾸어 놓으면서, 또 다른 쪽의 체계를 온전히 이해하고 새로운 체계에 맞춰서 원작의 재현을 극대화해야 한다는 이중의 부담을 갖는 고도의 정신적 작업이다. 모국어 하나의 언어로 사유를 하고 그것을 그대로 글로 표현하는 것에 비해 노력과 시간과 피로가 배가된다.

역사적 사실을 르포 형식으로 기술하여 인명, 지명, 단체명 등 고유명사의 한자어가 다용된 문장이 계속 이어진다. 번역서에도 페이지마다 한자가 많이 눈에 띈다. 단순히 보통 소설이라고 생각한 독자는 좀 건조하다고 느낄 수도 있겠으나, 동족 전쟁, 이념 갈등 등 사회 정치적인 언설에서는 긴장감이 있다. 일본 독자들이 자국의 소설과는 또 다른 맛을 느낄 수 있는 부분이다.

또한, 신식 교육을 받은 낭만적인 아버지와 건실한 구식 여성인 어머니의 결혼과 아버지의 바람, 별거 등 소소한 가정사도 들어 있고, 태아 때의 ‘기억의 저장’과 디엔에이 이야기로 풀어가는 작가의 필력에서 흡인력이 느껴지며, 여덟 살 때 헤어져 북녘땅 어느 뫼에 묻혀 있을 아버지에 대한 진혼의 기록으로서 그리움이 바탕에 흐르고 있다.

번역서 책띠에, ‘일본 식민지 시대 말기에 태어난 김원일. 사회주의 운동에 뛰어다니며 격동의 시대를 달려온 아버지 상을 여러 사람들의 증언을 바탕으로 쓴 자전적 소설. 태평양전쟁 전·후에 걸쳐 아들의 기억을 통해 묘사하는 <아버지의 시대>의 상세한 기록.’이라고 소개하고 있다.

<역자의 말>에서도, ‘현대의 한류 붐이라는 빛나는 문화의 배경에 있는, …… 한국의 격변의 역사를 담담한 문체로 묘사하고 있다. 독자 여러분이 이 책 한 권을 마주하는 것으로써 한국에 관해 한층 깊게 이해하시는 기회가 되면 다행이다.’라고 적고 있다.

일본에서 이전 보다 한국문학이 읽히게 된 계기는 대중문화 <한류>의 영향도 작용하고, 각박한 경쟁 속에 살아가는 ‘나’를 돌아보게 하며 유사한 사회문제 제기에 일본의 젊은이들이 공감하기 때문일 것이다.

한강의 『채식주의자』(2011년 쿠온[クオン]의 『새로운 한국문학』시리즈 제1권으로, 4쇄 이상 간행)가 시선을 끌었으며, 조남주의 『82년생 김지영』(2018년 12월 일본어판 출간, 23만부 돌파)이 주목을 받은 후, 김수현의 일러스트 에세이 『나는 나로 살기로 했다』(2019년 2월 일본어판 출간, 55만 부 베스트셀러) 등으로 이어져 일본에서 “K-문학” 붐이 조성되고 있다.

‘해방기의 혼란과 전쟁을 겪으며, 남과 북 두 이데올로기 사이에 희생된 패자를 진혼하기 위한 글쓰기가 인생의 곤경에 처한 이들에게는 위안이 되는 읽을거리’이길 바라는 작가의 소망이 일본어판을 통해서도 실현되길 기대해본다.

 

※ 일역 『아들의 아버지(父の時代ー息子の記憶)』는 재단의 한국문학 번역, 연구, 출판지원을 받아 엔도 준코·김영호·김현철의 번역으로 2021년 쇼시칸칸보(書肆侃侃房)에서 발간되었다.

최재철
한일비교문화연구소장, 한국외국어대학교 전 일본어대학 학장, 1952년생
저서 『일본문학의 이해』 『일본문학 속의 사계-한국문학과의 비교를 통하여』 『일본 근대문학의 발견』, 역서 『산시로』 『일본 명단편선』(주제별 전10권 편집) 등